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에 의해 5·18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며 한 때 방관과 무기력증에 빠졌던 사람들 국민과 역사 앞에 5·18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사명을 느끼고 나서야 한다."

6·25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7월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와 야당 세력을 압박해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여 한국 민주주의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사건을 일러 정치파동이라고 한다.

4년의 초대 대통령 임기 만료를 앞두고 국회와 불화를 겪던 이승만은 재선을 위해 대통령 선거를 국회의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로 바꾸려 하였다.

그러나 야당 세력은 오히려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하고 나아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시도하였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미 서북청년단 잔존 세력 등으로 구성한 정치깡패들을 백골단, 땃벌떼 등의 이름으로 활용하며 부통령 이시영, 김성수 등을 포함한 반대파에 백색테러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1952년 5월 26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체포하는 한편 직선제 개헌안 통과를 위해 국회를 해산시키는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였으나 전쟁중 내부혼란을 우려한 미국과 UN한국위원단의 개입으로 저지당했다.

1952년 7월 4일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감금되고 위협을 당하는 상태에서 직선제 개헌안과 야당측 개헌안을 절충한 ‘발췌개헌안’이 통과되었다.

이승만은 1952년 8월 5일 실시된 선거에서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 자유당을 창당하고 헌법을 직선 대통령제로 변경함으로써 장기집권으로 들어섰다.

1951년 10월 1일 영국의 권위있는 더 타임스(The Times) 기사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문구가 실렸다.

이 표현은 1955년 10월 UN한국재건위원회 위원인 벤가릴 메논이 재차 한번 인용하고 1966년 12월 미국 해외홍보청장 칼 로완이 다시 언급하면서 이승만 독재에 이어 박정희 군사독재로 얼룩진 한국의 정치를 상징하는 용어로 굳어져 버렸다. 

ⓒ광주인 자료사진
ⓒ광주인 자료사진

자칭 공법단체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가 3·1독립운동 105주년, 5·18민중항쟁 44주년을 맞는 3월초 제2대 임원을 뽑는 선거를 포함한 총회를 공고했다고 한다.

현재 자타공인 5·18단체들의 실질적 지배자라고 했던 비선실세 이정호 씨가 2월 5일 오월어머니집 관장에 대한 성희롱 협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지 약 4주만에 열리는 총회다.

5·18단체들은 이정호파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반이정호파 또는 민주쇄신파라고도 하는 사람들로 갈려서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정호 씨는 국고보조금 횡령 등 또다른 혐의로 고발되어 법적 절차가 진행중이어서 만기출소를 하게 될 지 추가 징역 형량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수감 중에도 옥중 정치를 시도한다는 그가 불구속 상태가 되는 경우 5·18단체들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임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회사명을 알 수 없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5·18부상자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회원들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부상자회의 이사회는 이정호 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인권·평화·통일의 5·18정신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민주쇄신파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정호파 이사회는 자파에게 유리한 2년 전의 선거관리위원들을 그대로 기용하여 지난 1월 말에 각 지부별로 대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그동안 자파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사람들에 대하여 자파가 임명한 상벌위원회에 회부하여 징계를 가해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했다고 공지했다. 

민주쇄신파에서는 그들이 징계를 가한 사람 명단에는 회원가입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고, 대의원 당선 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징계를 당했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민법 등 사회법과 관례상으로도 당연한 소명의 기회마저 박탈한 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사회를 소집하고 징계결과를 발표한 회장 직무대행자가 법적으로 권한이 없는 자이므로 징계가 모두 무효임을 감독주무관청인 국가보훈부의 담당관이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민주쇄신파 연합이 3월 초의 정기총회가 성원을 충족하지 못해 성립이 되지 않도록 하자며 움직이는 사이 이정호파는 회장과 부회장을 단독 후보로 등록하고 자파 사람들 9명을 이사 후보로, 1월의 대의원 선거 낙선자 2명을 감사 후보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동안 이정호와 관련된 소송에서 부상자회가 아닌 이정호의 이익을 대변해온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는 이번에도 선거관리위원으로서 회장 부회장은 모두 단독 후보이고 이사 감사도 모두 정관상 숫자에 부합하니 무투표 당선으로 선포하자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거의 선관위 쿠데타 수준이다.

이쯤 되면 5·18단체들에게서 5·18정신이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민주진영과 5·18폄훼세력들의 비아냥이 증명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 앞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 그렇게 비참한 평가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4·19혁명과 5·18민중항쟁,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을 거치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해냈다.

물론 그 절차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내용까지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작금의 정치상황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지만 말이다.

기존 적폐세력에 가담했던 자들은 현재 국가유공자 예우와 매월 보훈연금을 받는 혜택을 위해서는 자기네 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15일 전국 646개 시민사회단체와 666명의 시민을 대표하여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5.18역사왜곡 퇴출' 광주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광주인
지난해 5월 15일 전국 646개 시민사회단체와 666명의 시민을 대표하여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5.18역사왜곡 퇴출' 광주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광주인

물론 지난 40여년간 5·18유공자들이 경제적으로 또 건강문제로 깊은 상처를 받아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5·18정신에 대한 배신의 댓가로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5·18영령들을 욕보이는 것이요, 5·18을 사유화함으로써 역사 앞에 죄인이 되는 길이다.

먼저 가신 분들보다 44년을 더 먹고 더 살았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5·18을 사유화하고 사적 이익에 이용하려는 자들이야말로 5·18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고 하는 5·18의 역적이다.

정치파동이라는 기막히고 한심한 수작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고 사익을 추구하려던 자들은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선실세에 의해 5·18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며 한때 방관과 무기력증에 빠졌던 사람들 역시 국민들과 역사 앞에 5·18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사명을 느끼고 나서야 한다.

5·18이라는 이름은 특정세력이 빨대를 꽂을 대상이 아니라, 44년전 수백 명의 피를 흘려 지켰던 고귀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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