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우리 무늬

차가운 바람이 명징하다.

담양으로 가는 길은 가을의 끝을 알리는 붉은 단풍이 즐비했다.

날 선 바람과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차창을 들쳤다. 이십 년 만일까.

선생의 공방이 광주 시내 초등학교 근처일 때 처음 만났다.

금정 김기표 명장. ⓒ광주아트가이드
금정 김기표 명장. ⓒ광주아트가이드

공방이 있다는 폐교에 들어서자 각가지 색의 국화가 피어있다.

화분에 담긴 겨울 배추와 파, 부추가 온갖 식물들과 바람을 맞고 운동장 모서리엔 나무가 쌓여있다.

직감적으로 그곳이 선생의 공방임을 알아챘다.

선생은 직사각의 나무를 굉음과 함께 열심히 벼르고 있었다.

톱밥의 쌓임으로 봐 오랜 시간 나무를 켜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한다.

천장 높은 공방 안에는 바람이 휘돌았다.

편액에서부터 도마까지

선생이 그동안 이 지역을 넘어 한 일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스무 살 무렵, 이미 나무에 집중하고 있던 선생은 서울중요무형문화재이었던 철재 오옥진 선생의 문화재 강좌를 들으며 편액의 기술과 기법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편액(扁額)이란 현판(懸板)을 뜻하며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를 말한다.

편(扁)은 문호(門戶)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다.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주는 의미이다.

현판은 전각(殿閣)의 얼굴이요.

전각의 상징물이기에 중요하다.

선생의 작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5·18국립묘지의 「민주의 문」과 「역사의 문」 편액 제작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굵직한 작업은 또 있다.

전남 보성 소재의 서재필 박사 기념관 「개화문」과 「지강문」, 「증심사 대웅전」 편액 등 다수다.

담양으로 공방을 옮긴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이곳에서 집중한 것은 ‘도마’였다.

선생은 “나무로 제작할 수 있는 대부분이 내 손을 거쳐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났다. 편액은 물론이고 각종 가구에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작업 중인 도마는 품위 있는 식탁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도마에 마음을 두고 가장 집중한 것은 위생이다.

식재료가 담길 항상성에 주력하고 건조와 칼이 만들어내는 흔적에 중점을 두었다.

나무 자체가 만들어내는 미감도 빠트리지 않았다.

선생은 “주방에서 즐겨 사용하면서 격조 있는 도마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생각을 말했다.
 

조형물이 된 도마

김기표 명장이 제작한 도마. ⓒ광주아트가이드
김기표 명장이 제작한 도마. ⓒ광주아트가이드

도마를 보면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

이른 새벽 부엌에서 들리던 경쾌한 도마의 칼질 소리.

그리고 이내 차려지는 밥상.

철이 들어 집을 떠나도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때 도마를 생각하게 된다.

선생이 만드는 도마는 곧 어머니의 손맛을 뜻한다.

가장 맛있는 맛을 만들어 내는 우리 모두의 그리운 맛이다.

선생의 도마는 세 가지 형태의 재료로 제작된다.

나무만이 그려낼 수 있는 미려함은 물론이고, 젖은 식재료를 기꺼이 견디며 허락할 수 있는 산벚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를 사용했다.

대 중 소 세 개로 구성되어 세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 도마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마가 아니라 조형물 같다.

첫 번째는 나무 고유의 결과 색감을 그대로 살린 ‘클래식 황금송’ 세트이다.

전통적 직사각형 도마로 담백하고 단아하다.

이 황금비율 구성과 사용된 산벚나무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재와 동일하다.

그만큼 나무 고유의 색감과 칼질을 받치는 강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우드수퍼문’이다.

수퍼 문(Super Moon)은 커다란 달을 뜻하며 이 도마는 동그란 원형을 가진 세트이다.

느티나무의 질감과 색감이 무늬 그대로 드러난 도마는 음식을 세팅해도 손색없는 품격이 있다.

세 번째는 타원형 세트로 ‘황금느티’로 사용뿐 아니라 식탁 위, 혹은 집 안에 장식품으로 두어도 손색이 없다.

옹이가 없는 산벚나무 사용은 위생에 적합할 뿐 아니라 소나무의 송진은 나무 자체적 살균으로 쓰임새가 빼어나다.

이 모든 도마는 특수 코팅으로 습기에 젖지 않는 특성으로 원목 특유의 뒤틀림이 없다.

4.5cm 두께가 3cm가 되도록 연마하고 켜 낸 결과일 것이다.

도마는 건조와 위생이 최우선이다.

집성목이거나 미감만을 생각해 패인 옹이와 군데군데 구멍이 있다면 음식물의 잔여와 부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단정하고 전통적 기법으로 만들어 낸 선생의 도마는 소박하면서 우아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9호(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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