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꽃과 부러진 숟가락

제주 구도심 중앙에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한때는 융성했으나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곳.

그 온기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작가를 중심으로 또 펼쳐지는 곳.

사진공방과 도예와 작은 전시공간을 겸한 작업실 등이 구도심 곳곳에 포진해 있는 곳.

오십여미터만 걸으면 상설전시를 늘 볼 수 있는 곳.

정오가 되면 쉽게 들을 수 없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선지해장국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는 곳.

작가는 10여 년이 넘은 시간 동안 이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때늦은 신고식을 하는 청년처럼 온갖 형식과 재료를 사용한 작품들이 눈에 보인다.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삶

박경훈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박경훈 작가. 오는 6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2층 제3. 4 전시실에서 '박경훈-4.3 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 전이 열리고 있다. ⓒ광주아트가이드

만법귀일치(萬法歸一治)라 했다. 모든 것은 하나일 뿐이다.

작가의 삶을 일컫는 말이다.

제주라는 섬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나 군복무를 제외하고 떠나본 적이 없는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땅을 지독하게 사랑한다.

철이 들면서 알게 된 땅의 역사와 오욕의 시간과 사람들까지도 더할 나위 없이 애정을 쏟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 대부분은 제주 4·3항쟁에 관한 천착이다.

살아오면서 삶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고 자고 마시며 부르는 노래 등의 전부가 피울음의 토대 위에 존재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허물을 직시하고 증언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하나의 쇄신이고 변형이고 변태이며 탄생이고 부활이다.

이 새로운 탄생은 구원으로의 발원일 수도 있고 실존적 시각의 전환일 수도 있다.

작가에게는 역사와 더불어 새로운 창조적 발로와 함께 운명의 힘을 거스르는 저항적 계기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제주 4·3은 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까지 경찰과 우익단체가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이다.

제주 4·3평화공원에 1만4231기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만, 2만5000명에서 3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참혹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이다.

정부는 ‘무장대 소탕’이라고 했지만, 당시 무장대는 350여 명에 불과했다.

제주 4·3사건은 사회적 공론은커녕 1978년 현기영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에서 잠깐 언급됐을 뿐 금기시된 주제였다.

금기시되는 주제는 언제든 스스로 베일을 벗기 마련이다.

그것이 진실일 때 더 참혹하게 주변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공동화한다.

작가의 판화는 목판뿐 아니라 실크 스크린까지 다양한 형식과 방법을 꾀한다.

상징하고 표기하며 발신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4·3의 대항기억과 항거의 정당성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훈-'부러진 숟가락_ 빨치산의 인식표'.  2022,  캔버스 위에 포토 콜라주, 아크릴 162×337cm. ⓒ광주아트가이드
박경훈-'부러진 숟가락_ 빨치산의 인식표'. 2022, 캔버스 위에 포토 콜라주, 아크릴 162×337cm. ⓒ광주아트가이드

고무판으로 완성된 판화로는 「드로에서 거적데기」(1987), 「토민3」(1988), 「시1」(1989), 「사선」(1989), 「격(擊)」(1987), 「토민3」(1988), 「한라산-전사」(1988), 「아들의 총」(1989) 등이 있다.

작가 박경훈의 초기 작품은 온통 분노에 차올라 있다.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 지도 모른 채 유명을 달리한 당시의 제주 도민들이 작가의 칼끝에서 영혼으로 다시 살아난다.

특히, 「토민3」(1988)과 「아들의 총」(1989), 「한라산-전사」(1988)는 4·3의 대항기억을 곱씹게 하기에 충분하다.

「토민3」(1988)은 당시의 학살당한 제주 도민을 대표하고 있으며 「아들의 총」(1989)은 무장대와 군경에 학살당한 현장에서 대항하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들이 살고있는 제주의 땅의 자유 획득의 표상이며 끝내 이들은 「한라산-전사」(1988)로 대표된다.

생(生)의 전부인 것

작가의 작업 중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환생꽃-이덕구」(2018)로 여겨진다.

더불어 체 게바라의 상징이며 죽음의 순간에 손에 쥐고 있던 한 알의 계란을 떠올리게 한다.

이덕구의 숟가락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리 모두의 혁명은 총이면서 결국 밥이며, 투쟁을 있게 하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밥이라는 것이다.

4·3 75주년이다. 4·3은 광주의 5·18민주화운동과 놀랍도록 닮았다.

박경훈- '격(擊) 2'. 1989, 한지 위에 고무판 25.5×21cm. ⓒ광주아트가이드
박경훈- '격(擊) 2'. 1989, 한지 위에 고무판 25.5×21cm. ⓒ광주아트가이드

국가폭력이 그러하며 자국민에 대한 군인의 총검학살이 그렇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스의 말을 떠올린다.

미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을 장악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위에서 미래를 구상하는 것만이 과거를 정직하게 볼 수 있게 하리라.

부끄러운 과거는 망각과 왜곡의 대상이 아님을 우리는 직시한다.

국가에 의해 생산되는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은 억압받는 민중들의 대항기억(counter memory)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한다.

따라서 역사의 전개는 지배적인 기억과 대항기억 사이의 변증법적 투쟁으로 점철되곤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것은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탈냉전의 반(反)헤게모니(hegemony) 투쟁이기도 하다.

그동안 4·3을 보는 시각도 ‘무장대의 사주에 의한 공산폭동’이란 관제기억과 ‘민중이 주체가 된 자주항쟁’이란 대항기억 사이의 길고 긴 투쟁의 시간대 속에서 존재했다.

3만이 넘는 4·3희생자의 대다수가 군경 토벌대의 무차별 과잉진압에 의한 것임을 국가는 뒤늦게 사과했다.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함으로써 오랜 세월 제주도만의 가슴을 짓누르던 지배적 기억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그러나 대항기억이 승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은폐된 역사의 진실은 존재한다.

4·3 문제를 화해와 상생으로 포장하려는 국가의 주도적 관점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한다.

미국의 개입을 비롯해 양민 학살에 대한 모든 진실이 규명되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배상,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제시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립미술관 2층에서 전시 중인 '제주4.3기념 박경훈-새김과 그림'전.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2층 제3.4전시실에서 지난 3월 30일부터 오는 6월 18일까지 열리는 '박경훈-4.3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전. ⓒ광주아트가이드

다시 말하면 인간의 자아(自我)와 주변 세계가 분해된 결과다.

침묵은 죽음이다.

무참히 살해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세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세계, 빼앗긴 마을, 그리고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부재 _신(神), 인간(人間), 사랑(humanism)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평화가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즉 쉽게 얻을 수도 없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대담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작가 박경훈이 이번 전시에서 하고자 하는 말일 것이 분명하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2호(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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