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종의 정치 전망대]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의 힘, 그리고 시대정신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따른 촛불항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대한민국의 정치 시계입니다. 2017년 12월 대선이 박근혜 탄핵에 따른 ‘벚꽃대선’으로 약 7개월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준비가 채 덜 된 후보들은 하나둘씩 꿈을 접었습니다.

  정치 시계뿐만 아니라 정치 지형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완벽한 보수대연합의 철옹성이던 새누리당이 쪼개졌고, 그 결과 꽃가마에 올라타려던 반기문 전 총장이 낙마하였습니다. 반 전 총장의 낙마로 ‘제3지대론’은 힘을 잃었고, 국민의당은 지지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왼쪽부터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당겨진 정치 일정과 달라진 정치 지형의 최대 수혜자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입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40%대 중후반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문재인 후보 지지도가 확장성 시비에 휘말리던 이른바 ‘박스권’을 뛰어넘어 다자-양자 대결 모두 대세론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약 80%가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탄핵국면과 촛불항쟁’의 힘입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적폐 청산, 조기대선에 따른 정권교체 열망이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말을 갈아탄 손학규 전 고문, 적폐 연장에 편승한 반기문 전 총장, 내부의 균열로 비친 박원순 시장, 이 분들의 공통점은 그런 시대정신에 빗겨났다는 점입니다.

  ‘개헌 논쟁’이 탄력을 받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개헌보다 개혁’과 ‘보수세력과의 연합이 아닌 선명한 적폐청산’이 국민이 바라는 선행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에서 지지율 50%를 돌파한 것도 ‘그러저러한 시비’를 뛰어넘는 정권교체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전략적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초반 돌풍도 그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가장 선명하게 촛불 민심을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풍이 검증 관문에 막혀 주춤거리고, 상승세를 유지시켜줄 조직과 세력 기반이 취약함과 아울러 확장성 및 본선 승리에 대한 대중적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촛불은 진행 중이지만, 탄핵 인용 이후의 정치 일정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따라서 ‘탄핵 기각 우려’를 불식시킬 촛불항쟁과 ‘탄핵 인용 이후’ 대선 후보 선출이 두 번째 단계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과제가 상호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입니다. 탄핵 기각을 막아낼 거리의 주권자와 대선 후보 선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유권자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의 주권자를 대선 후보 선출의 유권자로 만들어내는 일이 정권교체의 필승 방정식입니다.

거리의 주권자, 선거의 유권자

  

ⓒ광주인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일정이 가까워오면서 기각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정보와 불길한 조짐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탄핵 기각은 ‘대재앙’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국가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박근혜 대통령 심판’의 의미를 뛰어넘어 ‘구국의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촛불은 ‘분노한 민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국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망국의 길에서 구해내려는 간절한 마음이 타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탄핵 기각과 그 이후의 경로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탄핵 인용과 조기 대선’만이 유일하게 상정할 수 있는 길입니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촛불이고, 더 높은 촛불이고, 더 간절한 촛불일 뿐입니다. ‘탄핵 인용’의 그날까지!

  그리고 그 간절한 마음을 담은 유권자들이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대선 후보 경선에도 참여하고, 본선에서 정권교체의 주력이 되게 해야 합니다. 거리의 주권자가 대선의 유권자로 적극 나서는 일이야말로 정권교체의 필승 방정식 아니겠습니까?

안희정 바람과 질적 흥행론

  

ⓒ광주인

탄핵 인용과 함께 대선 후보 선출이 두 번째 단계의 핵심 과제라면, 안희정 지사의 급부상이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한 마디로 첫 번째 촛불항쟁 단계가 ‘문재인 대세론’으로 귀결되었다면, 두 번째 단계는 ‘안희정 바람’으로 통하고 있는 셈입니다.

  안희정 바람은 현재 진행형입니다만, 이재명 시장의 돌풍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거나 꺾일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합니다. 어쨌건 화두는 ‘안희정 바람’입니다.

  문재인 대세론과 안희정 바람론을 풍선 효과, 다른 말로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는 경우에서 드러나듯 단순한 제로섬 게임은 아닙니다. 안희정 후보의 지지 세력으로 유입되는 중도, 보수, 무당파가 많아지면서 외연이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희정 후보는 완전국민경선이라는 선거제도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더민주 지지자에 국한된 동원전략으로는 이미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좌측 영역을 이미 선점했기 때문에 안희정 후보는 우측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대교체’라는 안 후보의 슬로건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른바 ‘우클릭’은 필연이었습니다.

  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바른정당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공동대표입니다. 이들의 존재감은 실종된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마치 대선 본선처럼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다른 정당 지지자들까지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흥행론으로 치면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이라면 단순히 양적 흥행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데 유의해야 합니다. 과열에 따른 내홍을 경계해야 하며, 오히려 흥행의 질적 측면, 즉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게 하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후보에 관한 것이든 선거 또는 정책에 관한 것이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쌍방향 소통 채널을 열어놔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벽돌 하나가 더 놓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나아가 이른바 역선택을 최소화하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당이 나서서 해야 합니다. 후보 캠프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 트기 전이 가장 춥고 어둡다

  

