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결단,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그리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충신 ‘성충’과 ‘홍수’는 의자왕 앞에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부딪치며 충언을 한다. “나라가 위태롭사옵니다. 밝은 정치를 베푸셔야 하옵니다” 의자왕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백제는 망했다.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 왕의 종말은 비참했다.

집안이 망할 때 효자가 나고, 나라가 망할 때 충신이 난다고 한다. 그러면 효자도 충신도 없는 때가 가장 좋은가. 아니다. 효자나 충신은 어느 때나 필요하다. 이유는 하나다. 이들은 소금과 같기 때문이다.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불의가 판을 친다. 질서가 무너지면 집안이고 사회고 엉망이 된다. 난장판이 된다. 요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는 말 중에 ‘난장판’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정치를 보면서 하는 소리다. 난장판의 중심은 어딘가. 유감스럽게도 ‘청와대’라고 한다. 얼마나 국민이 답답하면 청와대를 난장판이라고 하겠는가.

펄쩍 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난장판이냐.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게 마련이고 더군다나 어려운 나랏일을 하는데 이만한 일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정말 그런가. 그렇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에 불신을 산 정권이 어디 있었는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국민을 야속하다고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은 답답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국민은 물을 것이다. 잘한 것이 뭐가 있는가. 또 답답해진다. 평가에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빠른 것은 직관이고 또 하나는 여론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얼마나 맞는지는 말도 많지만 일일이 물어볼 방법도 없으니 여론조사라는 것을 보도록 하자. 대통령은 무척 듣기 싫을 것이다.

흔히들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한다. 최소한 50% 선이다. 영남지역에서는 강철지지율이다. 콘크리트에 금이 가고 강철에 녹이 슬었다. 험담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15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39.7%로 나타났다.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라고 한다. ‘잘하는 편’이라는 여론은 27.6% 로 나타났다.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주)베스트인사이트>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9일간 2040세대 1,009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이용한 온라인 조사결과 83%가 박근혜 정권의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젊은 세대는 완전히 기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지지율 하락이 취임 이후 계속되다가 요즘 들어 불변의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인심을 잃어가는 판에 이번 십상시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은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타난 정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어떻게 비서관 3명과 아무런 직책도 없고 10년 전 이미 떠나버렸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 비서실장 정윤회가 이토록 국정에 깊이 관여해 청와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아직 조사가 안 끝나서 모른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인식은 불변이다. 더욱 서글픈 일은 설사 그들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나도 국민들이 믿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안 믿는가? 다시 국민이 묻는다. 어떻게 믿는가?

늘 말하듯 정치의 기본은 신뢰다. 신뢰는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백약이 무효다. 출발은 선거공약 파기에서 시작되어 세월호 참사가 정점을 찍었다. 대통령의 눈물은 국민들로 하여금 눈물의 의미조차 불신하게 만들었다. 목이 메어 실종 아이들의 이름은 부르던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은 거짓의 상징으로 가슴에 새겼다. 천추의 한이다.

■무엇을 더 기다리는가?

권력투쟁은 있게 마련이다. 여당과 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 정책을 사이에 두고 투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의 동생과 문고리 권력이라는 3인방과 정윤희 사이에 권력다툼이 국정을 흔들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는 심각의 정도를 넘어 나라의 운명이 걸린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조사 보고서가 ‘찌라시’로 명명되고 대통령이 작명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찌라시’라고 명명된 문건의 유출이 청와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까짓 ‘찌라시’가 뭐가 그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경찰이 자살했다. ‘찌라시’가 폭탄이 된 것이다.

자살한 최 경위의 유서를 보면 마음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최 경위는 ‘자신도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렸을 것’이라며 한 경위에게 회유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한 경위 부인은 포승줄에 묶인 남편 앞에서 문건을 내놓으라는 회유인지 협박인지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사실이면 사람이 아니다. 회유란 달래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에서 왜 회유를 했을까. 국민은 혼란스럽다.

믿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이 정권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행을 넘어 심각한 일이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 회복하는가. 신뢰를 보여주면 된다.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책임질 것은 확실하게 지고 책임 물을 것 역시 확실하게 물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을 어겼다.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제대로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 논설실장의 칼럼

한국의 정치판을 겪으며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다. 하도 기막힌 일이 많아서다. 이번에는 정말 놀랄 일이 일어났다. 조선과 동아의 변화다. <조·중·동>이라는 비아냥으로 회자되는 극보수 언론이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실장의 논설이 놀랍다. 아니 반갑다. 김순덕 논설실장의 시각이 정확해졌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12월 15일자 칼럼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통해 이렇게 썼다.

"그까짓 ‘찌라시’에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인 이유도 대통령은 변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절망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야당의 공격 소재였던 ‘겨울왕국, 유신공주’는 현실같이 됐다. 이제는 국민이 변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비밀주의와 보안철통주의, 고집불통주의까지 받아들여야 다음 대선까지 그러려니, 더는 속 끓이지 않으면서 경제라도 나아지길 바랄 수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극한적 절망감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 대통령의 절대 신앙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끄집어내 박 대통령을 융단폭격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보수진영에서 나온 비판 가운데 박 대통령에게 가장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접근법이다. 당연한 지적이기에 길게 인용한다.

‘정윤회 문건’이 터진 뒤 골수 친박을 뺀 상당수 사람들이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비서실 개편을 촉구했다. 대통령이 찌라시라고 일축해도 국정농단 세력이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의문, 결국 청와대가 찌라시 생산 수준밖에 안 된다는 실망은 실제 상황이다. 이제 돌파구는 비서실 개편뿐이라면서도 사람들은 “대통령은 절대 안 바꿀 것”이라고 희망을 버리는 중이다.‘

‘직언하는 참모도, 쓴소리 해줄 원로도 없고 의논할 동지도, 심지어 비선도 없다는 대통령을 가장 안타깝게 바라볼 사람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만일 내가 죽은 뒤 내 딸이 혼자 동동거린다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을 것이 분명하듯이, 박정희 혼령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 식으로 3년이 더 흘러가면 미래는 더 암담하다. “박정희를 떠올리고 박근혜를 찍은 것이 잘못”이라는 소리가 50대 이상에서 계속 나올 경우, 대통령은 영영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다.’ “달라지겠다고 약속하겠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오.” 미래까지 미리 본 스크루지는 유령 앞에 무릎을 꿇는다. 고맙게도 모든 것은 꿈이었고 ‘미래를 바꿀 시간이 있어 더더욱 기뻤다’고 디킨스는 썼다. 대통령에게도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믿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찌라시는 시한폭탄이 됐다. 시계는 돌아간다. 이번에는 ‘몰카시계’가 등장했다. 왜 이러는가. 원폭실험으로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 ‘비키니 섬’의 거북이 같다. 한국은 ‘찌라시 3인방 폭탄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의 민심도 변하고 있다고 대구의 언론들이 보도한다. 이제 남은 것은 박대통령의 결단이다. 어떤 결단인가. 인명진 목사의 경향신문 인터뷰로 대신한다.

“안 바뀌면 나라가 불행해 진다. 그러면 앞으로 3년은 또 어떻게 하는가” “국정동력 회복을 위해선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이 “역사적·정치적·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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