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싶은 욕망을 앞세운 신년에, 듣고자 하는 음악이 향수(鄕愁)나 슬픈 기억을 일으키는 우울한 음악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꼭 신나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룰(rule)은 없지만,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음악은 은근히 찬란하고 화려한 음악, 내지는 신나서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음악이 신년에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사람의 암묵적인 룰(rule) 같은 사고방식이 아닐까.

때로는 장엄하기도 하지만 상쾌하며 신나게 울리는 멜로디는 신년에 새기는 새로운 각오 다지기에 어울리는 단짝이다.

Vienna Philharmonic 라데츠키 행진곡. ⓒ광주아트가이드
Vienna Philharmonic 라데츠키 행진곡. ⓒ광주아트가이드

3년의 기나긴 암흑이 지나자 서서히 활기가 감도는가 싶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찬 모양새가 우리 주변을 휘감는다.

무서워서 웅크리고 엉금엄금 걷던 발걸음이 어느새 종종거리며 기쁘게 뛰어가는 발걸음으로 바뀌었다.

24년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는 데 있어 기쁘게 뛰어가고 힘차게 박수 치며 부응할 수 있는 음악을 전한다.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년~1849년,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은 ‘신년 음악회’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명품 단골 음악이다.

많은 지휘자들이 신년 음악회의 프로그램으로 선택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은 새해를 활기차고 기쁘게 맞이하며 청중과 즐겁고 신나게 소통할 수 있는 음악으로, 지휘자와 청중을 잇는 단짝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의 탄생 배경은 썩 좋지 않을 수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1848년 당시 이탈리아의 민족운동을 제압하고 북부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령을 유지하게 한 ‘보수적’ 군인 라데츠키 장군(Joseph Radetzky von Radetz, 1766~1858)에게 작곡하여 헌정한 음악으로 오스트리아 정부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음악을 계기로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보수주의 성향이 언론에 흘러나가면서 차곡히 쌓아왔던 지지층을 잃게 된다.

게다가 ‘왈츠의 왕(또는 황제)’으로 불리는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명성이 자신의 명성을 위협하며 능가하는 모양새에 수가 뒤틀려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차였다.

결국 그 해, 자신이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를 주체 못하고 쇠약해지면서 불륜으로 낳은 아이들에게 전염병(성홍열:목의 통증과 함께 고열이 나고 전신에 발진이 생기는 급성 감염성 질환)이 옮아 사망한다.

현재는 〈라데츠키 행진곡〉의 시대적인 배경을 논하지 않고 세계인이 즐겁게 즐기고 듣는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음악의 특징은 청중이 또 한 명의 ‘특별 연주자’가 되어 참여한다는 것이다. 청중은 지휘자가 제시하는 부분에서 박수로 화답하는 연주를 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신나고 즐거운 얼굴에 힘찬 박수로 연주를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익살맞는 얼굴에 깨알 같은 박수로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동참하며 연주를 한다.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아르헨티나 출생 이스라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이 지휘하여 남기고 있는 〈라데츠키 행진곡〉의 영상은 21세기 최고의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중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능으로 영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였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Mary Du Pre, 1945~1987)의 남편이기도 했던 그는 자클린이 다발성 경화증으로 투병 중일 때 그녀를 버리고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 1958~ 러시아)와 불륜을 저지른다.

또한 자클린이 죽자마자 재혼을 했다고 해서 많은 사람에게 지탄받는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이 청중의 기억을 온전히 쓸어버린 듯하다.

아픈 여자를 버린 나쁜 사람으로 기억하기보다는 클래식 음악계를 빛내는 훌륭한 지휘자로서 더 높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쇼맨쉽(showmanship)이 뛰어난 그의 지휘가 청중의 눈을 자극하는 것도 명백한 증거이다.

이 곡은 시작부터 화려하고 역동적인 리듬과 강약을 구성하고 있어 신년을 맞이하는 청중들에게 활기찬 에너지와 흥분을 전달하기에 넘치는 작품이다.

코로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힘차게 차오르며 뻗어나가는 청룡의 기운을 〈라데츠키 행진곡〉에 의지하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한지.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71호(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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