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캐릭터 속에 작가의 뒷모습.

이조흠 작가는 ‘대중적인 캐릭터’와 ‘작가 자기 자신’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되고 모순된 조합을 통해 거대한 익명성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똑같이 생긴 캐릭터들의 ‘앞모습’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그의 ‘뒷모습’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존재인지 숨고 싶어하는 존재인지 알 수 없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현대인의 자아를 표상하는 듯했다.

그것이 과거 이조흠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고 받았던 인상이었다.

최근에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얼굴 이미지 작업과 이모지 플러터 소묘 작업을 진행 중인 그를 만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시대 감각을 보여주는 것

이조흠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이조흠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가진 세대 감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02학번인 그는 초등학교 때 컴퓨터를 배웠다.

MS도스에서 윈도우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고, 이메일이 생겼으며, 모뎀에서 ADSL로 급격히 넘어간 인터넷을 경험했다.

PC통신과 삐삐, PCS,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등을 모두 경험한, 이른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하는 소용돌이를 겪은 세대이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변화를 겪은 이들은 디지털이라는 매체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는 최신 디지털 기술 자체를 사용하는 것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사이의 전환,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형식의 변환, 의미의 이동 같은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로운 매체로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는 것 대신에, 지금 동시대 현상들, 동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샘플링(sampling)’이다.

‘샘플링’은 음악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기존에 있는 음원을 그대로 따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음악기법이다.

그가 작품활동과 함께 하고있는 ‘디제잉’ 행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의 디제잉 활동과 아티스트로서 시각예술 작업의 방식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업에서 이러한 ‘복제’와 ‘원본’ 사이 성격을 지닌 작품의 표본을 만드는 것을 ‘샘플링’이라 명명하고 있다.
 

■샘플링, 재맥락화

그가 최근 시도하고 있는 ‘플러터 소묘’ 작업 <sampling –emoji>(2022) 연작을 보면, 마치 이모지를 펜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소묘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분명 펜으로 그린 것인데, 작가의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펜을 꽂은 X축과 Y축 방향으로 움직이는 프린팅 기계가 그린 것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표정인 이모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여러 번의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작업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는 일단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이모지를 커다란 크기로 확대한다.

이조흠 작가-sampling - emoji, 2022, pen on paper acrylic pannel 60x60cm. ⓒ광주아트가이드
이조흠 작가-sampling - emoji, 2022, pen on paper acrylic pannel 60x60cm. ⓒ광주아트가이드

원래의 작은 이미지를 확대했기 때문에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화질이 깨져 있는 이미지를 태블릿을 이용하여 소묘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디지털기기를 통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프로그래밍 한 후, 실제 펜을 꽂은 플러터 프린터기를 이용하여 종이에 프린팅한다.

현재 그에게는 이모지 그림에 대한 수많은 샘플링 작업이 실물작품으로도 컴퓨터에도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업은 회화, 조각, 데이터, 행위 그 어딘가 사이 지점에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모른다면, 그의 결과물은 실제 종이에 펜으로 그린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쓸 데 없는 일(?)’을 왜 하는 것일까?

그의 이러한 방식은 무수한 복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이 복제품이자 원본이 되는 방식이다.

결과물을 포함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그의 작업이자 태도가 된다.

그는 이 쓸데없는 일(?)을 통해 자신의 팝아트라는 형식을 재맥락화하고 동시대 예술의 제작방식, 원본성, 독창성에 대한 개념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5호(2023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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