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며 탈을 제작하는 광주의 광대

윤만식 선생을 처음 만난 건 1983년 꼬두메에서다.

꼬두메는 예술의 거리에 지금도 존재하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현재의 언어로 말하면 다목적 공간이다.

윤만식 선생. ⓒ광주아트가이드
윤만식 선생. ⓒ광주아트가이드

공연, 전시, 모임 등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오윤 판화전을 처음 보았고, 홍선웅과 장진영의 판화전도, 광주미술인공동체로 활동한 (고)장경철, 정희승, 전병근의 목판화 3인전을 본 것도 이곳이었다.

판화운동의 서막을 알린 곳도 꼬두메였다.

강의실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으며 시내에서 시위라도 있는 날이면 반드시 이곳에 모여 다음을 논의하곤 했다.

지금도 생각난다.

낮은 소파와 미색의 벽, 촘촘히 걸려있던 흑백의 판화들.

그리고 뿌옇던 담배 연기.

지하실의 공기 냄새까지도.
 

광주문화운동의 시작은

“꼬두메에는 정보과 형사, 동부경찰서 경찰, 안기부 직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해서 영업 매출은 항상 저조했다.

하지만 불온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전시할 곳이 없는 화가나 문인, 그리고 공연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붐볐고,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들로 여겼다.”고 윤 선생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랬다. 무심코 들어선 우리에게 계단 중간쯤에 서 있다 눈짓으로 되돌아 가가기를 종용했던 일도,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정보과 형사들에게 먼저 소리를 지르고 내쫓는 일도 윤 선생의 주업이었으니 영업은 고사하고 매출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윤 선생은 극단 ‘광대’의 창립 멤버다. 전남대 탈춤반인 ‘광대’는 오월항쟁 내내 지대한 역할을 했다.

“도청 앞 분수대에서 김태종이 사회를 보고 성회를 진행하는 동안 난, 분수대를 중심으로 원을 둘러 있는 광주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참가를 독려하는 일을 했다.”며 오월항쟁의 중추적 역할을 한 ‘광대’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광주문화운동의 증인이자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본격적인 문화운동의 시작점인 1984년 창립된 민중문화연구회는 물론이고, 1987년 6월항쟁 이후 창립된 광주전남민중문화운동협의체를 구성하기까지 윤 선생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윤 선생은 “‘광대’가 ‘극단 신명’으로 변태하며 새로운 노래극과 창작극단으로 전진해 가는 동안 그 안에는 언제나 광대가 자리하고 있었다.”며 “탈춤은 사람이 사는 동안 겪을 수 있는 희노애락은 물론이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담긴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쉬운 예로 노래, 춤, 풍물 등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은가.”하고 감회에 젖었다.
 

■나는 일생이 광대였다.

탈을 쓰고 춤을 출 때 행복했다.

태어난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탈은 어디서도 필요했고, 우리 민족의 또 다른 페르소나였다.

탈춤을 추며 울고 웃었고, 탈을 만들며 스스로 시간을 버텼다.

윤 선생은 “2022년, 유네스코에 한국의 탈춤이 등재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탈도 등재되었다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시, 도에서 무형문화재로 18개 탈춤을 등록하고 있는데, 남부지방은 경남의 통영 오광대, 고성 오광대, 가산 오광대다.”고 설명했다.

탈춤은 생명의 영속성과 지대한 관련이 있다.

더 많은 수확과 사냥의 성공을 기대하는 기원이 신성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얼굴을 가린 채 춤을 추거나 암각화를 새기게 했다.

봉산탈춤-취발이. 한지. ⓒ광주아트가이드
봉산탈춤-취발이. 한지. ⓒ광주아트가이드

현재로 이어진 탈춤은 탈이 갖는 은폐성, 상징성, 전형성, 표현성을 이용하여 민중의 건강한 삶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탈을 쓴 춤은 사회의 부도덕을 고발하고, 양반계급을 야유하며, 승려들의 파계를 비난하고, 축첩 관계를 도덕적으로 풍자하는 등 민중들의 불만을 표현하며 인간사회의 잡다한 사상을 해학적, 풍자적으로 다루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그긍로 발전한 것이다.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대화 과정에서 탈춤은 창작탈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윤 선생은 “탈 제작 재료는 지역마다 다른 소재를 사용한다.

황해도 탈은 한지(韓紙)로, 중부지방은 바가지로, 경북 안동은 나무로, 남부지방은 한지를 물에 풀어서 제작하는데 최근에는 바가지 제작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이번 전시에는 40여 점의 탈을 보여준다.

황해도의 대표적인 봉산 탈춤의 탈과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양주 별산대 놀이의 바가지탈, 마당극 공연에 필요한 창작탈을 선보인다.

창작탈은 바가와 한지로 만들었으며 특히 한지와 테라코타로 제작한 치우천왕(蚩尤天王)이 돋보인다.

왜, 지금, 2023년에 치우천왕 전시인가. 도깨비 같은 세상에 치우천왕 탈을 쓰고 우리 모두 한판 탈춤이라도 벌리면 어떨까.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7호(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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