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은 크게 세 단계의 로드맵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헌정질서를 유린한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퇴임 후에는 사법적 응징도 해야 한다. 최순실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인사들에 대한 엄중한 징벌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다음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승리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반드시 야당과 민주세력이 단합하여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정치, 경제, 사회개혁을 단행하여 촛불혁명이 대통령 한 사람을 응징하고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셋째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헌법의 제정이다.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틀을 새롭게, 더 발전적으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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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이 추구할 세 단계 개혁 중 개헌은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1, 2단계는 당면한 과제이며 한 치의 엇갈림도 없어야 한다. 개헌은 당면한 과제로 삼을 수도 있고, 중장기적 과제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개헌은 헌정질서를 유린한 박근혜 및 그 주변 세력들에 대한 징벌에 지장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또 개헌은 민주세력들의 집권에 지장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개헌론자들은 국민들에게 1, 2단계 과제와 개헌이 상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권력구조로는 순수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그리고 절충적 성격의 이원집정부제가 있다. 순수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선진 국가 중 순수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미국은 주정부의 권한과 중앙정부의 권한이 적절히 배분된 연방제적 성격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다가 미국은 처음부터 3권분립이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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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중앙집중주의 국가이고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도 약하다. 미국과는 달리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었으며 이를 통제할 적절한 장치가 부재하다. 이런 국가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기적에 의존해 국가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다.

내각제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케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덴마크, 네델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많은데 이는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내각제 반대론자들은 반대 이유로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정치권의 권력 나눠먹기를 들었다. 먼저 남북분단을 반대사유로 드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온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내각제의 수상이었고 상대는 절대적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였다. 독일 통일을 이끈 서독의 콜 수상은 내각제 정부의 수반이었다.

그는 강력한 야당 사민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에 변고가 생기자 1년 만에 전광석화처럼 통일을 이루어냈다. 복지국가의 모델로 불리는 북유럽국가들 모두 내각제 국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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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오해도 내각제에 대한 오해 못지않게 크다. 프랑스는 1950년대 알제리 독립문제로 국론이 양분되었다. 국민과 정치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드골((Charles De Gaule)을 정계 복귀시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드골은 정계복귀 조건으로 강력한 권한을 요구했고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정치권과 국민들은 이 요구를 수용했으며 그 결과 채택된 것이 우리나라에서 소위 이원집정부제로 불리는 오늘의 5공화국 헌법이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대통령에게는 외교·국방의 권한을, 총리에게는 내정을 책임지게 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분산시켰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 된 프랑스가 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꺼려했겠는가? 왜 미국식의 순수 대통령제를 거부했겠는가? 한마디로 순수 대통령제가 갖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처럼 4대 강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오스트리아 정파들은 전쟁 이후 21년 동안 국민당·사민당 연정을 실시했다. 대연정은 4대강국들에게 오스트리아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도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이 안 된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그들의 조기 철수를 달성했고 영세중립국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오스트리아는 사실상 내각제에 가까운 이원집정부제이다. 아일랜드의 경우도 오스트리아처럼 낵가제에 가까운 이원집정부제이다. 핀란드도 이원집정부제인데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을, 총리는 내정을 분담해 맡는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정치인들의 나눠먹기 권력구조라고 폄하한다. 이처럼 큰 오해도 없다. 정당이란 집권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과 목표를 실천하고자 하는 집단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 노선,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정당을 선택한다.

21일 광주엔지오시민재단이 주최한 '2016회고와 전망' 토론회. ⓒ민중의소리 갈무리

민주사회에서 국민들의 이해관계는 다양하게 표출되며 이런 욕구에 정당도 부응해야 하고 그래서 복수의 정당들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스위스는 1959년 이래 수십 년 동안 4개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내각은 이들 4개 정당이 나눠서 맡고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 대부분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순수 대통령제하에서는 한 정당이, 그리고 대통령 한 개인이 권력을 독점한다. 최소한 49% 이상 국민의 의사가 배제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각 정파는 선거승리를 위해 극한적 대결을 펼치며 이 대립과 대결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

재미있는 현상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처럼 민주적 절차와 국회를 중시하는 대통령일수록 대통령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는 반면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처럼 국회를 경시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대통령일수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순수 대통령제는 비민주적 지도자나 독재자에게 가장 좋은 제도이다. 민주세력이 결코 선호할 제도가 아니다. 순수 대통령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는데 유독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만 나눠먹기 제도 운운하며 그 부정적 요소를 필요이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정치혐오증을 유발하는 행위이며 이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우리나라 제헌헌법은 처음 초안이 내각제였는데 미국식 훈련을 받은 이승만에 의해 갑자기 대통령제로 바뀌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말로는 미국식을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몸과 정신 모두 미국식에 중독되어 있는 정치인과 국민이 많다.

