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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영화산책] ‘박카스 할머니’와 <죽여주는 여자>
  • 김영주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10.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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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할머니’의 숨겨진 뒷이야기

‘죽여준다’는 원래 “몹시 고통을 줘서 견디지 못하게 하다.”는 뜻이지만, 그 뜻이 오히려 거꾸로 뒤집혀서 “몹시 마음에 들어 흡족하다.”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끝-내준다’와 쌍둥이다. )

그런데 그걸 ‘죽여주는 여자’로 사용하면, 그 뜻이 매우 외설스러워져서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하는 ‘음담패설’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제목을 미끼로 관객을 낚으려는 얄팍한 술수로 오해할 법하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너덜거리는 신문지에 가려진 이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들추어낸 ‘사회파 영화’이다.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다.

박카스 할머니? 88년 올림픽 무렵이던가? 어쩌다가 ‘광주공원’을 옆구리로 스쳐가지 않고 정면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가히 ‘노인 놀이터’라고 할 만할 정도로 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놀고 있었다. 멋모르고 몇 번 지나치다가, 그 뒤론 그 쪽을 피해 다녔다.

▲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그 몇 년 뒤에 ‘박카스 할머니’라는 말을 들었다. 겉으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박카스 한 병 드실래요?”라고 한다지만, 실제로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성매매’하는 은어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축제의 신 바쿠스’가 어찌해서 허름한 공원의 꾀죄죄한 뒷골목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쩝쩝!”

끌끌 혀를 차다가, “저 노인들이 시골에 있다면 저렇게 초라해 보이지 않을 텐데, 왜 고향땅으로 내려가지 않을꼬?" 나도 머지않아 저렇게 늙어갈 텐데, 어찌 해야 할까?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늙어감! 수없이 많은 노인을 만났지만, 늙어가는 초라함을 실감한 것은 '울 엄니의 노환'을 모시면서야 비로소 제대로 만났다. 그건 '초라함'이라기보다는 '처참함'이었다. 그 '처참함'이 너무나 슬퍼서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를 이야기하면서 "신은 없다!"며 신을 원망했다. 게다가 저토록 노인들이 공원 모뚱이에서 하염없이 떠도는 걸 보노라면, 더욱 더 우울해진다.

그 참담한 우울함을, 더 이상 말로 형언하기가 힘들다. 이 모든 게 결국은 ‘도시의 죄악’에서 비롯한다. 10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1000만 명이든, 만 명을 넘어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분명코 죄악이다. 그건 ‘도시의 죄악’이라기보다는 ‘죄악의 도시’라고 불러야 한다.”

죄악의 도시에선 그 어느 누구도 그 죄악의 수렁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내용과 정도가 조금씩 다를 따름이다. 죄악과 죄악이 서로 싸우면서, 틈틈이 ‘정의’를 세우려고 노력해도, 결국은 죄악이 승리한다.( [씬 시티]는 매우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장면으로 넘쳐나기에 감당하기 어렵지만, ‘죄악의 도시’라는 수렁에 빠진 인류를 묵시록적인 분위기로 어둡고 무겁게 연출하여 보여준다.

이 지옥 같은 수렁을, 기존의 종교나 사상은 물론이요, 새로운 종교나 사상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이 지구에서 인간이 한 명도 남김없이 멸종하거나, 50년~100년 안에 인구가 1/10~1/100로 줄어들고, 1인당 생산량과 소비량이 1/10~1/100으로 줄어들어야 하고, 1000명 이상 모여 사는 마을이 없도록 “도시가 없어져야 한다.” 이 서너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그나마 죄악의 수렁에서 벗어날 희망이 열린다.

이 기본조건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사상도 말짱 ‘꽝’이다. )

이런 거대한 담론은 접어두고, ‘박카스 할머니’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박카스를 사는 할아버지도 불쌍하지만, 박카스를 파는 할머니가 더 불쌍하다. 그 숨겨진 뒷이야기를 이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속사정이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추하고 역겹지만, 영화가 중간쯤에 이르러 그 추하고 역겨움을 벗어나며 ‘죽여주는 안락사’라는 반전反轉을 일으킨다.

이 영화의 꽃이다. 단골손님 송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문병하러 갔다가 처참하게 무너진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서,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를 진짜 ‘죽여준다’. 안락사의 틈새로 스며드는 고뇌의 갈등 속에서, 마침내 “당신은 천사야!”라고 할 만한 아름다움으로 마무리한다.

그 마무리의 겉모습이 해피한 건 결코 아니지만, 그걸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해피 엔딩’으로 보여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 소재가 ‘할머니의 성매매와 안락사’인지라 슬프고 어둡고 무겁지만, 그 리얼러티를 잘 살려내면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고 연출해 낸 이재용 감독의 능력과 노력을 매우 큰 박수를 보낸다. 기립박수!!!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508&mid=31835#tab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정사]에서, 이미숙의 연기에도 감탄했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섬세하면서도 단단해서 매우 좋았다. [스캔들 : 조선남녀상렬지사]에서는 눈을 화사하게 호강시킬 만큼 화려한 접대가 항홀할 정도로 좋았다. 대중재미를 갖추었지만, 깊은 맛이 없어서 조금 서운했다.

이어서 [다세포 소녀]는 무엇인가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는 듯한데,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겐 빵점짜리 영화였다. [여배우들]도 그의 문제의식은 알겠는데, 그걸 완결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끝나버렸다. 연달아 이어지는 실망 때문에, 그에게 관심이 멀어져갔다. 그러나 틈틈이 그를 떠올릴 때면, 그 때 그 시절의 사진첩에서 그 어떤 사진처럼 잠시 멈추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되찾은 듯이 반가웠다.

사회파 리얼리즘이 깊이 곰삭아서 더욱 좋았다. 주인공과 조연들을 매우 잘 선택했고, 배우들도 자기의 캐릭터를 오바하지 않고 잘 이끌어 갔다. 그 누구보다도 윤여정이 매우 적합했고, 트랜스젠더 안아주가 돋보였다. 윤여정은 인생의 굴곡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온 몸에 그 연륜이 묻어난다. 남에게 주눅을 주지 않는 카리스마를 갖춘 게 바로 그 연륜을 증명한다. “남에게 주눅을 주지 않는 카리스마”란 아는 사람만 안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나리오를 받아봤을 때만 해도 ‘오랄 써비스’장면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연출될지는 몰랐다. 대본에는 “사타구니에 주사를 찌른다”는 설명만 있었는데, 이재용 감독은 현장에서 굉장히 디테일한 연기를 요구했다. 좁은 여관방에서 여러 번 NG를 냈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난생 처음 해본 일, 알몸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낯선 남자와 허름한 여관방 특유의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컵라면에 와인 한 모금씩 곁들여 간신히 허기를 달랬다.

연기로 잠깐 두 달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윤여정은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면서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 일 하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고 토로했다.

세상살이를 이렇게 들여다 볼 줄 아는 게, 바로 자기의 시련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힘이다. 그걸 외국의 국제영화제들이 알아채고, 다양한 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초청했다.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마 윤여정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대표작이 될 게다. * 대중재미 B0(*내 재미 A+),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

“감독님, 윤여정님, 정말 고생 많으셨고, 많이 많이 축하합니다!!!”

김영주 영화칼럼니스트  yjkim8910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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