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특별법, ‘국가 정체성’ 시금석

▲ ⓒ민중의소리 제공

정국이 실타래처럼 얽혀 복잡해 보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너무 간명합니다.

진상 규명을 목적으로 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국민과 희생자 가족과 야당,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대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당초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 간의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본원적 의무’로서 여야가 갈려 정치적 이해를 다툴 사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당이 요구하기 이전에 정권 차원에서 국가·국민적 사안으로 규정하고, 보다 더 적극적이고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지금처럼 정치적 대결국면이 조성돼 버린 것은 불행한 일로서 그 책임이 오롯이 집권세력에 있다 할 것입니다. 철학의 빈곤,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의 박약, 책임지지 않으려는 나쁜 태도 등 정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시금석입니다. 위기 때 국가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의 비율이 형편없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거부하거나 반대한다면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 파괴행위’로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지금 대한민국 만병의 근원은 ‘대통령’입니다.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던 과거의 조롱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뒤틀린 언론, 시녀화한 권력기관과 각료들, 청와대 아바타인 새누리당, 막장의 ‘일베’까지 가히 ‘유신의 데자뷰’라 해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해서까지 호통치고 겁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눈물을 흘릴 때의 대통령은 유령이었을까요? 심지어 자신의 앞뒤 발언이 어긋나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특별법 투쟁을 ‘순수한 유가족’이 아닌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규정한다든지, 국회의원들에 대해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윽박지른 것은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 자신을 백성과 신하 위에 군림하는 ‘임금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전과 전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지금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해법은 하나뿐입니다. ‘대통령 자신이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습니다.

□ 뇌사상태에서 기사회생, 멀고 험한 정상화

▲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민중의소리 제공

정국이 엄중하고, 정권이 극우적 적폐를 반복할수록 야당의 역할은 크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야당이 상황을 바꿀 힘과 의지가 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국정원 댓글사건 같은 ‘민주적 정통성’ 문제는 물론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적 정체성’ 문제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의 주도성이 상실된 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더욱이 새정치민주연합은 ‘6·4지방선거’에 이은 ‘7·30보궐선거’의 자멸, 뒤이어 등장한 박영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붕괴로 사실상 뇌사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사상 최초로 원로, 중진회의의 합의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문희상 비대위가 등장했지만, 그에 거는 기대는 이미 절반쯤 꺾였다고 보입니다.

박영선 비대위의 출범은 ‘세월호 정국 정면돌파’와 ‘과감한 당 혁신’ 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대위의 ‘안경환-이상돈 투톱체제’로의 전환이 불발된 데 따른 문희상 체제의 응급 투입은 공세적 정국 돌파 대신 타협적 정국 운영, 과감한 당 혁신 대신 '관리형 수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세월호 특별법의 기본 방향이 관철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파주의의 청산을 핵심으로 한 당의 혁신은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에게 넘겨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수레바퀴, 야당의 제 자리 찾기가 멀고 험해 보입니다.

□ 야권 분열 유도, 낡은 수법의 재등장

▲ ⓒ민중의소리 제공

새정치민주연합을 지배하는 묵은 논쟁 중의 하나는 이른바 ‘중도주의 =외연 확대’입니다. 그 왜곡된 상징이 지난 8월 26일에 발표된 “국회의원의 단식투쟁과 장외투쟁, 이제 이것만큼은 정말 안 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5명의 성명입니다. 김동철, 박주선, 장병완 등 광주 출신이 3명이나 포함돼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명은 세월호 단식투쟁 국면에서 터져 나온 정치적 자폭테러라 할 수 있으며,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중도주의는 이철승, 이민우 등으로 이어지는 타협주의, 기회주의의 ‘조경태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 이들을 ‘온건파’라 칭하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을 유도하려는 낡은 수법의 연장입니다. 실제 친노, 486, 민평련 등을 ‘강경파’라 대칭적으로 규정한다든지 ‘강경파의 패권주의’ 운운하는 일련의 기조들을 보면, 차기 대통령선거까지 염두에 둔 저들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분열시키기 위한 반간계는 전당대회까지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당대회 이후 총선 전까지 이른바 ‘제3신당’ 창당(?)으로 정점을 찍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온건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기회주의’와 ‘분열주의’!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용어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선명한 야당의 부활, 강력한 리더십

▲ ⓒ민중의소리 제공

새정치민주연합이 합당 시점과 비교하면 정당 지지율에서 반토막이 났습니다. 나아가 경향적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는 총선 승리도, 정권교체도 불가능하리란 우려가 훨씬 더 큽니다. 현실성을 떠나 당 해체와 신당 창당 주장이 공감을 얻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를 중도층의 이탈, 즉 외연 확대 실패의 결과로 보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정치의식이 높은 지지자의 실망과 이반이 적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여론조사까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국민들이 거의 과반에 육박합니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이 10% 대 지지율밖에 보이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7·30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호남의 민심이 그 바로미터입니다. 호남으로 대표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 기반 붕괴, 이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정의 주범인 새누리당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심판하는 민심, 그것은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계파 갈등이 당을 지배하는 한심한 모습 때문입니다.

야당은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대안정당이며, ‘이익’보다 ‘가치’를 선명한 명분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견제와 비판, 가치와 선명성 모두 실패만 거듭해왔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더 자주 목도한 것은 내부의 갈등과 반목, 끊임없는 권력쟁탈전뿐입니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선명한 야당의 부활, 강력한 리더십! 새정치민주연합이 높이 세워야 할 유일한 깃발입니다. 특히 2016년 총선 전까지 정계개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야권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 세월호 특별법, 우회하지 말아야

▲ ⓒ민중의소리 제공

지난 7월 28일, 우리나라 법학자 229명이 기자회견을 통해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 기구’가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대한민국 법체계를 지키기 위해 ‘진상조사 기구의 수사권, 기소권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법학자 대다수의 의견조차 단칼에 무찌르는 대통령의 무모함이라니!

어쨌건 그로 인해 대통령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새누리당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세균 의원 등이 “유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보하면 새누리당은 특검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지 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상황 변화를 시도하게 된 배경입니다. 일종의 ‘특검 추천권 100% 보장’ 안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지요.

그러나 이른바 ‘2차 합의안’ 이행을 구실로 청와대가 받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국회 정상화와 민생을 무기로 한 지루한 공방전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야당에 대한 압박 수위만 높여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다시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야권의 선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모든 국회 일정을 연동시키는 ‘전면 승부론’과 시급한 민생법안 등을 분리 대응하는 선택적 ‘분리 대응론’. 또다시 야권 내부를 들쑤실 대응 방법의 차이는 결국 야당의 사명과 노선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형국입니다. 2014년 가을, 우리나라 야당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