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두의 기차별곡] 기차 따라, 노래 따라
[손민두의 기차별곡] 기차 따라, 노래 따라
  • 손민두 KTX 기장 <코레일 사보> 기자
  • 승인 2016.09.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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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만든 노래들, 기차를 타고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다

1899년 9월 18일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이 땅을 누비기 시작한 기차는 격동의 우리 근현대사에 숱한 애환과 사연을 새기며 117년을 숨 가쁘게 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의 식민지배 도구로 시작해 한국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오늘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든 한국 철도. 그러므로 철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를 담은 노래들이 참 많다.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로 시작해, ‘이별의 부산정거장.’ ‘비 내리는 호남선’등 기차가 등장하는 모든 노래들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온 국민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개화기 민요에 스며있는 철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산 큰 애기 단봇짐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야 내 사랑아

개화기 때 유행했던 함경도 민요 ‘신고산 타령’의 첫 부분이다.

▲ 오른쪽이 기차역에서 표 검사를 하는 모습. ⓒ코레일 사보 갈무리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은 호남선과 더불어 1914년에 개통되었다. 민요에 나오는 고산은 원산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경원선 철로가 지나면서 신고산역이 생기자 원래 있던 고산은 구고산이 되었다. 애절하면서도 구성진 가락이 일품인 이 민요는 함경남도 도청 소재지 함흥으로 떠나는 기차의 지축을 흔드는 ‘우르르’한 굉음과 ‘단봇짐’을 싸는 시골처녀의 도시를 향한 부푼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노래가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인식을 반영한다고 할 때 이 민요에는 신문명, 즉 기차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땅의 철도는 호시탐탐 조선병탄을 노리는 일제에 의해 계획되고 건설되었다.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 경의선이 차례로 완공될 때마다 일제는 야금야금 조선의 국권을 침탈해갔다.

급기야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한일합병이 이루어질 무렵엔 전국이 철도망으로 거의 연결되어 함경남도의 작은 마을 고산까지 기차가 다니게 된다. 이때부터 조선의 백성들은 타율적이나마 ‘철도’라는 근대문명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때문에 기차를 바라보는 조선 민중의 생각은 이중적이었다.

침략자들이 타고 들어왔기에 ‘굉음’처럼 두려웠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한 ‘단봇짐’과도 같았기에 애증의 마음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러므로 ‘신고산 타령’은 조선 사람들의 철도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 민요라고 하겠다. 이후 식민지 시대를 겪는 조선 민중은 철도를 통해 혹독한 인적, 물적 착취를 당하면서도 근대화의 혜택을 입는 역설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전쟁, 쓰라린 피난의 경험이 서린 ‘이별의 부산 정거장’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남북이 분단되고, 이어 동서 냉전의 대리전이었던 한국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전쟁의 포연과 함께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며 고난의 피난길에 나섰다.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유리창에 적어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한두 자 봄소식을 전해주소서

몸부림치는 몸을 뿌리치며 떠나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별의 부산정거장’ 3절이다.

이 노래는 한국 전쟁 직후 전쟁과 피난의 기억을 담아 박시춘이 작곡한 트로트 곡이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남인수가 불러 유명해졌으며,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1950년 6.25한국전쟁 당시 피난열차 모습. ⓒ코레일 사보 갈무리

부산은 작년에 개봉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인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많은 피난살이’를 했던 대표도시다.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전쟁이 끝나자 부산으로 피난 온 많은 사람들은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사는 귀향열차에 몸을 실은 서울 청년을 떠나보내는 경상도 ‘큰애기’의 사랑의 순애보가 들어있다. 요즘처럼 통신수단이 좋아 언제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하고, 숨을 곳조차 없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보슬비 내리는 부산역 플렛폼에서 펼쳐진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사랑의 밀어들을 김 서린 유리창에 적어보는 그 시대 젊은 커플들이 지금의 우리에겐 낯설다. 하지만 그때는 한 번 헤어지면 좀처럼 다시 만나기 힘든 시대였다. 전화는 물론 TV도 없었고, 소식은 오로지 주소로 배달되는 편지뿐이었으니, ‘고향에 가시거든 한두 자 봄소식을 전해 주소서’란 가사가 얼마나 간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남한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이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1983년에야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한 세대 전의 이별의 장면을 담은 이 노랫말이 결코 감정의 과잉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당시 세대경험의 핵심일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고난의 결정체라 할 6․25전쟁으로부터 파생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노랫말 속 애닮은 이별이 실은 전쟁에서 비롯되었단 점을 암시하면서 떠나가는 기차를 매개로 헤어짐이란 이산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기차에서 숨진 야당 대통령 후보를 추모하며 부른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해공 신익희가 유세 도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서거했다. 그러자 그를 지지하던 많은 국민들이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부름으로써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 오른쪽 인물이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코레일 사보 갈무리

1956년 제 3대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이던 이승만과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격돌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실망한 국민들은 신익희에게 열화 같은 지지를 보냈다.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신익희의 유세 때 자그마치 30만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인구가 150만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30만 인파는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만큼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익희 후보는 투표 열흘을 앞두고 전라도 유세를 위해 전주로 가던 중 여수행 제 33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숨을 거두고 만다.

신익희의 죽음은 야당을 비롯해 그를 지지하던 많은 국민들을 큰 슬픔에 빠트렸다. 특히 그가 호남선 열차에서 숨진 것이 정권교체를 바라던 대중의 정서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 노래를 애창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비 내리는 호남선’이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가수 손인호가 작사․작곡가와 함께 경찰에 붙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신익희 서거 3개월 전에 작곡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두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청춘의 해방구 경춘선의 정서가 담긴 ‘고래사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가수 송창식이 1975년에 부른 ‘고래사냥’을 모르는 70․80세대는 없을 것이다.

1970년대엔 통키타를 들고 MT에 나선 대학생들이 주로 타는 열차가 경춘선 완행열차였는데, 그 시대는 유신이 지배하던 암흑의 시대였다. 길 가던 청년이 장발이란 이유로 붙들려 머리카락을 싹둑 잘리고, 처녀의 치마 자락이 짧다며 우악스런 경찰의 손이 가녀린 여성의 허벅지에 눈금자를 들이대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청춘들이 즐겨 찾던 경춘선 열차는 그들만의 해방구였고, 여기서 부르는 노래와 춤은 더 강렬했다.

▲ 영화 <고래사냥> 장면. ⓒ코레일 사보 갈무리

‘고래사냥’은 젊은 청춘들이 미래의 보석과도 같은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을 노래한다. 그러나 시대의 그늘은 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노래는 1등, 2등보다 3등 인생이 더 많은 세상에서 보통사람들과 완형열차를 타고 블루오션을 찾아 떠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40년 전 고래사냥을 부르던 청춘들은 아직 가슴 뛰는 추억 한 자락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낭만은 이제 ‘ITX청춘’이란 기차이름으로 남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추억의 손길을 뻗게 만든다.

기차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이밖에도 수 없이 많다.

‘대전 부르스’에 이어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남행열차’, 명절 전후 단골로 등장하는 ‘고향역’, ‘녹슬은 기찻길’ 등 기차가 만든 수많은 노래들은 이 땅을 117년 동안이나 내달린 기차를 타고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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