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님, 우리의 님, 법정 스님이시여!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물리치고
불일암에 이르러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보았습니다.
저 대나무 숲 오솔길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조국의 신새벽,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자주, 평화와 통일,
님이 주고 가신 법음처럼 불일암에 향기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송광사 초입의 주차장에서 왼쪽 산모퉁이를 돌아 전나무 오솔길로 약 1km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민재 다비식장이 보입니다. 민재 다비식장에는 하루 종일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스님의 법문처럼 전나무 사이로 서늘한 바람만 불어 왔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분단의 시대, 이 시대를 그냥 두고 가신 스님의 여한 같이 그렇게 바람만 불어왔습니다.
스님의 유언처럼 간소한 다비식의 주문에도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산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은 왔다가 가는 삶이지만 그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무상한 것인지요. 행여 이러한 다비식을 보시고 스님은 부끄러워하시지는 않으실까? 염려하는 마음에 필자에게는 준비 없이 떠난 취재 길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버리고 갈 몸이지만 그것은 모두 민족의 몸입니다. 역사를 살아갈 우리들의 몸짓을 그냥 여기에 둘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비식이 던진 화두는 버리고 떠나기, 민족이 아닌 것은 모두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고민하는 힘으로 우리들의 시대, 고난의 시대를 걸어갑시다.
불일암에는 법정 스님이 쓰시던 낡은 의자가 우리를 보듬고 낡은 시대를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이라는 것을, 권력이 민중을 버리면 죽음이라는 것을, 스님은 그렇게 굽어보고 계셨습니다.
스님...서늘해지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