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필름으로 조우한 작가

너무 늦게 만났다.

아버지의 필름 재생 인연으로 만난 최재영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너무 늦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예술의 거리 3층에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계단을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최재영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최재영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작업이 벽을 나눈 채 걸려있었다.

그동안 작가의 작업인 어린이의 순수한 눈을 통한 기성세대를 향한 비판부터 몸을 주제로 내적 갈망과 욕망을 드러낸 작품과 먹을 질료로 사용한 선(線)의 집요한 형상이었다.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올곧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간간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작가의 얼굴에 쓸쓸함이 비추어졌다.


■부재(不在)와 실재(實在)

43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작가는 “지난 5월 30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오래된 상자를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필름 다섯 통을 발견했고, 필름엔 5·18민주화운동이라고 쓰여 있었다.”면서 “오월 항쟁 때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항쟁 당시 촬영했던 필름을 어느 날 아버지는 모두 태웠다.”고 말했다.

놀랬다고 했다. 모두 태워버렸다고 알고 있는 필름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최재영-5월 18일 사진촬영, 2023, mixed acrylic on canvas, 60.6×72.7cm. ⓒ광주아트가이드
최재영-5월 18일 사진촬영, 2023. mixed acrylic on canvas, 60.6×72.7cm. ⓒ광주아트가이드

그리고 이 갑작스러운 기록물은 고스란히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되었다.

작가의 아버지인 고 최병오 씨는 광주에서 최초로 백양사라는 사진관을 운영했던 원로 사진작가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것만큼 인화된 다섯 통의 필름은 사진기자가 촬영한 작품들과 다른 각도의 이미지를 가졌다.

더불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현장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노동청 방향에서 발포가 이뤄진 역사적 시간뿐 아니라 최초의 발포인 21일, 사상자가 그대로 노출된 사진, 그동안 보지 못한 도청 앞 광장의 어깨동무를 한 채 성회를 하고있는 풍경까지 진귀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오월항쟁의 현장 속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의 함께한 흔적에서 고스란히 재연된다.

작가는 “당시 고1이었던 난 아버지를 따라 삼각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내 어깨를 가림막으로 카메라 각도를 조종하던 아버지의 느낌이 선연하다.”고 고백했다.


다시 각인(刻印)된 오월

살아오는 동안 오월은 늘 경계 밖에 있었다.

아버지의 필름은 사라졌고 작가에게도 오월은 스스로 그은 선(線) 밖의 관심이었다.

작가는 “솔직히 43년 동안 오월항쟁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당시 열흘 동안 아버지와 함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투척해버린 느낌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며 “하지만 아버지의 필름을 발견하고 기증하면서부터 오월항쟁은 내게, 그때보다 더 강력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 속 이미지는 항쟁의 시점(時點)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리에 버려진 사상자부터 관에 대충 담긴 사망자, 박수치며 시민군을 응원하는 시민들, 불탄 버스의 뼈대를 바라보는 시민들, 금남로에 산재 한 시위와 방어의 흔적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필름을 기증하고 부자(父子)의 전시를 계획하면서 두 달 반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만남이 슬프도록 막막하게 설레였고 지금까지 필름의 존재마저 모른 채 있었던 시간과 세월이 아픈 상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의 항쟁이 작가의 10점의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촬영>을 시작으로 <월요일의 비극>, <금남로의 함성>, <절정>, <해방광주>, <어느 마을의 학살>, <무너진 도시>, <창 너머로 본 남동성당>, <최후의 항전을 위한 시민군의 묵상>, <빛고을의 새벽>이다.

작가는 “43년 전의 기억을 재생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를 시작으로 열흘의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며 “역사적 현장성과 고증을 통해 오월을 다시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그림은 모노톤으로 안개를 덧입힌 듯 흐릿하다.

기억의 재연이며 아버지와의 끈끈한 애정의 확인이다.

탄탄하게 돌가루를 앉히고 색을 덧입혔다.

그리고 그 색(色)과 형상화된 오월의 기억 속에 멀리 있던 오월을 가까이 끌어안아 아버지와 같이 들어앉았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8호(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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