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진 도예전] 확고한 침묵 - 자기본색(磁器本色)
[정호진 도예전] 확고한 침묵 - 자기본색(磁器本色)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0.10.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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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일부터 11월14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솟기, 귀알항아리, 사발, 주전자 등 도예품 선보여

나만 편들어 주는 흙의 체온을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를 찾아 강진을 가던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도자기가 빛나는 강진. 청자빛 하늘이 그리웠다.

작은 나무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작업과정과 강진의 정주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가의 물빛 청자작품을 보면서 그동안 휘둘린 마음들이 이곳으로 이끌게 한 이유를 알았다.

정호진 도예가. 오는 19일부터 11월25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정호진 도예가. 오는 19일부터 11월25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오월미술관

그동안 보아왔던 청자는 무엇이었을까. 허상 같았다. 때가 되면 스스로 베일을 벗는 진실처럼 청자빛이 무엇인지, 우리의 선조들이 빚어내던 청자의 빛깔이 어디에서 연유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손금의 지류들이 작품 마디마디에 머물고 있었다. 불과 온도와 흙이 만들어낸 꽃 같았다.

스스로를 들볶는 일

2005년. 강진에 서식지를 꾸렸다.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하면서 고려시대 청자터인 강진의 매력과 호기심이 작가를 알 수 없는 힘으로 잡아당겼다.

대학에서 ‘강진도예연구소’ 설립이 적극적 개입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막연한 확신과 불안감이 강진을 정주공간으로 작가를 당겼지만, 무엇보다도 ‘청자연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불완전한 작업 욕구에서 발현된 우울감을 종식 시키기에 분명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사발. ⓒ오월미술관
사발. ⓒ오월미술관

벌써 강진 생활이 15년을 훌쩍 넘겼다. 물리칠 수 없는 청자의 어떤 힘이었다. 작가는 “대학원 논문준비를 하면서 청자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청자를 베개로 베고 잘 정도로 3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눈과 마음과 손을 청자빛에 내어 주었다.”고 말했다.

특히 청자 대접과 사발에 마음을 두었다. 나만의 청자빛을 만들어 내리라, 마음을 굳힌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삽을 들고 남해안을 휘젓고 다녔다. 풍화 잘된 장석을 발견하면 반가웠다. 들뜬 마음으로 잿물을 섞어 유약을 만들고 나면 그 후는 불의 알아서 할 일이었다.

흙을 물에 개고 치대서 모양을 만들고 불에 구워낸 쓰임새의 시작은 생활의 편리한 도구로서 용도였다. 옛 우리 선조들은 생활 도구에서 한층 더 나아가 유려한 미감의 도자기를 생산해냈다. 생활과 문화, 공예와 예술의 접목으로 쓰임새를 한 층 높였다.

작가는 여기에서 작가만의 신념을 세우고 새로운 도자기와 빛을 만들어내고 확장 시켰다. 전통과 현대적 예술의 접목이다.

전통적 개념을 염두에 두고 계승하면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도자기의 현대적 미감과 쓰임새와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기술적 방식과 형식의 추구를 비롯해 강진에서 생산된 흙과 물레의 보이지 않은 화합이 필요했다. 살아오면서 늘 허기지던 알 수 없는 결핍이 비로소 채워져 가는 순간이었다.

허기진 불과 흙과 바람

볼. ⓒ오월미술관
볼. ⓒ오월미술관

지문이 닳아 미끈한 손바닥을 가졌다. 흙과 불에 닿고 해풍을 맞은 거친 손이다. 매일 처음처럼 첫 마음으로 물레를 돌린다. 양 손바닥과 열 개의 손가락으로 흙을 치대고 하늘을 향해 밀어 올린다. 분수처럼 솟구친다. 작가는 ‘솟기’라고 명명했다.

침묵으로 일관한다.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손과 흙과 불이 만들어낸 바람의 도자기를 작가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말수가 줄어들 때, 도자기는 불이 만들어낸 예기치 않은 자기본색(磁器本色)을 적확하게 표현해낸다.

포장도 하지 않는다. 조형은 작가의 몫이지만 완성의 완전체는 물과 흙과 바람과 불의 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가 지향하는 직진의 삶이며 도자기를 향한 열망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목이 긴 여자를 닮았다. 작가의 염원과 소망을 담았던 모딜리아니 여자들은 긴 목으로 우리에게 애잔함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했다.

작가는 자신이 명명한 ‘솟기’로 ‘솟아오르는 기운’과 ‘새로운 생명’에 대해 말을 건다. 견딜 수 없었던 허기와 결핍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치유법이다. 전통에 뿌리를 박고 동시대를 발언하는 새로운 생명력의 용트림일 것이다.

‘솟기’는 작가다. 아니 작가를 넘어 도자기로 표현된 미래에 향한 소망이다. 나팔꽃처럼 활짝 피면서 분수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열망의 메시지이다.

