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에 어머니가 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터널을 7개쯤 통과하면 작가의 작업실에 가까워진다.

바닷냄새가 코에 들이치면 작업실이 가까워진 증거다.

오가며 자주 지나치던 도로에 가까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멀리 3층의 창가에서 작가가 열어둔 창 너머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곳에 자기만의 세계가 오롯하게 존재했다.

열어둔 창밖으로는 푸른빛의 하늘이 작업실 안으로 푸른 시간을 가져왔다.
 

■오십에 연 첫 전시

이귀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이귀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지천명(知天命)이 되어 첫 전시를 열었다.

오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천명(天命)」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작업에 대한 욕망은 늘 삶을 비껴갔다.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생의 무게가 버거웠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무렵 하늘이 작가에게 지워 준 「천명(天命)」을 알았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열망의 두께를 채울 만큼의 중량은 아니었다.

늘 갈급하게 목이 말랐다.

첫, 이란 부사 앞에서 누구나 떨리고 부끄럽다.

첫눈이 눈부시고, 첫돌과 첫, 이란 모든 것이 생애 처음이어서 당혹스러우며 알몸을 보여주는 듯 혼란스럽다.

하지만 작가의 첫 전시는 작가의 작업에 대한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모든 작업의 방향이 일관되었다.

여성성과 모성, 더불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거대한 힘에 대한 서사를 올곧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민들레, 52×48cm, 닥종이 위에 커피 외 혼합재료>는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탁월하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이는 봄날 어떤 풀보다 먼저 움을 틔우고 더 멀리 바람에 씨앗을 흩날리며 생명을 키워가는 민들레는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한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을 살아가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 어머니들, 여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줄 곳 여성에 대한 서사를 언급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 땅의 여성에 대한 말을 건넨다.

여성은 목포의 앞바다와 같은 언어다.

생명을 품고 낳아 길러내며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폭풍 속에서도 보호막을 아끼지 않는다.
 

멀리 돌아온 길

멈추지 않는다. 대학시절 작가가 살아온 여정과 작업의 형태가 앞으로의 생을 예견한다.

화폭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걸개, 만장, 깃발은 작가의 단골 작업 중의 일부일 뿐이다.

친구들이 삶의 방향성을 찾아 헤맬 때 작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림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현재의 우리가 풍요롭지도, 자유롭지도 않다면 그것을 위해 마땅히 싸워야 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었다.

그림패 「마당」의 회장을 지내면서 작가는 부조리와 국가폭력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다.

그리고 이 싸움에 대한 고민과 결과물은 현재의 작업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어머니의 삶, 여성의 삶이 결국은 작가의 삶과 연결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연유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지금은 영산강하구언으로 개발되어 바다의 연결점이 사라진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다는 가까이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갯가에서, 혹은 펄에서 뙤약볕과 함께, 일하는 우리의 여성, 모두의 어머니들을 본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성이며 여성이 살아내는, 살아가는 힘, 역동을 그리고 싶었다.”며 자신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귀님 작가-민들레 52 ✕ 48 닥종이위에 커피원액(에스프레소)혼합재료. ⓒ광주아트가이드
이귀님 작가-민들레 52 ✕ 48 닥종이위에 커피원액(에스프레소)혼합재료. ⓒ광주아트가이드

작업에 등장하는 여성은 다양하지만 한결같다. 바다를 근간으로 한 어업에 관한 이야기다.

장터, 선창가, 갯벌 등에서 일하는 여성의 얼굴과 몸과 동작 등은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도록 서늘하다.

인물을 클로즈업해 확대하고 작가만의 시선으로 서사를 구축한다.

특히, 작가의 작업 중 <물길, 53×74cm, 닥종이에 커피 외 혼합재료, 2017>과 <삶을 꿰다, 44×72cm, 닥종이에 커피 외 혼합재료, 2017>는 작업의 대담성과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자신이 조형해 낸 닥종이의 요철과 커피의 은은함으로 다리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여성이 지속해 온, 지속해 나가야 할 삶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갯가의 모든 노동은 다리의 힘에서 나온다. 갯벌과 물질,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도, 갯벌을 차고 돌아오는 일도 다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다리라는 조형 형식 안에 우리의 어머니, 여성을 담았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3호(2023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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