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에 얽힌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영화로 구성하는 방법의 문제
사회 문제를 이야기로 다루고 싶은 구상과 이를 영화로 구성해낸 실행 사이의 괴리

통상의 의미에서 집이란 내가 마음 편히 눕고 쉴 수 있는 장소다.

그런데 동시대에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어느새 집이라는 거주 공간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한 아파트라는 건축물은 어떻게 다가올까.

자산을 불리려는 투기의 욕망들이 들끓는 장소로 대표되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흥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비롯, 아파트라는 공간을 두고 발생하는 개인과 집단 간의 대립을 다루는 영화들이 나오는 것도 당대의 시대상이 반영되곤 하는 창작물들, 소위 대중 영화들을 고려한다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드림팰리스>는 분양을 받는 아파트로 입주해온 한 사람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부녀회장 역으로 등장했던 배우 김선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혜정이다.

혜정은 산재로 사망한 남편 문제를 보상하는 회사의 합의금으로 ‘드림팰리스’에 입주한다.

그런데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는 녹물이 나오고, 드림팰리스를 분양하는 업체의 본부장(김태훈)은 전체 분양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라며 수리를 유보한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민 회의에 문제를 논의하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입주민들이 마주하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회의에서, 입주민 대표자들은 미분양 상태인 아파트의 집값 문제에만 정신이 팔린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혜정은 분명 자신과 주변인을 위한 나름 최선의 선의를 발휘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들의 결과는 곧잘 비수로 꽂혀온다.

이 와중에 여전히 산재 책임과 진상 규명을 사측에게 묻는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유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계속 농성을 벌여온 인물이자 혜정과 각별한 사이였던 수인(이윤지)와의 관계도 혜정을 머리 아프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할인 분양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권 다툼이 형성되며, 입주민 간에도 분란이 일어난다.

<드림팰리스>는 온갖 사회적 문제들로 엮인 개인과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형성한 군상들 간의 이해관계로 점철되어 있다.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과 남겨진 그들의 유가족, 아파트를 둘러싼 부동산 문제, 그로 인해 여러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문제들이 빼곡하게 영화를 채우고 있다.

마치 사회고발의 성격을 띠는 영화인 것처럼 비치던 영화는, 진행할수록 혜정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하며 그가 겪는 사건 사고들을 다룬다.

감독 가성문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의 삶, 감정, 처지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사회적 문제를 특정한 한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완성된 <드림팰리스>라는 영화는 과연 어떠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혜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개인을 짓누르는 삶을 그리는 것에 몰두한다.

영화의 사건과 배경은 점차 인물의 악조건을 가속화하는 장치로 동원되면서 후경화된다.

반면 혜정을 중심으로 하는 을들의 갈등과 이해관계가 급속도로 전경화된다.

감독도 지적하는 것처럼 갈등의 근본적 원인일 수 있는 아파트 매물을 과잉 공급한 업자나 부동산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산재를 일으킨 사측 사람들은 영화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드림팰리스를 분양하는 업체의 본부장(김태훈)이 등장하지만, 낮은 분양률로 인해 휑한 분양소를 지키는 한 명일 뿐이다.

그렇게 <드림팰리스>가 바라보는 사회는 일종의 그려내는 상황은 모든 개인을 피해자이며 가해자로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다.

즉 ‘을들의 싸움’의 구체성에 몰두하는 영화인 셈이다.

구체적 개인들에 집중하는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개인이냐, 구조냐를 선제적으로 나누는 접근은 대개 무용할 때도 많다.

구조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의 구실로 삼으려는 것 또한 아니다.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한편 사회적 문제를 배경으로 삼기 위해 반드시 이면에 자리한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들어 이를 무조건적으로 전면화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농성장 천막-집-목공소 등을 통과하는 주인공 재복의 발자국을 성실히 따라가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해고 노동자와 가정의 아버지로서 한데 얽힌 문제들을 차분히 조망하게 만드는 이란희의 <휴가> 같은 영화도 있다.

다만 사회적 이슈에 얽매인 개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추어보는 선택과, 그러한 개인들이 의도치 않게 한데 모여 생성된 추상적 집단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개인적 선의를 보이다가도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산업재해 유가족, 아파트 입주민 등 각자 사연을 지녔을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낸다고 해서 각자 개성적이고 다양하고 복잡한, 우연히 만난 개인들의 이야기가 저절로 입체적이고 풍성해지는 건 아니다.

