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지방분권형 개헌운동 광주전남주권회의 강연문

촛불의 3단계 목표와 로드맵

촛불혁명은 크게 세 단계의 목표와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첫째, 헌정질서를 유린한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관련자들까지 포함 모두 사법적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둘째, 다음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승리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셋째,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틀을 새롭게, 더 발전적으로 짜는 일이다. 1단계 과제는 촛불광장과 국회를 거쳐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제6공화국 헌법의 탄생과정을 잘 아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촛불의 염원을 외면할 리 없다. 이제는 누구도 촛불혁명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촛불을 켜면서 동시에 2단계 및 3단계 과제인 민주정부 수립과 새로운 헌법을 준비해야 한다. 혹자는 민주정부 수립 후 개헌을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정부의 수립과 개헌이라는 두 과제는 선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엉켜 있다. 선거법 개정문제도 함께 얽혀 있다. 이 복잡한 3각 방정식을 잘 풀어야 촛불혁명이 성공한다.

권력구조는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 모델이 더 낫다

ⓒ광주인

개헌의 일차적 방향은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생명권, 성평등권, 소수자 보호, 정보 보호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많을 때는 2백여 만 명이 한꺼번에 촛불을 들었고, 집에서 직장에서 마음속에 촛불을 든 사람들까지 합하면 매주 수천만 명이 촛불을 들었지만 국회가 외면하면 어찌할 수 없는 제도적 모순을 경험했다. 

공직자의 소환권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확대해야 한다. 재벌 위주의 대한민국을 고치기 위해 경제민주화 조항도 강화해야 하다. 헌법 개정으로 국가 경영의 기본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세계 선진 국가들 중 순수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다. 주정부의 권한과 중앙정부의 권한이 잘 배분되어 있다. 여기에다가 3권 분립도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권력이 중앙정부와 대통령 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기능도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제가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정부 수립 후 70여 년 동안 모든 대통령이 크고 작은 불행을 겪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각제와 연립정부는 영국, 독일 등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맞서 연합국의 승리를 이끈 영국의 처칠은 내각제와 연립정부의 수상이었다. 독일 통일을 이끈 서독의 콜 수상 역시 내각제와 연립정부의 수반이었다. 

24일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광주전남주권회의 출범식과 토론회가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광주인

복지국가의 모델로 불리는 북유럽국가들 모두 내각제 국가들이고 대부분 연립내각을 구성한다. 내각제는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내각제는 ‘정치인들의 나눠먹기 제도’라는 주장 역시 대통령제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정치혐오증 부추기이다. 내각제를 비판할 때 흔히 일본을 예로 드는데, 일본은 한 번도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려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사를 존중한다면 한국을 일본과 동급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1950년대 알제리 독립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드골을 정계 복귀시키면서 그의 요구대로 헌법을 대통령제로 바꾸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대통령에게는 외교·국방을, 총리에게는 내정을 책임지게 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분산시켰다. 이것을 우리는 이원집정부제라고 부른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 된 프랑스가 왜 미국식의 순수 대통령제를 거부했겠는가? 한마디로 순수 대통령제가 갖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이 주장하는 4년 중임제 역시 순수 대통령제의 성격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제는 승자가 100% 권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각 정파는 선거승리를 위해 극한적 대결을 펼치며 이 대립과 대결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 정권은 보수와 개혁진영이 번갈아 차지하게 되어 있다. 보수의 집권 기간이 더 길 수도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처럼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한 반면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처럼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주세력이 순수 대통령제를 고집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광주인

유도의 원리 중 하나는 ‘경쟁자의 힘을 전략적으로 이용,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이 자신감을 상실하여 개헌론을 제기한 지금이야말로 권력분점 개헌의 최적기이다. 보수 세력은 다음에 힘을 축적하면 생각을 바꾸어 다시 순수 대통령제로 돌아갈 수 있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민주진영은 더 이상 개헌문제로 우물쭈물하지 말아야 한다.

호남은 이제 소수세력으로 전락했다. 호남의 입장에서는 순수 대통령제 보다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하에서는 다양한 세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고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방분권형 헌법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주의를 방치하면 비수도권 거주 국민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에서 2등국민, 3등국민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래가지고는 국민 통합, 국가 경쟁력 강화 모두 어렵다. 지역균형발전 및 지역분권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이 필요하다. 

1990년 동독인들은 서독에 주저 없이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서독은 지역균형발전과 지역분권이 잘 되었기 때문에 동독인들은 통일 후 동독 지역에도 똑같은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고, 그래서 불안감 없이 서독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겼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통일되면 수도권, 비수도권 주민에 이어 북한 주민들은 3등 혹은 4등국민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이래도 북한 주민들이 통일에 주저 없이 응하겠는가? 통일을 위해서도 지역균형발전 및 지역분권 헌법이 필요하다.