(왼쪽)학솟기, (오른쪽)모란조화솟기. ⓒ오월미술관
(왼쪽)학솟기, (오른쪽)모란조화솟기. ⓒ오월미술관

‘솟기’는 열망으로 날아올라 꽃을 피워낸다. ‘사발’이다. 살짝 어눌한 표정과 한쪽이 이지러진 의도적 형상기법은 작가의 넉넉한 마음의 표상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퍼내고 불에 구워서 표현했던 질박한 기법들이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새롭게 증언되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청자나 기법들에 구속되지 않는다. 실험을 통한 자신만의 도자기 재현에 몰입한 결과이며 유약 역시 얽매이지 않은 채 다양함으로 자신의 작업 방향을 구축했다. 강진의 흙과 물과 바람과 불, 그리고 정주하고 있는 작가만의 새로운 도자기인 셈이다.

도자기와 인간은 닮았다. 상처 입으면 깨지는 것까지 닮았다. 조심히 애정으로 조형하고 건조하며 키워내면 불을 만나 단련되면서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어느 때가 되면 모두 아낌없이 사라진다. 인간은 영혼으로 남아 지상을 장식하고 도자기는 유려함으로 남아 그 시대를 증언하는 것까지 닮았다.

일체의 소리들이 엎드린

주전자. ⓒ오월미술관
주전자. ⓒ오월미술관

앞을 보고 나아간다.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지문 없는 두 손이 바빠질수록 작가는 귀를 닫는다. 대신 눈과 마음을 활짝 열고 앞을 바라본다. 때가 되면 두 귀를 울렸던 소리들은 불을 만나 형성된 흙의 결정체인 도자기에게 스스로 스며들어 엎드려질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작가가 실천적 행동으로 구현했던 작업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이곳 광주에서의 전시는 처음이어서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광주에서 첫 전시를 계획하며 설레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도자기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정치적 경제적 안정이 미감이 유려한 도자기를 생산해냈고, 서민들은 사용에 편리한 따뜻한 분청을 생산해냈다. 도자기를 보면 역사가 보이는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영롱하다. 기존의 청자에서 보지 못한 빛을 가졌다. 작가가 만들어낸 작가만의 도자기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빛이다.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리다.

손으로 만지면 도자기 몸에서 맑고 투명한 푸른빛의 물이 묻어날 것만 같다. 치밀한 실험과 계산에서 만들어진 영롱한 빛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예정이다. 청자빛은 물론이고 분청과 사발,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돌렸던 물레가 빚은 도자기들이다. 먹고 자고 마시며 형성된 도자기는 작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물레가 만들어내는 바람을 손으로 느끼며 꿈을 꾼다. ‘솟기’를 만들어낸 꿈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마에서 만들어내는 도자기.

귀알항아리. ⓒ오월미술관
귀알항아리. ⓒ오월미술관

그 도자기의 빛깔. 장작을 넣으며 가마 내부를 누비는 바람과 불의 힘. 무리를 지어 도자기를 생산하던 우리 선조들의 방식과 작업 현장을 누비는 상상. 바람인 물레가 만들어내는 작가만의 ‘솟기’와 ‘사발’.

다시 한 발을 내디딘다. 꿈을 향해 손을 뻗고 솟아오르는 기운을 맞이한다. 동해에 불끈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작가의 솟기에도 새로운 기운이 담겨질 것이다.

앞을 보고 귀를 닫고 침묵으로 직진하는 작가의 앞마당엔 도자기 꽃이 활짝 피어있을 것이다.

 

                         정호진 프로필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천진난만한 어린시절을 보내다
1990년~99년 단국대학교 도예과에서 공부(학사,석사)
2000년~05년 경기도에서 작업
2005년~15년 단국대학교, 강진도예연구소, 강진도예학교에서 청자를 연구하며 강의
2016년~현 강진 칠량에서 작업 중

개인전 12회(서울 통인화랑, 나눔갤러리, 북촌민예관, 중국 경덕진 박도랑.....)

단체전

1997년 즐거운 우리 그릇전 (서울,광주,부산 순회전)
2005년 청자디자인전 (서울 경인미술관)
2011년 세계 도자비엔나레 새김과 채움-상감도자특별전 (경기도자박물관)
2014년 공예플랫홈 (문화역 서울 284)

수상

1998년 3회 국제도예공모전 우수상(국제신문사)
2006년 7회 사발공모전 대상(한국사발학회)
2009년 9회 청자공모전 최우수상(강진군)
2020년 3회 분청사기공모전 입상(고흥군)

작품소장

경기도자박물관, 고려청자박물관

작업실
전남 강진군 칠량면 영동3길 21

jagiwa@hanmail.net
facebook.com/celado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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