그러한 방법에 관하여 생각해보기 위해 잠시 우회해보자. 전후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며 그들의 내밀한 개인적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오키나와의 전후사와 사회구조를 바라보는 방식, 즉 개인의 이야기에서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 고심해온 사회학자이자 생활사 조사 이론가인 기시 마사히코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망고와 수류탄>에서 이렇게 적는다. 

“개인의 생활사를 사회와 역사 분석을 위한 단순한 자료로 이해해버리면 그 풍부함과 재미, 인생의 아픔과 애달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활사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실재와 떨어뜨리고 소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여기게 되면, 그 배후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특히 후자, 즉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적, 역사적 실재와 떨어뜨려 놓는 사고방식은 사실 ‘소수자’ 연구에서 주로 쓰이는 방법입니다. 사회에서 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대규모 양적조사로 담기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조사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대표성이 없는 질적 자료로부터 접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자가 거꾸로 움직이게 됩니다. 즉 소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 사실성과 역사성을 보지 않고 단지 그 이야기를 마치 문학인 양 맛보는 방법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핵심은 개인의 이야기로 대변되는 미시적인 영역과 거대 서사로 대변되는 거시적인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게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마사히코는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와 분리시켜 ‘그 자체’의 재미를 감상하는 방법은 개인의 개별성과 특유성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와 역사를 생각하는 우리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드림팰리스>가 사회와 개인을 떼어놓고서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를 은폐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이 시종 쳐다보고 몰입하게 되는 건 분명 단연 혜정이라는 한 인물이다. 뒤로 갈수록 영화는 마치 혜정이 통과하는 수난들, 고통들에 관한 일대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구체적인 개인들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한정된 시간에 플롯을 압축해야 하는 장편 영화에서 그들 각자 모두의 삶을 호명할 수는 없다. 혜정을 중심으로 그와 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 혜정의 아들과 수인 정도를 제외하면 개개인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정보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개인 간의 갈등은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 일순간 해소되기도 한다.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영화의 종반부, 그전까지 원하청 간의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거리로 인해 혜정과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유가족 공대위 대표의 아들이 찾아와 원청의 노동자였던 혜정의 남편이 모두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화재 진압을 하려 부단히 애썼다는 사실이 CCTV로 확인됐다는 말을 건넨다.

이 찰나의 순간에서 원하청 간 유가족 사이의 앙금은 어느 정도 씻겨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드림팰리스>는 새로 입주한 이웃이 돌리는 떡을 받고서 멍하니 삼키는 혜정을 비추며 끝난다.

그 이웃은 어떤 사람일까.

과연 혜정을 포함하여 관계를 이어나갈 존재일까. 효율적 전개를 위해 여러 인물과 상황을 소거해나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결국 혜정이라는 한 개인이다.

재수학원의 기숙사에 들어가는 아들마저 보낸 그는 텅 빈 집에 홀로 남았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적으면서 거창하게 방법론에 관한 이론을 불쑥 가져온 것은 <드림팰리스>는 사회적 문제들과 이에 연루된 개인의 서사를 피상적으로 언급하든, 구체적이든 담아내려 하든지 간에 개인과 사회를 모두 건드리기 때문이다.

<드림팰리스>는 사회 문제를 겨냥한 영화로 보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장편 영화의 형태로 매끈하게 가공된 막장 드라마(마냥 부정적인 의미에서만은 아니다)의 느낌으로 볼 때 흡인력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무언가 말할 수 있다면,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가 어떤 사회적 쟁점들을 끌어와서 소재로 사용할 때 그것이 어떻게 한 편의 장편 영화로서 성립되는지에 관해서일 것 같다.

그리고 동시대의 창작자가 사회적 이야기를 투영한 산물을 영화로 연출한 결과물이 제도적으로 승인되어 인정받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부분도 생각해볼 지점일 듯하다.

<드림팰리스>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극이 진행될수록 사회 문제를 이야기로 다루고 싶은 구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구성해낸 실행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다.

“이야기는 생활사를 통한 인생 연구라기보다 이야기 그 자체 혹은 이야기된 장소에서 일어난 상호 행위의 연구가 되어 버렸다”.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 드림팰리스, 네이버 영화

다시 마사히코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드림팰리스>라는 영화는 결국 주인공 혜정의 이야기 그 자체 혹은 혜정의 사건이 이야기된 장소에서 일어난 상호 행위들을 나열하는 작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영화가 설혹 하나의 모집단 격으로 쉽게 환원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개인들의 실체에 주목하려 했다 하더라도,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 포박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개인들이 체험하는 지옥도를 그려낸 것에 가까워보인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일정 부분 겨냥하려던 구조조차도 부분적으로 답습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