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수석 역할이라는 억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우리의 속담은 참으로 교훈적이다. 지렁이에게 급소(?)를 물리면 약도 없다는 우스개가 있다. 지금 이정현이 그 꼴이다. 설마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겠는가. 그러니 조심해야지.
 
■ 세상 많이 변했다
 
나이 먹은 기자들은 5·16 쿠데타가 난 다음 새파란 초급장교에게 기사 검열을 받던 치욕을 잊지 못한다. 볼펜으로 찍찍 그어 자신의 피와도 같은 기사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오장이 뒤집히는 치욕을 느꼈다는 기자들. 언론탄압은 지속적으로 자행됐다. 자기들 마음대로 임명한 언론사 사장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충견이었다. KBS는 일등이었다.
 
세월호 관련 해결비판 기사를 빼라고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이정현이 요구한 것은 그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홍보수석의 임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압력의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녹음했겠는가. 불쌍한 보도국장이다. 지렁이가 꿈틀댄 것이다.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블로그 갈무리

세월호 침몰은 나라의 기둥뿌리가 뽑힐 심각한 사건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사도 되지 않은 철근의 과적이 들통 났지만 얼마나 많은 비밀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을지 모른다. 세월호 인양의 지연이 고의적이라는 국민의 의심이 괜한 것이 아니다.
 
김시곤 국장에게 명령이라도 하듯이 쏟아놓는 이정현의 목소리는 협박으로 들린다. 문득 40여 년 전 박정희 시절이 경험이 떠오른다. 매일 아침 ‘방송만필’이라는 원고를 썼는데 구민 씨가 방송했다. 출근을 하니 철도청 공보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방송 내용 때문이다. ‘냉동열차’라는 방송이 나갔는데 그런 게 나가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럼 ‘난방열차’냐고 했더니 말은 못하면서 고압적으로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다. 다음 얘기는 줄인다.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정현과 김시곤의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고압적인 이정현의 속사포와 곤혹스러운 김시곤의 애원을 국민은 모두 들었을 것이다. 김시곤이 녹음을 결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좋다. 난 지렁이다. 그래도 꿈틀할 줄은 안다.’ 이정현은 녹음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탓이다.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의 보도지침 폭로가 생각난다..
 
이정현은 평소에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돌쇠로 비유한다. 돌쇠는 무조건 고(GO)다. 이 땅에 유명한 돌쇠는 얼마나 있을까. 박정희의 차지철, 전두환의 장세동, 박지원도 김대중 대통령의 돌쇠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돌쇠는커녕…그만두자.
 
박정희의 돌쇠 차지철은 세상 떠나는 날 김재규로부터 ‘버러지’라는 호칭을 받았다. 문제는 돌쇠의 충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총성이 옳으냐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돌쇠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돌쇠다. 이정현이라고 하는 돌쇠가 진정으로 상전을 위하는 돌쇠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중 발생한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은 국민이 분노로 치를 떨고 창피해 했던 국제적 망신이다. 윤창중 성추행사건 보도에 대한 이정현과 길환영 KBS 사장의 협력은 가히 황금콤비었다.
 
“백성을 위해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언론'의 역할이며 권력자의 심기를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건, '언론'이 아닌 '간신배'의 역할”이라고 했다.
 
■ 기자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

 
‘경찰서장실 문은 발로 열고 들어가라’는 선배들의 충고는 이제 없다. 그러나 기자의 생명은 자존심이다. 옛날 거지는 밥을 빌어먹어도 상에 차려 줘야 먹었다고 한다. 던져주는 동전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들에게 자존심이 없다면 이 빠진 진돗개다. 기자들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과의 통화를 들으며 그들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설명이 필요한가. 그래도 통화녹음을 한 것은 마지막으로 매달린 자존심 탓인가. 자존심이란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지만 남도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 통화 내용 중 김시곤 국장의 구슬픈 애원과 돌쇠의 위압적 억압은 나의 편견 때문인가.
 
정말 잘못 배웠다. 대한민국 지식인의 절반은 통화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상전에게 얼마나 치명적 명예실추가 되는지 돌쇠는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KBS는 김시곤 국장에 대한 언론압력의 부당성을 잘 알면서 입도 뻥끗 못 한다.
 
‘방송은 장악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2013년 3월 대통령의 말이다. 기억하는가. 못하는 모양이다.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이정현이 김시곤에게 한 겁박이 ‘홍보수석의 임무’라는 것이다. 방송에 대한 압력이 홍보수석의 임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 수준이다.
 
이정현의 행위는 최소한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는 법률가의 의견이다. 이정현의 지역구인 순천의 시민단체들은 이정현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한다.
 
한국에는 관훈클럽 기자협회 PD협회를 비롯해서 각종 언론단체들이 많다. 어떤가. 이정현과 김시곤의 통화내용을 들었는가. 아무 의견도 없는가. 없으면 도리 없지. 그렇게 기레기로 살다가 가는 거다. 얘기가 길었다. 이만 줄이자.
 
KBS에는 김시곤이라는 지렁이가 있어 밟힌 후 꿈틀댔다. MBC는 어떤가. 아무 간섭도 없었는가. 아니면 꿈틀대는 지렁이도 굼벵이도 없는가. 언론자유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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