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마침내 전성(傳聲)!- 김치준 작가
[범현이의 작가탐방] 마침내 전성(傳聲)!- 김치준 작가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0.07.3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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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흙의 물성에 천착하는 도예가

증심사를 가는 길목. 동백나무가 에둘러 있는 집. 이곳에 자리한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작업실과 전시실이 같이 있다.

흙을 품에 안고 먹고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날마다 물레를 친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미끄럽게 흘러내리는 흙과 물을 피부로 느끼면서. 은회색빛의 분청이 익어가는 냄새와 색깔의 빛이 내는 소리들 속에서 한 생애를 보내고 있다.

마당가 지붕을 훌쩍 닿을 듯한 파초의 넓은 잎이 작가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만 같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파초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밥값 해라

김치준 도예가.
김치준 도예가. ⓒ광주아트가이드

우연한 기회에 강진 청자발굴 현장을 보았다. 발굴된 청자를 본 그 순간을 작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흡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이후의 삶의 시간은 흙과 더불을 수밖에 없는 생애였다.”고 고백했다.

흙을 만나고, 흙이 발목을 잡으면서 작가의 삶은 이전을 넘어 광활해졌다. 전국의 도예지 현장을 돌면서, 청자는 물론이고, 백자, 현대도예, 생활자기, 옹기 등을 공부하며 섭렵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신을 흡입하고 현재까지 오게 만든 흙과 불, 그리고 도예가의 올곧은 정신을 배우며 탐닉, 천착했다.

작가는 자기(磁器)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또 다른 ‘밥’이라고 표현했다. 남도의 흙이 빚어낸 자기라는 그릇 속에 담긴 것들, 한반도 끝에서 온 콩과 그것이 발효되어 만들어진 간장, 한반도 삼면의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들이 자기 안에 담겨 또 다른 우리의 먹거리인 밥을 생산하고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바다의 해양문화와 육지의 대륙문화의 만남을 이어주고 담아주는 것은 결국 자기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 자주 묻는다. ‘밥값 해라’.

최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몇 천 년 전, 물레성형이 없었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손만으로 흙을 빚었을 것이란 생각에서이다 어눌하고 치기스러운 모습의 형태는 어쩌면 작가의 치밀한 계산 속에서 완성된 작품의 형태일 것이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어느 시간부터 작가는 도자기를 이용한 설치와 퍼포먼스를 같이 진행하며 전시하고 있다. 흙과 불을 이용한 결과물인 자기가 다시 새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자연의 무한한 공간으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염원이 현재의 작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다를 건너 멀리 날아가라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아트가이드

원시인 느낌을 넘어 흙의 물성에 집중한다. 손가락 사이의 흙의 질감에 쾌락과 자성을 느끼며 탐닉하며 흙의 맥질에 감동한다. 변화무씽한 불과 흙이 만나는 시점마저도 온전하게 껴안는다.

작가는 “감성과 자신의 심성 모두를 물레 위에서 원심력과 부심력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예는 탐닉의 결과물인 셈이다.”고 설명한다.

자유스러움의 추구 대상인 덤벙기법을 넘어 순 백자에 집중한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충돌을 백자에 담고 싶어한다.

작가의 백자에는 조개껍질의 무덤인 패총을 닮은, 막 꽃을 피우려는 꽃송이 같은, 혹은 새들의 날개를 같은 문양을 새긴 작품들이 제작된 연유가 될 것이다. 크고 작은 순백의 다기와 파도를 상징하는 백자, 해양을 상징하는 백자들의 형태는 그렇게 소성되었다.

40여 년의 흙을 빚으면서 소성 후 사용하면서 스스로 가는 균열마저도 사랑한다.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만들어졌으니 자연스럽게 갈라짐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꿈을 꾼다. 분청과 백자로 천 개씩의 찻잔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다. 2019년부터 시작한 일이며 이미 500여 개 정도의 작업을 마쳤다. 손바닥을 최대한 펴야만 마실 수 있는 찻잔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아트가이드

그만큼 조심히 평면의 수평을 이루어야만 찻물을 마실 수 있다. 낮게 더 낮게 마음을 낮추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한다.

온몸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傳聲)를 듣는다. 사물이 들려주는 소리를 천수천안관음 (千手千眼觀音)으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천 개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작가는 말한다. “내 몸이 도자기이다. 끊임없이 보고 들으며 실천하고자 한다. 천 번의 눈과 손의 보살핌은 흙이 물레를 거쳐 자기로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일 것이다. 흙은 내게 우주가 전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9호(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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