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상 걷어차기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는 말과 함께 7월 31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등 두 대표가 물러났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사실은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동작을 출마 권유 거부가 세간의 화제가 되던 선거 초반만 해도 이번 7.30 보궐선거는 야권의 낙승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야권의 참패! 11:4라는 경이적인 패배 기록이 나왔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원인은 무엇인가? 분위기가 반전된 계기는 여권이 아니라 야권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막장공천’으로 불리는 공천 파동이 그것이다.

그 바람에 새누리당이 ‘보수의 혁신’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가동시키려 이준석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나중에는 굳이 그 존재를 드러낼 필요조차 없어졌다.

‘야당을 심판한 선거’라는 모순된 규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잘 차려진 밥상을 걷어 차버린 데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사퇴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겨야 하는 선거를 못이긴 ‘무능’ 논란이 아니라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를 지게 만든 결정적 ‘책임!’

2. 멘탈의 붕괴

얼마 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 브라질이 독일에 1:7로 패배했을 때 원인으로 ‘멘탈의 붕괴’가 지적되었다. 그 결과 선수들이 무기력하게 허둥대고, 응원하던 관객이 주저앉고, 급기야 브라질 국민들까지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다.

7.30 보궐선거에 보여준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이와 다를까? 출전하는 선수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예쁘게 포장되기는커녕 낙점된 거물들은 올드 보이가 되었고, 차출된 신진들은 패륜의 당사자가 되었고, 회심의 카드는 회칠한 사냥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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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새정치민주연합 합당 이후 당 조직에 대한 고민도, 이반된 시민을 다시 불러 모을 어떤 방안도 제출된 적이 없다. 경선은 준비되지 않은 땜질식 처방전에 불과했고, 남발한 전략공천은 응원하던 선수가 퇴장당한 관중만 양산했다. 경기장을 떠나거나 환불을 요구하거나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관중!

‘이건 국가도 아니다’라는 국민의 분노는 어느새 ‘이건 정당도 아니다’라는 야권에 대한 절망과 탄식으로 바뀌었다. 썰물처럼 무섭게 빠지는 민심! 정치노선의 문제? 권력투쟁의 산물? 천만에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그 어떤 것도 신뢰할 수 없는 총체적 불신, 즉 ‘멘탈의 붕괴’가 에볼라처럼 번졌을 뿐이다.

3. 응급 복구냐 재건축이냐

태풍에 날아간 집을 응급 복구할 것이냐 아니면 아예 새로 지을 것이냐,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쉽게 생각하면, 응급 복구라고 해서 얼기설기 엮어놓은 집을 바라는 사람은 그닥 없을 것이다. 이참에 그럴싸한 집을 짓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그래서 응급 복구라고 하지만, 응급 수준을 뛰어넘는 복구를 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집에 대한 설계부터 새롭게 시작해서 원하는 집을 지으려면 응급 복구가 아니라 재건축이 필요하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예산 규모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그렇게 해달라고 권한을 백지위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응급 복구와 재건축의 사이, 비유컨대 두 대표의 사퇴로 비롯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의 운명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생래적으로 응급 복구와 수습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국민의 불신과 무너진 정당 현실을 감안하면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재창당에 가까운 혁신의 수임기구!’ 비대위를 ‘혁신비대위’로 그 이름과 위상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잃어버린 정체성,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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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이었던 지난달 24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말한데 이어 지난 1일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또 다시 단식농성 유가족들을 ‘노숙자’라고 폄훼했다. 이런 식의 인간 이하의 막말을 쏟아내는 정부와 새누리당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고, 한두 번이 아니다.

문제는 야당이다. 그런 식의 발언이 되레 충성 경쟁의 징표처럼 등장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끊임없이 독도문제를 도발하는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과 꼭 닮았다. 적당한 수준의 비판 성명, 그리고 끝! 국민들의 분노만 SNS(사회적 관계망)를 통해 들불처럼 번지다 사그라진다.

‘야당성의 회복’, ‘선명 야당론’, 이런 식의 주장들이 등장하면 좌클릭이라 비판하고 중도층의 이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같은 것은 비타협적 사안이다. 그로 인한 정쟁은 정치공학 이전에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정치인의 사명이다. 그것이 좌클릭? 그렇다면 백번이고 좌클릭해야 한다.

또 하나, 상당수 야당 인사들은 ‘나는 투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합리적 중도이다’라고 말하기에 급급하다. 조선과 동아가 그렇게 써주면 감읍하여 머리를 조아릴 지경이다.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싸우고 타협한다.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잘 보자.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야권의 지도자가 되었나?

지금 국민들이 정치, 특히 야당에 묻고 있는 것은 ‘너는 누구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존재감이 없을뿐더러 혐오감까지 생기고 있음에 주목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것이다.

5. 지도력 개편과 통합형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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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보궐선거 패배 이후 야권의 최대 현안은 지도력의 재구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대목은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의 치명상, 손학규와 김두관이라는 두 잠룡의 패배와 사퇴, 정동영과 천정배라는 두 거물의 생채기 등 야권의 지도력 손실이다.

이미 6.4 지방선거를 통해 송영길, 김상곤 등이 파괴력을 잃은 것까지 감안하면, 이제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박영선, 김부겸 등만이 건재한 편이다.

물론 여전히 안철수 전 대표의 복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손학규 전 대표의 ‘국민호출론’ 등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다 정동영과 천정배, 두 거물의 역할론 등을 무시할 수 없어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지도력 경쟁은 당장에 2015년 1월경 치러질 전당대회부터 불꽃을 튈 전망이다.

