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가수가 ‘안면인식장애’가 있음을 털어놓았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연예계 관계자들은 그녀를 ‘버릇없는’ 사람으로 오해 했고 이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하였다고 이야기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취재 차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 많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고... 하지만 문제는 ‘돌아서면’ 금새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싫어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너무 많은 것을 익혀야하는 수습기자에게 이름도 얼굴을 기억해서 ‘대입’ 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간의 수습생활 중 시교육청에 세 번 갔었다. 첫 번째 날, 안순일 전 교육감부터 공보실 사무관, 광주 지역 수많은 일간지의 선배기자들까지 ‘안녕하세요’ 넙죽넙죽 인사하고 다니며 명함도 잔뜩 받았다. 난생처음 명함을 주고받으며 하는 인사에 '어른 다 됐네'라는 느낌도 들고 뿌듯하고 기뻤다.

두 번째 시교육청을 찾은 날은 혼자였다.
건물구조도 워낙 복잡해서 두리번거리며 기자간담회 장소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인사를 건넨다. 나도 따라 씨익 웃으며 인사한다. 하지만 그 분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분은 공보실 직원이셨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시교육청에 갔다. 그래도 두 번 와봤다고 어깨 쫙 펴고 ‘구내식당은 어디인가요?’ 라고 묻기도 했다. 나름 발전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한다.

새롭게 단장된 조직도 살펴보고 차도 한잔 마시며 이야기도 나눴다.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우리 지난번에 인사 했어요”
난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이분은 도대체 누구실까? 못 알아본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누구라도 눈치 챌 정도의 연기력이기만 하지만.

심각함을 느꼈다.
새파랗게 어린 초보 기자가 인사를 ‘받아먹고’ 있다니!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나도 혹시 안면인식장애 아니야?’ 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가 맞다!
넥타이 매고 점잖게 앉아 차 마시며 만난 사람들이 아닌, 차가운 바람 매섭게 부는 날 언 손 녹여가며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기억이 나니까!

이렇게 내가 ‘안면인식장애’ 따위는 없다는게 밝혀졌지만 어떻게 하면 새롭게 만나는 많은 분들을 '잘' 기억해 낼 수 있을지는 한동안 풀리지 않는 열쇠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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