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새 꽃샘바람에 관음보살의 화신 같은 초봄의 눈을 맞고 아이처럼 즐거워했었는데 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은 그간의 자연의 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큰 스님을 우리 곁에서 데려가기 위하여 조용한 미소를 보이시는 관음보살의 미소 같이 그렇게 화창한 봄날 때 아닌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법정스님 법구가 12일 서울 길상사를 떠나 오후 5시 30분 전남 순천 송광사 경내로 들어오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제공
'아무런 슬픔보이지 말고 잘살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법정스님의 당부같이, 그날 밤 내리던 그 눈이 왜 그리 고왔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큰스님을 데려가시려고 붉은 동백꽃 피는 봄날 하염없이 하얀 눈을 뿌리시며 부처님도 우리들의 슬픔을 그렇게 말없이 덮어 주셨습니다.

너무도 그리운 법정스님, 스님도 안 계신 송광사는 여전히 너무도 쓸쓸하게 느껴져요. 사람이 수행자로 산다는 것도 새로운 삶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중생을 회향한다는 것은 보살이 아니면 아니 되는 대자대비심 같아요. 하나의 지식 보다 하나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은 스님의 가르침 같습니다.

언제나 저는 불일암에 가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 점 티 없는 스님의 너무도 맑은 글을 읽으면 제가 누가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 이었습니다. 오늘은 평소 스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분들이 많이 찾아 오셨습니다. 스님의 운구를 맞이하는 행렬 속에서 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스님이 연꽃을 타시고 부처님의 세계, 극락의 세계로 가신 줄 압니다. 오늘 부는 바람은 왠지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는 듯 울며 불고 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도 수행자의 게으름을 꾸짖는 예전의 물소리가 아니라 너무도 슬프게 울며 무거운 소리로 심장을 울리며 흐르고 있습니다.

▲ 법정스님 법구가 전남 송광사 문수전에 안치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제공
스님이 쓰신 '무소유'라는 수필이 내게 준 감동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삶은 진정 무소유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그렇게 탐욕에 물들어 있었을까요?

세속의 때를 씻고 씻어도 이제는 뵐수 없는 법정스님, 그러한 소중한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다면 세상은 한층 밝아질 것 같아요.

마치 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에서 쓰신 '오두막 편지'라는 수필에 답장을 쓰듯 밤이 깊어가는 송광사 초입에서 이 글을 씁니다.

스님 오늘밤도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 스님이 그렇게 오래 머무시던 송광사가 아닌지요. 저도 오랜만에 이곳에서 잠을 청하면서 마음의 묵은 때를 모두 씻겠습니다.

2010년 3월 12일 송광사에서

시인 조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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