ⓒ함인호 제공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 금년 4. 13총선에서 호남지역 선거구가 2개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작년 말 해외 유턴기업들에게 수도권 공장 건설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수도권이남 국회의원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 

지자체들도 금년 초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상원의원은 미국이나 독일처럼 지역 대표성을 갖는 사람들로 구성하여 제도적으로 지역의 권리가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호남이 개헌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개헌과 선거법 개정안, 빅딜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꾸는데 개헌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선거법 개정이다.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하고, 소수세력의 정계진출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선거 연령도 18세로 낮추어야 한다. 현재 야권은 선거법 개정을 지지한다. 

그런데 민주당과 정의당은 개헌에는 소극적 내지 부정적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개헌은 지지하지만 선거법 개정에는 반대 내지 유보적이다. 여, 야가 합의하지 않는 한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 모두 불가능하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조차 잘 안 되고 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양 측이 빅딜(big deal)을 해야 한다.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개헌에 찬성하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선거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이다. 서로가 한 가지씩 양보하면 국민은 두 가지 모두를 취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진보세력들은 선거 때마다 민주진영 후보의 당선을 위해 후보를 사퇴 내지 양보하라고 강요받았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더욱 그러하다. 설령 양보하더라도 반대급부를 보장받게 되어 있다. 연정의 형태로 내각 참여도 수월해진다. 진보진영이야말로 개헌과 선거법 개정의 빅딜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야권은 공동의 개헌안을 만들어라

ⓒ광주인

2016년 4.13총선 직전의 야권 분열을 상기해 보자. 설마 했는데 결국 분당되어 버렸다. 그때의 교훈을 잊은 채 야권은 또다시 개헌 문제를 놓고 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총선 직전의 분당 때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이 따로따로 움직일 기미가 농후하다. 

신호등이 없는 골목 사거리에서 두 대의 차가 부딪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가?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쌍방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야 3당이 분열하여 만에 하나 정권교체에 실패라도 하면 촛불이 가만히 있겠는가? 촛불은 아마도 야당을 향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제일야당인 민주당에 큰 책임을 물을 것이다. 

개혁진보 진영이 남북문제를 이야기할 때 어떻게 말하는가? 형님격인 남한이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보다 잘 사는 남한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논리는 스스로의 행동 준칙과 국내정치 상황에도 적용해야 한다. 민주당이 먼저 양보안을 제시해라.

야 3당이 공동의 개헌안을 만들어라. 시간이 부족하여 대선 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할 경우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공동으로 선거에 임하라. 승리 후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을 단행하라. 개헌은 집권 초에 실시하여 다음 선거는 새로운 헌법에 따라 실시하라. 그러면 촛불이 추구하는 목표 모두가 달성된다. 국민혁명이 완수되는 것이다.

개헌운동은 국민이 주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개헌은 모두 정치권이 주도했다. 개헌의 내용도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었다. 심지어 개헌논의까지도 정치권이 주도했다. 개헌 공약도 대선후보들이 기자회견장이나 토론장에서 일방적 선언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선심성 공약이 지켜질 리가 없다. 집권 초기에는 경제가 어렵다, 안보가 위태롭다, 중요한 개혁을 해야 한다 등등 핑계를 대며 개헌 약속을 파기했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가면 차기 대선 유력 후보들이 나타나 개헌을 반대한다. 그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해야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과거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이 개헌논의에 앞장서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개헌안을 만들어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이 논의 과정에서 개헌에 합의하고 개정된 헌법에 입각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만약 물리적으로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 대선 때 대선 후보들이 개헌논의의 연장선상에서 국민과의 약속형태로 대통령 취임 후 바로 개헌을 하겠다는 공약을 하게 해야 한다.

ⓒ광주인

지금 정치권과 국민 대부분이 개헌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이 개헌을 주도할 절호의 기회이다. 국민들이 개헌의 시기, 내용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이것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견인해 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시기에, 국민이 원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지 않으면 표를 주지 않겠다는 독한 각오로 개헌운동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의 공약을 실천으로 견인해낼 수 있다.

광주전남국민주권회의의 목적

오늘 출범하는 광주전남국민주권회의의 목적은 국민들 사이에서 개헌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개헌이 왜 필요한지, 개헌을 한다면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 것이다. 정치권이 개헌안을 만들 때 국민의 기본권, 지역균형발전 및 지방분권형 개헌이 되도록 여론을 조성할 것이다.

또 야 3당이 개헌에 대해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 민주정부 구성에 차질이 없도록 견인하고 압력을 넣는 역할을 할 것이다. 대선후보의 개헌안이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견인할 것이다. 개헌의 물꼬를 트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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