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구나'

해남에서 장흥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으나 날이 추웠다.

소설가 송기원 선생과 2인 전시 중인 곳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가는 길이었다.

전시를 보고 내친김에 강대철 선생의 작업실까지 가보자는 의견이었다.

강대철 조각가. ⓒ광주아트가이드
강대철 조각가. ⓒ광주아트가이드

며칠 전 다녀왔다는 송 선생이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근원, 내 뼈를 보듬어 세우고 있는 삶(살아있는)의 근원을 묻는 물음은 평생을 두고 내가 갖는 화두와 닮아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장흥의 작업실은 멀리서 보았을 때 돔 형태의 건물의 입구에 문이 있는, 평지로 보였다.

문 앞에 샤프란 꽃이 바람에 날렸다.

눈부시도록 하얀빛이었다.
 

내 안의 나를 찾아서

작은 동산인 줄 알았다.

문을 열고 첫발을 딛는 순간 내부의 서늘함에 긴장했다.

토굴이라고 강 선생은 지칭했다.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벌써 8년째 흙을 퍼내는 일과 더불어 흙조각을 해내고 있다고 했다.

강 선생은 “처음엔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짐작조차 못했다. 단순했다. 작으마한 토굴을 파고 지인들과 함께 차를 나눌 공간을 꿈꿨다.”면서 “땅을 파다 보니 마사토와 황토진흙이 점력 있는 흙과 섞여 있어서 조각가인 내게 호기심을 발동시켰다.”고 시작 동기를 알려주었다.

돔 형의 형태를 지닌 천장의 층고는 높았다.

햇빛이 들어와 지하인 토굴 속에 들어와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원을 그린 채 모두 일곱 곳의 토굴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게 했다.

곡괭이와 삽과 수레만으로 이룩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강 선생은 8년을 하루 같이 눈 떠서 잠이 들 때까지 흙을 팠고, 파낸 흙으로 토굴 밖의 작은 둠벙을 메웠다.

시작은 단순했지만 한 삽 한 삽을 떠내면서 생(生)의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기독교 집안이었으나 대학시절 부처님 만드는 교수의 조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며,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몸이란 과연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독교에서는 내게 몸이 갖는 절대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해주었다.
 

연기(緣起)와 화엄(華嚴)의 세계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처음 만나는 낯선 풍경은 와불(臥佛)과 부조로 직립한 예수상이다.

토굴에서 만나는 첫 번째 물음이며 예수는 와불을 내려다보고 있다.

예수를 미륵상으로 표현하고 와불의 부처를 통해 이곳 장흥으로 흘러와 생의 근원적 물음을 갖게 한 연유를 표현했다.

첫 번째 방의 특징은 나무뿌리 같은 형상 속에 몸통만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육감 즉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왜곡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뇌와 인간 본연의 뼈인 해골이 함께 한 이유이다.

두 번째 토굴에서 만나는 것은 불상이다.

토굴을 만들면서 몸의 힘듦을 뒤로한 채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더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세 번째 토굴은 작은 감실을 만들고 24시간 촛불을 켜두었다.

각성하고 하루하루를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표의이다.

네 번째는 집단으로 묻힌 묘지를 파놓은 듯 벽 한쪽이 해골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안고 살았던 여섯 가지의 감정과 느낌들과 살들이 모두 사라진 후 백골이 갖는 무상함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다.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다섯 번째는 ‘나’로부터의 올곧은 깨달음이다.

생을 살면서 육감을 가지고 욕망하는 것, 무의식에서조차 존재하는 근원적 물음으로 벗어나는 곳으로 야뢰(阿賴)의식으로 표현했다.

여섯 번째 토굴은 특별하다.

20m의 긴 땅굴로 계단을 내려서서 만나는 형상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의 세계를 보여준다.

뒤엉킨 뿌리 다발들은 무의식의 일환으로 부처가 앉아있다.

육바라밀을 상징하며 명상을 하며 쉴 수 있는 구조로 조형되었다.

마지막인 일곱 번째 토굴은 지금까지의 토굴을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인 작업이다.

커다란 수레바퀴는 에너지의 집합체이며 연기에 의해 맞닥트리는 인간관계의 필연성에 관한 이야기다.

태아가 잉태되듯 깨달음이 스스로 솟구치길 바라며 마침내 수레바퀴 안 연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는 의도가 나타난다.

부처를 중심으로 양쪽 벽에는 수백 개의 불상이 있으며 생의 마침표에서 지혜의 눈이 열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상이다.
 

마침내 열리는 몸

무엇이, 어떤 힘이 작동해 8년이란 긴 세월동안 땅을 파게 했을까.

어떤 강력함이 조각가로서의 명성과 욕망을 뒤로한 채 수레에 흙을 담게 했으며, 매시간 분 초마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게 했을까.

어떤 간절함이 태풍이 몰아쳐 천장이 무너져 내려도, 깨트릴 수 없는 바위가 솟구쳐도 멈출 수 없는 삽질과 괭이질을 하게 했을까.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대철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오욕칠정(五慾七情)과 육감(六感)의 욕망과 그 한계를 향해 몸(生)을 깨닫고 연꽃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흙을 파고 부조를 형상화하고 테라코타로 부처를 만들며 추구하는 세상은 과연 왔는가.

열망 또한 깨달음이면서 백골을 향해가는 빠른 걸음은 아니었는지, 우리 모두에게 몸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발신은 아니었는지 깊게 성찰해볼 일이다.

“참 오래 머물렀다./ 주인이듯 내가 머무는 동안에, 몸은/ 벼라별 모욕을 다 겪고, 몇 군데는/ 부러지고 꺾이고 곪아서, 끝내/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다.// 귓구멍에 감창이 들어차고/ 뱃구레 가득히 욕지기가 출렁거려/ 똥구멍이 미어지는 수모를 견디고야, 비로소/ 몸이 나를 버렸을 거다.// 이제 나는 몸이 없는 곳으로 떠난다.// 그렇게 몸이 없이 사방을 돌아보면, 아아,/ 몸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몸이 없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구나.” 송기원 「몸」 전문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70호(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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