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은 미국의 건국신화다.

드넓은 황야에서 야만을 몰아내고 문명적 국가의 기틀을 다진 건국의 카우보이들을 기념하는 영화 장르가 바로 서부극이다.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은 복면 쓴 총잡이들을 건국의 시조로 묘사했으며, 존 포드는 <서부개척사>를 통해 개척시대의 승리를 거대한 스크린 위에 재현함으로써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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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이미지에 걸맞게 영화 속에서 총잡이들은 멸망에 위기에 놓인 백성들을 구원하는 메시아를 닮아 있다.

말을 타고 홀연히 나타나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마을을 구해내는 한명의 외로운 총잡이는 구원을 가져오는 정의의 메시아이다.

황야의 메시아는 홀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무리를 이끄는 어린양들을 이끄는 목자이기도 하다.

나무 지팡이 대신 불을 뿜는 총을 한 손에 쥐고 나타난 목자는 그의 무리들과 함께 무법자들을 포박하고 교수대로 보내는 잔인한 목자이다. 

이런 점에서 <파워 오브 도그>는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한편의 서부극이지만 신성모독의 전기라고 볼 수 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신화적 인물을 상징하는 장르적 소재를 이용해서 그를 죽음에 빠뜨리는 신성모독을 시도한다.

모독은 서부를 지배하는 법칙을 빼앗는 것에서 시작한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는 서부극에서 빠질 수 없는 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총은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의 말안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슬쩍 내비칠 뿐, 그 이후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서부극에서 총이 부재하는 것은 의아할 만한 일이다.

비단 서부개척 시대뿐만 아니라 총은 미국적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무기 휴대를 국민의 권리로 명시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총이 자유 자체임을 증명한다. 

영화는 주인공 필에게 메시아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몰락의 씨앗을 숨겨놓는다.

필은 알파메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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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 시대에 동성애는 금기이며 권위를 추락시킬만한 수치였기에 들켜선 안 될 비밀이다.

이런 남자 중의 남자 필이 애지중지하며 숨겨둔 물건이란 육체미를 뽐내는 남성들의 사진들로 가득한 도색 잡지이고, 필은 브롱코 헨리의 체취가 묻은 손수건을 얼굴에 덮고 부하들의 눈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 금지된 쾌락을 즐긴다.

필에게서는 정의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조지의 아내 로즈(커스틴 던스트)에게 “싸구려 꽃뱀”이라 말하고, 로즈의 피아노 실력을 조롱한다. 고통을 받기란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도 마찬가지이다.

필은 피터의 섬세하고 여린 태도를 못마땅하고, 말을 타고 피터를 겁주는 부하들을 방치한다.

이러한 연출은 전통적인 서부극의 주인공이 지닌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서부의 메시아는 위기에 놓인 마을을 구원하지만, 그의 구원은 언제나 폭력을 동반한다.

그의 영웅담 뒤에는 사람들의 죽음이 자리한다. ‘여성’, ‘흑인’, ‘소수자’ 전통적인 서부극의 서사에서 죽음의 자리에 있거나 소외된 이들이다.

여성들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로 하거나, 흑인은 악으로 등장하며 소수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극이 건국의 신화로서 내포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통해 신성 모독을 완성한다.

신화가 국가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뿌리로 통합하지만 서부극은 배제를 통해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다.

이런 모순을 공격하는 사람은 피터이다.

병약한 이미지를 풍기는 피터는 마초적 세계에서 배제 당한 소수자다. 필에게 핍박을 받던 피터는 치밀한 기획으로 필을 죽음에 빠뜨린다.

필의 마초적 면모와 은밀한 동성애적 취향을 이용해서 피터는 어머니 로즈를 구원하고 자유를 얻어낸다.

하지만 영화는 피터의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가져올 것이라는 작은 암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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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필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미심쩍어 한다.

피터는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는 성경구절을 읽고, 창밖으로 로즈와 조지를 내려다본다.

피터의 표정은 그가 행한 신성모독을 깨닫고 복수를 감행할 메시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야만과 폭력이 난무했던 서부극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찾아온 문명의 시대에는 더 이상 총을 든 카우보이들이 영웅으로 대접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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