개헌을 할 경우 권력구조는 순수 대통령제 보다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호남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국민 상당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많은 오해와 우려를 품고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지지 개헌론자들은 국민들에게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의 장점을 설명하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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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결정되더라도 박근혜 게이트 방조세력 및 수구세력과는 연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도 해야 한다. 반드시 민주진영이 연대하여 정권교체를 이루고 사회개혁을 단행하겠다는 다짐을 해 촛불을 든 국민 및 민주세력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어야 한다.

지금 정치권과 국민 대부분이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다만 개헌 시기와 권력구조 문제에서 의견이 갈라질 뿐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심의하는 2-3개월 동안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권력구조 문제, 국민의 기본권 문제, 지역분권 문제 등에 대해 지혜를 모으고 바람직한 개헌안을 만들어가는 게 합리적이다.

이 논의 과정을 통해 개헌에 합의하고 개정된 헌법에 입각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만약 논의과정에서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 개헌을 대선 후로 미루는데 합의하면 된다.

대신 대선 후보들은 개헌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대선 때 공약으로 대통령 취임 후 바로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한다. 야권은 선거가 있기 전에 야권 단일 의견을 도출해 내 개헌 문제가 야권의 연대 및 정권창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다.

최영태 전남대 교수(맨 왼쪽)가 21일 광주엔지오시민재단이 주최한 '2016회고와 전망' 토론회에서 '개헌 필요한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꾸는데 개헌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선거법 개정이다. 소수세력의 여론이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선거 연령도 최소한 18세로 낮추어야 한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민주당, 그중에서도 유력 대선후보들은 선거구 제도의 개혁에는 관심이 있지만 개헌, 그 중에서도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지지하지만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양쪽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반면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결사반대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현 시점에서, 그리고 과거부터 내려오는 관례에 따르면 여, 야가 합의하지 않는 한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 모두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양 측이 빅딜을 해야 한다. 두 가지 내용 모두 정치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서로 한 가지씩 양보해야 한다.

개헌 및 선거법 개정은 진보·개혁세력들에게 필수적인 과제이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 및 선거제 하에서는 진보세력의 발전이 어렵다. 지금까지 진보세력들은 선거 때마다 민주진영 후보의 당선을 위해, 혹은 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후보를 사퇴 내지 양보하라고 강요받았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더욱 그러하다. 설령 양보하더라도 반대급부를 반드시 보장받게 되어 있다. 연정의 형태로 내각 참여도 수월해진다. 개헌논의에 대한 진보진영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촛불혁명은 일반 국민이 주도했다. 정치권은 항상 촛불 뒤에서 국민들 눈치 보기에 급급했으며, 뒷북치기로 일관했다. 개헌논의가 이루어질 경우 정치권은 주로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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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개헌논의에 일반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선 민주진영에서라도 야당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개헌논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 시민사회 독자적으로라도 개헌논의 기구를 만들어 독자적인 안을 만들고 정치권에 전달, 수용을 요구해야 한다.

지역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지역분권적 헌법도 중요하다.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주의가 계속될 경우 비수도권 거주 국민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생활 전반에서 2등 국민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국민 통합, 국가 경쟁력 강화, 통일 기반 조성 등 국가 전반에 걸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반드시 이번 기회에 지역분권 개념이 충실히 반영되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재정분권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 지역을 포함하여 비수도권 지역 국회의원 숫자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줄어들고 있다.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의 숫자가 과반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그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국회마저 비수도권 중심주의에 매몰될 가능성이 있다.

이 부정적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상원의원은 미국이나 독일처럼 지역 대표성을 갖는 사람들로 구성하여 제도적으로 지역의 권리가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지역분권 헌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 시민사회가 개헌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위 발표문 요약은 지난 21일 광주엔지오시민재단이 주최한 '2016회고와 전망'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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