閣下(각하)! 얼마나 시원하십니까.

옛날 얘기 하나 하자. 1956년 5월 3일 민주당의 신익희 대통령 후보가 한강백사장에서 30만 시민을 앞에 두고 연설을 한다.

“이승만을 대통령 각하라고 합니다. 각하가 무슨 각하입니까. 脚下(각하)는 ‘다리 밑’을 각하라고 하는 거에요.”

30만 시민이 박장대소를 했다. 진짜 박장대소다. 실화다.

▲ ⓒ청와대 갈무리

대통령을 脚下(각하)라고 한 신익희의 해학, 해석을 하면 脚下(각하)는 다리 아래다. 바로 국민의 발바닥이 되는 것이다. 연설을 들으며 국민은 갈증을 풀었다. 이승만 독재에 대한 스트레스를 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좋아했다. 낚시하다가 뱃속이 불편했던지 방귀를 뀌었다. 수행하던 내무장관 이익흥은 날세게 한 마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이 말은 아부성 발언의 절창(絶唱)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각하라는 말이 참으로 좋은 모양이다. 자유당 시절 별 하나짜리 준장이 사단장이고, 사단장을 각하라고 불렀다. 부사단장은 대령이다. 어느 날 부대 정문에 여자 하나가 타났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 ‘나 부각하 사모님인데’ 희한한 세상이었다.

각하가 사라졌다. 노태우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추방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신고를 했다. 대신 ‘대통령 님’이 탄생했다. 대통령은 ‘님’이었다. 그러던 각하가 느닷없이 다시 살아났다. 2014년 12월7일, 각하를 무덤에서 살려 낸 인물은 새누리 원내대표 이완구. 죽은 각하를 부활시킨 박수무당이다.

12월 7일 오후 청와대. 대통령이 참석한 새누리당 지도부와 예결위특별위원 오찬장. 이완구가 인사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참 어려운 날, 힘들게 이끌어 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의원 여러분이 먼저 박수 한 번 보내주시죠"

"연금개혁 등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은데 함께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은다면 못할 것이 있겠냐"


"'대통령 각하'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한다면 능히 해낼 수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할 때 국민들이 저희를 믿고 성공한 박근혜 정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대통령 각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각하’가 세 번 등장했다. 박근혜 정권 이후 공식석상에서 ‘각하’란 호칭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날 오찬에 모인 60여 명은 모두가 한 가락 한다는 대한민국의 지도급 인사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고 집권당 의원들이다. 세 번이나 등장하는 ‘각하’라는 호칭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생각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이완구는 지금 후임 총리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설마 그래서 ‘각하’를 연발한 것은 아니겠지. 너무나 존경해서 쓴 호칭이겠지만 과공은 비례라는 말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30%대로 추락

정치인들처럼 지지율에 대해서 신경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정치인은 지지율 먹고 산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얼굴이 흐렸다 개였다 변화무쌍이다. 지지율만 올라간다면 개똥이라도 집어 먹을 것이다. JTBC <뉴스룸>은 지난 5일과 8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했다. 결과는 39.7%로 여론조사 이후 최저였다.

특히 '30%대 지지율'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통치 불능'의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분석하는 수치여서, 박 대통령이 집권 2년 차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박대통령의 지지율을 추풍낙엽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도 알고 있고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각하’를 연발하던 이완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은 청와대가 한국정치를 망가트린 진원지로 알고 있다. 국가최고 통치기관에서 만들어진 공식 문건이 대통령에 의해서 ‘찌라시’로 규정되고, 이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유출된 문건의 내용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리는 3인방 비서관과 ‘십상시’로 호칭되는 그림자 권력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으니 이를 보는 국민들의 정권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지율이 30%대 까지 나온다니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검찰이 수사한다고 하지만 국민이 얼마나 믿어 줄는지 검찰도 답답할 것이다. 국민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원망하면 안 된다. 모두가 자업자득이니까. 검찰이 어떻게 발표를 해도 지금 이 나라가 중병이 든 것만은 틀림없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바람 잘 날이 없다. 천재지변이라면 하늘을 원망하겠지만, 세상이 다 아는 ‘사람’ 잘못이니 그 원망이 어디로 갈 것인가. 모른다면 바보 선언이다.

■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콧물감기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마치 질병의 벽 속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수많은 치료제가 발명된다. 앞으로 질병 없는 세상은 올 것인가.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 하더라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심장에 병이 들었는데 다리에 연고나 바르고 있으면 치료가 될 것인가. 세칭 ‘십상시의 난’이라고 부르는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전횡은 국정혼란의 원인이다. 거기에다 대통령이 수시로 던지는 가이드라인식 발언은 국민들로 하여금 검찰수사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 움직이는 데는 천부의 능력을 갖춘 검찰이 하늘보다 무서운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서 한 뼘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검찰조사는 일종의 요식행위고 정교하게 쓰인 시나리오 발표로 끝날 것이라고 국민은 생각한다.

그렇게 끝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닌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바로 국민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이 믿지 않으면 모두 다 도로아미타불이다. 국민의 바다에서 권력이란 한 줌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그것을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오기로 버티는가. 막가자는 것인가.

"국무위원 언행은 사적인 것 아니다“

유진룡 장관의 발언을 염두에 둔 대통령의 발언이다. 옳은 말이다. 국정의 일단을 책임진 장관이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된다. 그와 아울러 대통령도 같다. 아니 대통령이야말로 자신이 한 말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기에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고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대통령의 눈물이 지금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단한 결의다. 그러나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재오가 유신의 부활을 경고했다. 누가 유신을 꿈꾸고 있는가. 착각도 정도 문제다. 이 정도로 착각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국민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항해불능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누구도 세월호 이준석 선장처럼 도망칠 수는 없다.

■'화타'가 살아와도 속수무책

십상시의 지록위마(指鹿爲馬)는 2천 년 전 일이다. 시공을 뛰어넘어 하필이면 대한민국에 나타난단 말인가. 국운이 다 했는가. 아침에 신문 펼치기가 두려운 국민이 어디 하나둘이랴. 상처가 하도 많아 어디를 치료해야 할지 ‘화타’같은 명의가 나타나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제 이 상처는 명의가 아니라 국민이 치료해야 한다. 왜냐면 국민이 바로 당사자이고 죽는 사람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썰렁한 주파수에 정확히 반응해 박장대소나 하는 새누리 의원들의 머리는 대통령과 완벽한 이신동체(二身同體)다. 할 말은 하겠다는 김무성 당 대표의 공언은 이불 속 헛소리가 됐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 몸”이라는 김무성 대표의 말은 바로 대통령의 행동에 따라 동으로도 가고 서로도 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육신만 있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영혼 부재 증명이다.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가 만든 보고서를 대통령이 스스로 ‘찌라시’라고 규정한 순간 대한민국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추악한 권력암투, 사라진 공직기강, 물고 뜯는 이전투구가 하나둘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은 부끄럽다.

정윤회가 검찰에 나와 ‘불장난’을 언급했다. 이 역시 가이드라인인가. 그러나 해가 진다고 태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내일도 뜬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