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전문]

故홍정운 학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 정부는 현장실습 사고 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하라!
 

10월 6일,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故홍정운 학생이 현장실습 중 사망하는 참담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요트 관광객 안내의 업무를 배우러 간 故홍정운 학생은 현장실습계획서의 내용과는 달리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요트 바닥 따개비 제거는 위험한 작업이어서 육지에서 요트를 들어 올리고 진행해야 하는 일인데 요트업체 사장은 잠수작업을 지시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9일 전남 여수에서 지난 6일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홍정운 학생 추모 기자회견을 갖고 현장실습 사고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교조 전남지부 제공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9일 전남 여수에서 지난 6일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홍정운 학생 추모 기자회견을 갖고 현장실습 사고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교조 전남지부 제공

잠수작업은 산안법에서 정한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이어서 현장실습생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잠수작업은 잠수기능사보 이상의 자격을 가졌거나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이수했거나, 3개월 이상 작업 경험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물을 무서워 한 故홍정운 학생은 아무런 안전점검도, 안전조치도 없는 작업장에서 혼자서 잠수를 하다가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참담합니다.

2017년, 제주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숨진 故이민호 학생 앞에서 다시는 현장실습을 하다 죽는 학생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안타까운 현장실습생의 죽음은 또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왜 직업계고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죽음에 내몰려야 합니까?

현장실습생의 죽음은 학생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현장실습제도와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구조가 빚어낸 아픔입니다. 현장실습제도는 학교에 도입된 후 파행을 거듭해 왔습니다.

교육부는 故이민호 학생의 죽음 이후에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안전관리 등이 가능한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하였지만, 2018년 초 시행한 공문에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2019년 초엔 기업이 현장실습 참여를 기피하자 다시 기준을 완화하였습니다. 사고가 나면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하겠다고 하고, 현장실습 참여 기업이 저조하면 기준 완화하는 것을 반복하며 결국 ‘학습중심 현장실습’은 실패했습니다.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단기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기업과, 현장실습 기업에 대한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관리시스템은 수십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현장실습생의 죽음은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부위를 드러낸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부모를 만났는가에 따라 몇 개월 일하고 50억을 퇴직금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위험한 작업장에 내몰리는 이가 존재하는,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의 민낯입니다.

대학 입시를 선택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하려 하는 학생들은 마치 능력이 없는 존재인 것처럼 몰아붙인 능력주의 사회의 그늘입니다.

매일같이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뒤집혀 죽는 OECD 산재사망률 1위의 나라이지만 기업주를 위해 중대기업처벌법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이 빚은 참혹한 실상입니다.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 현장실습제도와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또다시 참혹한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함을 안고 우리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다시는 현장실습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현장실습 사고 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우리는 요구합니다.

<우리의 요구>

1. 전체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제대로 진행하고 실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전화를 걸어 조사하거나, 학교로 공문을 내려보내 일주일 안에 엑셀표를 채워 제출하라는 등의 수박 겉핥기식의 실태조사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여 정확한 기준을 세운 뒤 현장을 돌며 안전성을 점검해야 합니다.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면 참담한 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낱낱이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이하 사업장, 산업안전법 140조에서 정한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업장에서는 단 한 곳에서도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진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 현장학습에 나갔다가 죽는 학생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합니다.

안전한 현장실습은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불가능합니다.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더라도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현장실습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선 안 됩니다.

1. 안전한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교육부가 책임지고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현재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가능한 안전한 기업을 교사가 찾아다니며 현장실습을 부탁해야 하고, 현장실습 업체의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전한 현장실습처는 정부가 제공하지 않으면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현장실습을 정부가 책임지고 실시할 수 있도록 재설계한다면 직업계고의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며, 직업계고 교사와 학생이 반드시 참여하여야 합니다.

1.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도 노동자입니다. 현장실습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학생이자 노동자인 청소년은 현재도 많이 존재합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며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1.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 안전하게 취업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가 마련해야 합니다. 취업을 위해 직업계고등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현재 갈 곳이 없습니다.

학교나 기업에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 책임을 미뤄선 해결되지 않습니다. 공교육 과정인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취업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정부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직업계고등학교를 공교육에서 빼십시오.

1. 직업교육 정상화를 위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때까지 교육부는 직업교육에 대해서 제대로 된 진단과 전망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직업계고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심성·실험성 정책만 내놓았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직업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대로 된 전망과 계획을 내놓아야 합니다.

1. 모든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5인 이하의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현장실습이 폐지되더라도 졸업 후에 갈 수 있는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아 죽음이 유예될 뿐이라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됩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노동존중 사회로 한국 사회의 구조를 개편해야 합니다.

1.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전면화해야 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노동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지도록 총론부터 노동교육을 명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1. 아울러 이번 사고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요트업체 사장을 구속해야 합니다.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요트업체는 살인기업입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전교조는 故홍정운 학생을 기억하며 행동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의 다짐>

1. 우리는 故 홍정운 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모든 지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애도기간을 가지겠습니다.

1. 우리는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전면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 우리는 불평등 사회를 바꾸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공동수업으로 참여하겠습니다.

1. 우리는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현장실습제도와 불평등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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