다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원칙들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첫째, 당내 경선이라 하더라도 지도력 경쟁이 ‘금도’를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2012년 대선 때 당시 민주통합당 내부의 경선은 사실상 ‘적대적’ 수준에서 치러진 바 있다. 그 적대적 공방이 사후 박근혜 후보의 공격논리로 치환돼 그대로 사용되었다. 같은 우를 또다시 범해서야 되겠는가?

둘째, 안철수 전 대표를 포함한 정치적 지도자들과 그 지지자들까지 아우르는 통합력이 중요하다. 경쟁자들을 배제하는 정파적 리더십이 아니라 경쟁자들까지 포용하는 리더십, 즉 통합형 리더십이 결국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작은 차이로 갈라서는 리더십에 대해 결코 국정의 지도자, 국가적 리더십으로 동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이른바 정치권에도 팬덤문화가 극성을 떨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적극적 참여로 응답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다른 정치인에 대한 극도의 반대, 혐오까지 표출하는 부정적 경향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심지어 경선에 패배한 후보자는 결과에 승복함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그에 반대하는 경우도 늘었다. 극복되어야 할 정치문화의 한 극단이다.

6. 지역과 정파 초월? 연합정당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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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이념정당이 아니다. 통합진보당 같은 이념정당이야 사상과 노선을 중심으로 민주집중제의 원리를 따르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념이나 계급적 정체성에 기반한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반독재라는 뚜렷한 경계선 이내에 포진한 '광의의 민주화 세력'으로서 일정한 정체성을 지녔다.

그러나 87년체제의 등장과 민주정부 10년의 기간 동안 그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민주정부의 등장에 따라 강조된 ‘국정운영 능력’은 이전의 ‘투쟁적 정체성’을 대체하며 인적 구성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조차 가치보다는 스펙이, 충성도보다는 테크닉이, 집단보다는 개인이 앞서는 풍토가 만연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이나 세월호 같은 엄중한 국가적 사안이 발생해도 강력한 대여투쟁을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다시 가치와 정체성에 주목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인적 구성에 대해 심각히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국민 모두가 공감하듯이 계파 중심의 정당운영은 전면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계파가 다르면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다”는 보도는 악의적 성격이 강하지만, 그것이 꼬집는 현실의 풍토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파로서의 분화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덧붙여 정치세력의 지역별 집단 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박원순 시장, 충청도의 안희정 지사, TK지역의 김부겸 같은 인물과 그 인물들로 대변되는 지역별 정치세력의 성장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보다 강력해지는 방법은 오히려 그런 인물과 세력을 키우는 데서 찾아질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구시대적 계파정치의 청산과 정파정치의 추구, 각 지역별 중심 인물과 그로 대표되는 지역세력 간 연합, 즉 정파와 지역의 연합정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발전적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7. '빅텐트론'과 야권의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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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일정하게 정치 행사에 참여해본 사람일지라도 야권의 정당들을 일관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당 등 진보적 계열의 군소정당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도대체 그 정당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선뜻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 정치 환경은 이런 군소정당의 존립이 근본적으로 제약되는 구조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숫자를 중심으로 한 중앙당이 가장 큰 규정력을 갖는데, 현행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는 다당제용 선거방식이 아니라 양당제용 선거방식이다.

한편 새누리당은 과거 보수세력의 분열이 정권교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판단에 기초해 철저히 보수단일정당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다양한 진보정당, 군소정당이 대립하는 현재의 정치지형은 근본적으로 야권에 적합한 방식일 수 없다.

또한 그 때문에 선거 때마다 소위 ‘야권연대’ 혹은 ‘야권 후보단일화’라는 정치공학적 경로를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당을 달리하는 세력 간의 연대 또는 단일화가 갖는 한계가 명백하고, 점차 국민적 피로감이 더해지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나머지 군소정당들이 이합집산하는 것만이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일각에서 ‘빅텐트’론을 다시 주장하기도 하지만, 통합진보당까지 포괄하는 단일정당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총선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정치의 특성상 그 사이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야권구도는 변화해야 한다.

진보적 정당들의 경우는 사활의 문제가 걸려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선출될 지도부에게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8. 벼락치기 그만, 준비된 싸움

조금 억지스럽게 비유하자면, 새누리당은 언제 시험을 치르든 성적이 고르게 잘 나오는 학생이다. 성적을 만들어주는 도움의 손길이 참 많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벼락공부에 능한 학생처럼 보인다. 시험 때면 족집게 과외를 받아서라도 성적을 내는 편인데 평소엔 혼자서 논다.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진보정당들은 '까칠한' 성격이 주변에 부담을 주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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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때 새정치민주연합이 과거 연거푸 1등을 한 적이 두 번 있었다. 새누리당을 도와주던 손길들이 갈라져 새정치민주연합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새누리당의 집 단속이 철저하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를 교란시키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친노와 486’ 프레임은 리메이크된 최신 버전이다.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체제에 대해 거의 무비판으로 일관하던 조선, 동아 등이 두 대표 사퇴 이후 공격의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보라.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이른바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를 끊임없이 매도하고 약화시켜 왔다. 통합진보당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고, 통합진보당 등과의 연대는 ‘종북연대’로 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권교체의 틈을 주지 않으려는 술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벼락공부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2012년 대선 때 ‘투표시간 연장’을 복기해보면 답이 나온다. 투표시간 연장 요구로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정치적 효과는 거두었지만, 실제 법제화에는 실패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선의 경우 ‘야권연대’ 또는 ‘후보단일화’는 국민적 지지를 받는 사안이다. 그러나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의 사례처럼 난감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이다. 이미 공약화된 사안이기도 하다. 대선 직전에 이를 점화시킬 일이 아니라 총선 전 선거 관련 법을 개정할 때 패키지로 합의하고, 총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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