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존경 좀 받고 살자

‘내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섰는가?’ 홍만표가 검찰청 포스트 라인에 서서 토해 냈다는 장탄식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할 때 어땠을까. 출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웃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홍만표는 자신을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패장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여겼을까. 홍만표는 가장 잘 나가는 검사였다. 특수검사로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이제 누가 그를 조사하고 있을까. 후배 검사 앞에서 조사받는 그는 지금 후회를 하고 있을까.
 
■ 인생은 관 뚜껑 덮어봐야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지난 5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비리 의혹 연루 혐의로 소환되는 모습. ⓒ민중의소리 갈무리

홍만표 전 검사장은 전관예우라는 특혜를 사전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한 주인공이다. 123채의 오피스텔. 수백 억의 재산이 무슨 죄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할 말이 많다. 얼마나 불의한 뒷거래가 있었겠느냐고 묻는다. 그의 재산은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올곧은 전직 고위관료가 있으며 검사장 출신의 법관이 있겠는가. 이들의 가슴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옛날 같으면 딸자식 시집도 못 보낸다고 할 판이다.
 
왜 유난히도 검사들의 처신이 문제가 되는가. 왜 특수통 검찰이 도마 위에 오르는가. 검찰이 왕인 시대에 그들은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검찰이 국민의 지탄과 경멸을 대상인 때는 없었다. 자유당 독재 때도 이러지 않았다. 참여정부 때는 더욱 이러지 않았다. 생방송에서 대통령이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것이군요’ 할 정도로 기가 살았다. 지금은 어떤가. 눈치 보느라고 ‘가자미눈’이 되었다고 한다. 경찰을 일컬어 ‘견찰’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의 검찰을 보자. 떡검·섹검·스폰검사·그랜저검사.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검찰에 붙는 별명이 늘어난다. 요즘 옛날 별명이 다시 뜬다. 견검(犬檢)이다. 정치권력에 충성한다는 의미다. 주인에게 충성스런 개(犬)에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얼마나 분통이 터질 것인가. 할 수 없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 것이다.
 
법이 무너지면 남는 건
 
‘검사동일체의 원칙(檢事同一體─原則)과 기소독점주의’는 검찰에게 보검과 같은 무기다. 검찰에게 위에서 내린 지시는 직사광선처럼 내리 꽂힌다. 말이 필요 없다. 정당성과 부당성은 속으로만 따져라.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동일체 원칙이다. 기소독점주의는 어떤가. 엿장수 가위다. 길게 자르던 짧게 자르던 맘대로다. 얼마나 대단한가. 법으로 보장된 기막힌 탈출구다.
 
검찰총장이 누가 됐는가를 보면 검찰의 갈 길이 훤히 보인다. 채동욱을 보면 알고 황교안을 봐도 안다. 이래서 백 년이 가도 검찰의 신뢰는 회복이 안 된다. 백 년 천 년 갈 줄 알았던 권력이 손에서 떠나고 포토라인에 선 홍만표의 가슴에서 나온 한 마디. ‘어쩌다가 내가 이 자리에 섰나?’는 검찰의 자업자득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완벽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일뿐 문제는 사람이다. 지금 검찰에 희망을 품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가. 정운호 사건에서 나타난 법조계 불법과 비리는 국민으로 하여금 절망의 늪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뼈에 사무치게 느끼게 한다.
 
법이 제 자리에 서면 국민은 걱정 없다
 
죄를 짓고도 겁이 안 나는 정운호 같은 사람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 50억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50억을 받고 변호를 맡는 전관예우의 부장판사와 전직 검사장. 국민들에게는 무엇으로 보일지 생각해 보았는가. 존경에 대상으로 보였을까. 구속되어 법정에 서는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인간적 연민이다. 권력과 정권에 대한 불신이다. 바로 나라를 망치는 게 그들이라는 것이다.
 
이 땅에는 이제 믿음이 없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는 국민이 없다.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언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조·중·동을 비롯해서 종편은(JTBC 보도부분 제외)은 아이들하고 함께 보기가 민망하다. 정치 시사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사람들은 분별력이나 있는가. 그들의 과거 행태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정권 바뀐 후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사람들은 정권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비관한다. 저지른 잘못이 하도 많아서 덮을 수가 없으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정권연장을 하리라는 것이다. 어림없다. 바랄 것을 바라야 한다.
 
정권교체는 국민의 소망이며 필연적이다. 힘으로 막기 전에는 반드시 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섰는가’ 탄식하기 전에 참회하라. 잘못을 모르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이 응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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