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김성수, 2023)이 개봉 18일간에 630만 관객(12.10 기준)을 돌파하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각하” 아래 군 내 지연(경상도)과 학연(육군사관학교)으로 ‘하나회’가 조직되어 군부가 더욱 득세하던 시절, 10.26 사건을 기점으로 발발한 12.12 군사 쿠데타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전두광(황정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전두광(황정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사라진 ‘절대 권력’의 자리를 무력으로 차지하려는 반란군 무리와 원칙을 고수하며 이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는 진압군들의 9시간 동안의 사투를 그리는 이 영화에서 선악은 매우 극명하다.

입체적인 인물들이 대부분인 요즘 영화들과 달리 투박한 매력이 있다.

특히 반란의 중심에 있는 전두광(황정민) 캐릭터의 결은 그 어떤 인물보다도 확고하게 그려진다.

그를 따르는 노태건(박해준)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점점 커지는 반란의 규모에 ‘이 선택이 과연 맞는지?’와 같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것처럼 영화는 표현한다.

그러나 전두광의 경우는 그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신의 결정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이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한층 더 강력한 당위성으로 무장하여 탱크처럼 밀어부친다.

이에 맞서는 이태신(정우성)은 이런 전두광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 반대의 축으로 기능하며, 두 인물은 시종일관 팽팽하게 대립하고, 이러한 대립 구도가 곧 영화의 서사적 골자가 된다.

‘역사가 스포’라는 요즘 말도 있지만, 이 영화는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몰입이 방해되지는 않는다.

'서울의봄'이 여타 영화처럼 뜻밖의 굵직한 결과가 주는 충격에 기대기보다, 그 결말까지 치닫는 과정 안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표현이 이른바 ‘예술적인 쾌’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쪽처럼 결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인물들과 반대로 매 시퀀스마다 심적 갈등을 겪는 주변인물들의 심리가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이태신(정우성)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태신(정우성).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는 실제 역사적 팩트만을 통해서는 결코 감각할 수 없는 무언가다.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창작물이지만 실제 군 기록과 이후 열린 5공 청문회, 인터뷰 등의 내용을 토대로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도 눈에 띤다.

김성수 감독은 아무래도 실제 역사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그럴 법한’ 몇몇 상상들을 적재적소 배치하는 아주 디테일하고도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 

N차 관람한 필자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런 이미지들은 모두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새롭게 창조된 서사의 이미지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물론 영화는 그 자체가 허구지만서도)

예를 들어 극 중 전두광의 유일한 단독 신이라고 볼 수 있는 화장실 신이 그러하다.

빨간색 조명(이정환 조명감독)이 강렬한 이 신은 아군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전두광의 깊숙한 속내를 짧지만 굵게 그려내는 데 일조한다.

조명과 더불어 화장실 거울과 세면대 물 안에 비친 전두광의 기괴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숏은 악인의 한층 더 추악한 이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홀로 자기 자신과 마주했을 때여야만 보여지는 그 얼굴을 이 영화는 '거울'과 '물'이라는 간접적인 요소를 통해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해낸다.

사실 이 화장실 신은 삭제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봄' 속 12.12 쿠테타 작전계획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서울의봄' 속 12.12 쿠테타 작전계획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김성수 감독이 이 신을 굳이 초반과 후반, 두 번이나 배치한 데에는 영화가 그만큼 전개 과정에서 인물의 내적 심리를 드러내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화장실의 빨간 조명의 경우에는, 후반부 ‘바리케이드 신’에서도 빛을 발한다.

전두광과 이태신이 초반 잠깐의 마주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 신에서 감독은 한 공간이지만 다른 색의 조명을 사용하며 두 인물의 극명한 대비를 가시적으로 배가시킨다.

굳이 색을 특정하게 기호화시키지 않아도, 이러한 시각적 충돌만으로도 충분히 이들의 심리가 표명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는 이태신과 전두광이라는 중심인물들 간의 투 숏이 초반과 후반부 각각 한 번씩 등장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9시간이라는 짧은 충돌의 순간, 두 인물이 마주할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니 당연한 설정이다.

그런데 초반에 총장실을 오가던 두 인물이 우연히 복도(조선대학교에서 촬영)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댄 감독의 각별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김상범 편집감독(<왕의 남자>(2012), <변호인>(2013), <베테랑>(2015), <택시운전사>(2017), <헤어질 결심>(2023)을 작업했다)은 이 복도신에 대해 “없어도 되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 하나로 뒤에 이어질 장면들의 긴장감이 더 높아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 바있다.

이외에도 은밀한 작당모의를 위해 불을 끄고 진행하는 하나회 회동 신 또한 관객의 머릿속에는 전혀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로서 인상 깊게 각인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절친한 관계인 전두광과 노태건이 서로의 절대적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 담뱃불을 나누는 모습은 인물 간 관계성이나, 전체적인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지극히 영화적 순간 중 하나가 된다.

이태신과 전두광 첫 대면 장면, 조선대학교 본관 복도에서도 촬영되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태신과 전두광 첫 대면 장면. 조선대학교 본관 복도에서 촬영되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이 영화 전체를 견인하고 있는 불안정한 카메라 움직임(이모개 촬영감독)만큼이나 불안하고 엄혹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어떠한 반전 없이 이태신의 진압 실패로 마무리된다.

비극적 결말에 있어서, 역사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완전히 재창조해버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소환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으로는 든다.

그러나 그 어떤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제작해도 씁쓸한 뒷맛이 남을 수밖에 없는 안타깝고, 아픈 우리의 역사다.

김성수 감독은 일종의 ‘비극이 주는 쾌’를 앞서 언급한 몇몇 이미지들을 더해내 완성해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는 약 630만 관객이라는 수치로 현재 증명되고 있다. 

앞으로 천만 영화의 반열에 드는 그 순간까지, <서울의 봄>의 봄(Spring/Watch)이 지속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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