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전남대 교수

‘칠푼이’ 대통령

1년 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가리켜 ‘칠푼이’라고 평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대변인은 9년 전 박근혜씨의 정치적 식견 · 인문학적 콘텐츠를 평하면서 “이제 말 배우는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우리는 2014년의 세월호 사태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앞서 두 사람의 평이 그대로 들어맞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말했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대통령의 식견이 설령 어린이 수준이라고 해도 대통령 주변에는 장관도 있고 참모도 있다. 그런데 ‘칠푼이’ 대통령은 장관도, 참모도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없어 그 선발마저 평범하면서 요망한 강남 아줌마 최순실의 머리에 의존했다. 게다가 청와대 수석과 장관들은 대통령과 직접 만나 국정을 논하지 못하고 대부분 서면으로 소통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국민들이 수군거린다. 대면보고를 하면 지적 밑천이 들통날까봐 그런 것 같다고. 궁금증이 생긴다. 대통령은 장관과 참모들이 올린 서면보고내용을 읽기는 한 것인가. 혹시 세월호 사건 때처럼 낮에도 엉뚱한 일로 시간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연설문, 인사 등 국정의 중요 사안들은 최순실에게 맡기고 말이다.

분노를 촛불혁명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국민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엄청 크다. 대통령이 이렇게 저급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대통령이 저렇게 이중적인 인간이었단 말인가. 국격이 떨어져 해외 국민들마저 창피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허탈하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강력한 경고와 징벌을 내리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었다. 온갖 분노와 배신감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한 결의로는 촛불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촛불을 든 사람들이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주변 거리에 무려 백 만 명이나 모였다.
 

지난 19일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과 금남로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 ⓒ광주인

19일에는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 70여개의 중소도시에 또 다시 100만 자루의 촛불이 피어올랐다. 광주에는 옛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 거리가 촛불을 든 10만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직장에서,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마음속에 촛불을 켠 사람은 그보다 몇 십 배 많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90%의 국민, 4000만 이상의 국민이 촛불을 켰다고 보아야 한다.

촛불 광장에는 노래와 춤과 해학과 웅변이 함께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소나무’ 등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떨림과 감동이 함께 했다. 흥분과 떨림에는 분노와 실망감이 함께 했고, 감동의 마음에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결의와 연대감이 함께 했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의 시국발언에서 촛불광장이 민주주의의 생생한 체험장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광장의 목소리와 외침, 해학들에서 민주주의가 온 국민의 마음속에 단단히 체화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분노를 촛불혁명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국민이다.

정치권의 과제는 탄핵절차의 성공적 수행

박 대통령의 정치적 식견은 어린아이 수준이지만 권력욕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최고라고 믿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는 자기보다 몇 배 더 권력을 휘둘렀고, 남용했고, 재산을 갈취했는데 왜 자신의 행위가 문제가 되고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정거린다. 그는 결코 대통령 자리에서 순순히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 혹은 탄핵을 통한 강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의 대응방식이 항상 촛불을 든 국민과 100% 일치할 수는 없다. 정치권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동시에 발전적 대응방안, 그리고 효율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요구와 조금 다르다면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혹자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한다. 철저히 대비하되 그러나 위축될 이유는 없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국민의 분노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전체를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19일 4차 광주촛불집회. ⓒ광주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부결시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87년 6월항쟁의 결과물이다. 헌법재판소가 법을 위반하고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탄핵을 받은 대통령에게 면죄부 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곧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미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헌법재판소가 그런 판결을 내리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여론을 외면하고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총리는 법무장관 시절, 그리고 국무총리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을 뿐만 아니라 정윤회·최순실 사태를 은폐하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이다.

그의 역사관 역시 박근혜와 동일하다. 정치권은 반드시 국무총리를 교체해야 한다. 정치권이 이 문제로 유·불리를 따진다면 그들 역시 퇴출대상으로 지목될 것이다.

촛불혁명에 걸맞은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박근혜 게이트는 ‘칠푼이’ 대통령과 더불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구조의 산물이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분산하며 지역분권·균형발전을 도모하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제도도 국민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백만의 촛불을 축제와 혁명으로 승화시킨 국민 수준에 맞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국민 대부분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개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금 개헌문제가 거론되면 박근혜 퇴진논의가 희석될 수 있고 또 새누리당이 개헌을 통해 재집권 음모를 꾸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금이야 말로 개헌의 최적기이며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 등을 바꾸지 않는다면 촛불혁명의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회에서 통과시킨 탄핵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고 그 결과가 나오는데 수개월이 걸린다. 정치권이 이 기간 대통령 선거 문제를 화두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촛불은 국민이 주도하면 된다.
 

ⓒ광주인

나는 이 국면에서 정치권이 할 최선의 일은 개헌논의라고 생각한다. 권력구조 문제, 국민의 기본권 문제 등을 놓고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바람직한 개헌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논의 과정을 통해 개헌에 합의하고 개정된 헌법에 입각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면 가장 좋다. 논의과정에서 만약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 개헌을 대선 후로 미룰 수도 있다. 대신 대선 후보들은 개헌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대통령 취임 후 바로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중학교 사회과목 및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6월항쟁에 이어 ‘2016년 촛불혁명’이 새롭게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외국의 교과서에도 21세기 지구상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민주혁명 중 하나로 ‘한국의 촛불혁명’이 거론되기를 기대한다. 이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2016년 촛불혁명은 1997년 체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이 일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