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었다. 이는 인생의 많은 것이 변하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활동 영역과 행동방식이 바뀌게 되며 익숙했던 사람과 그에 대한 감정이 변할 수 있다.
 

성적표의 김민영ⓒ
성적표의 김민영ⓒ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슬픔에 젖어 말한 그 대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 아니 우정은 왜 변하는 것일까.

정희와 민영은 스무 살이 되어 다른 선택을 했다.

민영은 타지의 간호학과를 갔고 정희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물리적인 생활 위치가 바뀐 것이 첫 번째였다.

영화에 비치는 정희는 주로 심심해 보이는데 이는 영화 전반에 계속되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회상이 증명하며 즐거웠던 열아홉의 기억이 정희의 가장 큰 그리움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부적응임을 나타낸다.

영화는 수능을 치르는 겨울에서 시작해 다음 해 여름으로 향한다.

수능을 끝내고 여름이 된 지금, 이제 따져볼 건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다.

정희는 정적인 시간을 보냈고, 반면 민영은 비교적 활발한 생활을 했다.

민영이 낮은 성적표를 받고 교수를 직접 대면하러 간 동안 정희가 본 민영의 일기에 의하면 그렇다.

민영은 대학의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편입을 준비했다.

또한 꿈을 위해 가수 오디션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정희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단짝의 이면을 알게 되며 그동안의 민영에 대한 이해와 그로부터 도출된 성적표를 메긴다. 

민영의 성적 목록 중 ‘한국인의 삶’에 정희는 F를 준다.

성적표의 김민영ⓒ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가 말미에 품은 한국인에 대한 의미는 이렇다.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정희는 성적표를 통해 민영이 혼혈인이 되어 한국인으로 살지 않기를 희망한다.

결국, 더 나은 현실을 기대하며 사는 민영과 천천히 엉뚱함을 보존하며 살고 싶은 정희는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을 흡수하는 체질이 다르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이날의 스무 살이 겪는 시사적 문제를 여름의 청량과 상상의 엉뚱함으로 대비해 가시화한다.

정희와 민영은 그 여름에 각자의 형태로 성장했다.

누군가와 밀접한 관계에 놓였다가 멀어지는 미스테리한 상황에 대해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기숙사 안에서 밀접한 관계에 놓였던 그 시간이 유한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개인의 영역을 넓혀가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희는 ‘어떻게 우정이 변하니?’라는 궁금증을 뛰어넘어 자신의 그림에 민영의 이름을 넣어 숲속의 식물을 탐구하는 자신을 민영에 투영한다.

성적표의 김민영ⓒ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를 연출한 임지선 감독은 이러한 관계 변화가 나이대에 한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물을 스무살에 맞춘 것은 실망을 많이 해보지 않아 상대에 대한 기대감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어른이 되어 가는 성적엔 무뎌지는 혹은 무뎌져야만 하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갓 어른이 된 수많은 정희와 민영이에게 전달한다.

소중한 ‘F’와 창의성을 공유했던 그 여름의 기억은 과도기를 넘어 정희와 민영의 관계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성적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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