8월 15일이 지나면 머리가 타들어갈듯한 따가운 더위도 한풀 꺾인다는 말을 한다.

강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온듯하다.

싸늘한 기운을 얻기에는 아직 많이 이르지만 때때로 부는 선선한 바람은 곧이어 오는 가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고야 - 겨울바람.  Oil on canvas  1786.
고야 - 겨울바람. Oil on canvas 1786.

하물며 날씨도 그러한데, 중간 쉼도 없이 강한 열기를 보여주며 거세게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의 자태를 끊임없이 끝까지 뿜어내는 작품이 있다.

쇼팽의 에튀드 ‘작품 25의 11번 (겨울바람)’은 마지막 결승선의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내달려야 한다.

옆을 보는 순간 넘어진다. 연주자에게 있어서 옆을 볼 여유 따위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곡이다.

따가운 햇빛을 연신 내리쬐는 한여름의 날씨도 서늘한 그늘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대가 존재하는데, 쇼팽의 에튀드 ‘작품 25의 11번 (겨울바람)’은 그 잠시의 여유마저도 결코 허락되지 않은 채 거세게 무서운 질주를 해야만 끝나는 아주 강렬하고 정열적인 곡이다.

쇼팽답지 않는 쇼팽의 곡이다. 쇼팽이 그럴 때도 있었나?

강렬하고 매섭고 무서운 쇼팽의 기세는 때때로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청중은 해당 작곡가의 대부분의 작품을 한꺼번에 묶은 감상으로 음악가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에 쇼팽의 정열을 모를 뿐이다.

확실히 쇼팽은 고요히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화려하게 빛나는 멜로디의 연주를 많이 하고 작곡을 한 음악가이다.

평생 거의 피아노곡만 썼고 그 피아노곡 안에서 세상의 아름다운 온갖 멜로디를 다 풀어낸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 멜로디를 정결스럽고 단아하게 때로는 화려하면서 우아하게 피아노곡의 끝판을 보여준 피아니스트였다.

고요한 달빛 아래의 호수의 물결이 아름답게 춤을 추는 듯한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쇼팽이 항상 보고 느낄 수 있는 쇼팽이라고 하면 매섭고 강렬한 기세의 정열적인 쇼팽은 가끔가다 볼 수 있는 쇼팽의 모습이다.

그 가끔가다 보는 쇼팽의 강렬한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곡이 바로 ‘작품 25의 11번 (겨울바람)’이다.

앞만 보고 끝까지 달려야지만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쇼팽의 진기한 실력은 당시 감히 따라올 자가 없었다.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낭만주의 음악사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1886)도 쇼팽의 천재적인 실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하니 쇼팽의 실력은 당시 피아노 음악계를 군림하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시작은 잔잔하다. 처음 네 마디는 폭풍의 전야와도 같은 고요함과 잔잔함으로 그저 평온함을 선사한다.

이 네 마디는 처음에 쇼팽이 친구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를 할 때만 해도 없었다. 끝까지 듣고 난 한 친구의 조언으로 인해 급히 작곡 했고 이 네 마디의 완성을 끝으로 ‘에튀드 작품 25의 11번 (겨울바람)’의 출판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저 끝까지 달린다.

아주 잠시 잠깐의 한숨을 돌릴만한 여유가 중간에 약 네 마디 정도 있는 것 빼고는 장대한 음역을 달리는 16분음표가 악보를 빼곡히 장식하고 있다.

오른손은 여유 없이 끝까지 달려야 하는 빠른 민첩성과 정확한 손놀림, 강한 의지의 속도가 요구된다.

그에 비해 왼손은 오른손의 멜로디를 받쳐줘야 하는 강한 베이스와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어려운 난이도로 평가받는 곡이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곡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연주를 잘하면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한국의 음악대학 피아노과에 입학하는 실기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곡이기도 하다.

들어보면 알 것이다. 정열적인 쇼팽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곡임을.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6호(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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