ⓒ광주인

2012년 대선은 박근혜 후보를 상수로 두고 누가 박 후보를 꺾을 것인지 하는 것이 기본적 프레임이었습니다. 반면 2017년 대선은 문재인 후보를 상수로 두고 누가 문 후보와 경쟁할 것인지 묻는 선거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마치 2007년 대선이 새누리당 내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었던 것처럼 더불어민주당내 경선이 사실상 본선처럼 굳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촛불항쟁과 탄핵국면 속에서 수구세력(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과 중간세력(국민의당)이 힘을 잃어버린 까닭입니다. 게다가 12월 대선 같은 장기레이스가 아니라 탄핵 이후 2개월 이내 치러지는 단거리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상 유래 없는 이런 상황을 온전히 잘 관리하고 결승점에 안착하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동 트기 전이 가장 춥고 어둡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선거 구도와 예측 가능한 결과는 이를 뒤집기 위한 상상 이상의 시도를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 첫 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습적 행보로 나타나지 않을까요? 특검 기한 연장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앉아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전 전격 하야 발표입니다. 3월 둘째 주 초반으로 그 시점이 예상됩니다. 황교안 총리하의 검찰이 불구속 기소로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고 나서는 것은 다른 한 축의 시나리오입니다. 이 경우 탄핵 대상이 사라진 이상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는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수구세력들은 ‘위대한 구국의 결단’으로 치켜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박근혜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은 좌파세력’에 대한 대대적 반격이 시작되겠지요. 광화문에 더 많은 ‘할배와 아줌마 부대’를 동원하고, ‘촛불세력과 강력한 대결’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상의 ‘내전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요.

  

ⓒ광주인

이런 구상이 본격화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관리에 위협적 요소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선거법과 관련한 수사력 동원, 선거 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침투 등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훨씬 신중하게 경선 관리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판을 흔들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사전에 경고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런 고비들을 넘겨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고비들을 슬기롭게 넘겼다면 정권교체가 눈에 보일 것입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말하는 ‘보수후보 단일화’,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가 설계할 수 있는 ‘중도후보 단일화’와 실질적 양자대결 구도, 그 어떤 것이 되었든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박근혜 자진 하야론’은 황교안 총리의 대선 불출마와 ‘선거 관리’를 의미합니다. 이 경우 황교안 총리의 선거 관리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선거 및 투.개표에 대한 제도적 보완 장치, 관련한 선거감시운동 등 국민의 주권 행사가 손상되지 않도록 ‘범국민운동’을 조직하고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단단해야 벨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 정황상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선 돌입이 대선 승리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아예 후보 선출 로드맵조차 내지 못하는 다른 당에 비해 훨씬 유리하고 앞서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곳곳에 암초들이 잠복해 있는 형국입니다.

  

ⓒ광주인

민주당에서 어떤 후보가 최종 주자가 될 것인지, 이 또한 결정적 관건에 해당합니다. 발언 하나로 부침이 바뀌는 대선 판에서 후보 선택은 최종 결과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판단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레프트 윙을 맡은 이재명 후보, 라이트 윙을 맡은 안희정 후보, 스트라이커 역을 맡은 문재인 후보 모두 훌륭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후보를 선택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승리할 수 있는 후보인지 하는 것과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적합한 후보인지 하는 것입니다.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서 후보로서의 준비 정도와 검증 결과를 따져보게 됩니다. 시대정신에 투철한지를 보기 위해서 걸어온 길과 신념, 비전을 눈 여겨 보게 됩니다.

  특히 이번 대선은 개표 다음날부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집권프로그램과 인적 풀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후보 선택과 관련한 이런 기준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정당들을 포함해 언론과 시민사회 등 각계에서 이와 관련한 노력을 해주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후보에게 연거푸 패했던 이회창 후보의 경우 아들 병역 기피라는 ‘단순한 문제’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2012년 상당 기간을 풍미했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 안철수 후보가 지금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습니다. 세월이 내린 ‘검증의 칼’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에도 반기문 전 총장은 검증이 시작되자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단해야 벨 수 있습니다. 무른 칼로는 자를 수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어떤 경우든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세력에게서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해야 합니다. 정권에 의한 검증, 언론에 의한 검증, 경쟁자들에 의한 검증 등 적지 않은 세월을 거쳐 검증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시기입니다. 
 
길게 보면 할 일이 보인다

  

ⓒ광주인

2017년, 우리는 다시 정권교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정권교체의 경험이 있습니다. 민주정권 연장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의 세월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통한의 심정으로 회고해야 했습니다. 이제 다시 그런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을 완벽히 혁신할 더 많은 시간을 집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17년 대통령선거는 제3기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해입니다. 제3기 민주정부는 정권교체와 적폐 청산, 새 시대의 첫 장을 여는 일이 자신의 소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토대로 시대교체, 역사교체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4기, 5기, 6기, 그 이상의 민주정부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야당에 그럴 수 있는 재원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집 짓는 나무 하나도 베는 시기가 중요하고, 건조하는 시간, 다듬는 시간, 두루 필요합니다. 우리 당에는 이미 그런 세월을 거쳐 준비된 후보도 있고, 아직 더 육성할 나무도 있고, 좀 더 마를 시간이 필요한 재목도 있습니다. 이런 후보들을 성급하지 않게 잘 골라 쓰면 오랜 시간 넉넉하게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바다에 이르는 강줄기의 긴 호흡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지어가는 지혜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 지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답을 내줄 것이라 믿습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