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그만두고 일반인으로 살아가면 모를까.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죽음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했기에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음악이 변화되었다는 어필이 절실했다.

물론 여기에는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도 감수해야 했다.

스탈린에게 비판과 미움을 받지 않는 음악의 내용과 형태, 구조를 항상 머릿속에 염두하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서 가깝게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였다.

블라디미르 페르부넨스키- 왈츠에 빠지다. 2005. ⓒ광주아트가이드
블라디미르 페르부넨스키- 왈츠에 빠지다. 2005. ⓒ광주아트가이드

그런데 이상하다.

쇼스타코비치가 대중적인 재즈 음악에 관심을 두고 실험적으로 만들었던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1번(1934년)’이 스탈린 체제에서 별 제재(制裁)를 하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되는 걸까.
진행해도 된다는 암묵의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욕심이 생긴다.
이대로 욕심을 내서 자유스러운 상징의 음악을 표현해도 되는 걸까."

 

1930년대 당시, 소련의 대중적인 카페 음악에 재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산주의의 합리성을 주장했던 소련에서 서방 음악의 자유분방한 재즈가 성행했다고 하면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발표한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1번’은 우리가 흔히 즐겁고 유쾌하면서 자유분방하게 느끼는 재즈가 아니다.

즉 급진적인 경향을 보이며 무조(無調)음악이 난무하는 재즈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극히 절제하며 배려했던 재즈 음악

쇼스타코비치는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1번 (1934년)’에서 심벌즈, 실로폰, 우드블록, 글로켄슈필 등 이색적인 악기를 많이 사용하며 재즈 스타일의 분위기를 삽입했지만 그냥 그 정도에서만 멈추며 절제하고 배려한 재즈 음악을 발표했다.

재즈에서 품어내는 자유스러운 변주, 사상의 자유와 변용이 전혀 없는 재즈풍의 음악을 만들어 발표했던 것이다.

이 산물이 사회의 체재에 굴복하여 쌓은 결과물이라고 지적한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소련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는 적극적으로 대중적이며 자유분방한 서방 음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된 재즈풍의 음악을 만들어 발표했던 쇼스타코비치는 당시의 배경이 어찌 됐든 또 하나의 업적을 일군 사실에 변함은 없다.
 

재즈적인 효과를 암시한 왈츠

그 재즈풍의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왈츠에서 그 시도를 적용한다.

통상적으로 왈츠는 춤을 추고 싶게끔 하는 리듬과 멜로디가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는 ‘왈츠 2번’에서 무슨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일까. 왈츠 속의 자유일까.

자유 속의 왈츠일까.

‘왈츠 2번’은 왈츠라고 하기에는 어둡고 느리며 슬프기까지 하여 심금을 울린다.

재즈라고 하기에는 그 웅장함이 거대하여 온몸으로 전율을 느낀다. 왈츠가 서정적이다.

화려한 선율 속에서 애잔함과 애수의 오만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 러시아)는 서방에서 유행하는 재즈 음악/재즈풍의 음악이 아닌 그만의 독특한 재즈풍의 리듬과 멜로디로 그의 사상을 표현했던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사회 체재에 눈치를 보며 살았던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폭력의 거부를 작품에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드러냈다.

재즈적인 효과를 암시하지만 춤을 추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귀로 듣는 감상하는 왈츠를 표현한 것처럼.

그가 쌓은 결과물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듣고 감상하고 연주하기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3호(2023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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