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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두의 기차별곡] 기차에서 아름다운 상상을야간열차 안에서 ‘은하철도의 밤’을 구상한 미야자와 겐지
  • 손민두 KTX 기장 <코레일 사보> 기자
  • 승인 2016.11.08 17:41
  • 댓글 1

1980년대에 제작된 에니메이션 영화 ‘은하철도 999’는 한국과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몰고 왔던 작품이다. 땅위를 달리는 기차를 우주공간으로 들어 올린 이 영화는 작가의 끝없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광활한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날아가는 비행체가 우주선이 아니라 허름한 증기열차였다는 매력적인 설정이다.

만화영화 <은하철도999>.

한국에서는 TV에서 두 차례나 방영했고 일본에서는 케릭터 열차를 운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으로 시작되는 주제가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은하철도 999’의 이야기는 동화 ‘은하철도의 밤’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일본 에니메이션계의 거장 마쓰모도 레이지는 이 동화를 읽고 깊이 감동하여 영화로 제작했다고 한다. 덕분에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작가 미야자와 겐지와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은하철도의 밤’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미야자와 겐지’의 유작이다.

동화는 판타지와 현실세계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사를 이끌어가는 구조지만 공상과학 요소보다는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영화보다 훨씬 무거운 주제가 들어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외로운 소년 조반니와 그의 친구 캄파넬라는 꿈속에서 밤기차를 타고 별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을 태운 기차는 은하수 별자리를 따라 징검다리처럼 세워진 정거장을 차례로 거치며 아름다운 우주공간을 날아간다.

수정같이 맑은 모래가 섬광처럼 빛나는 은하수와 전갈의 몸이 붉게 타오르는 안타레스별의 몽환적 풍경은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신나는 우주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이별이나 죽음처럼 인간이 홀로 감당해야 할 고독하고 숙명적인 상황을 만난다.

이는 마쓰모도 레이지에 의해 소년 철이가 의문의 여인 메텔을 만나 은하열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를 향해 여행을 시작하며 겪는 ‘은하철도 999’의 이야기로 각색된다.

동화를 쓴 미야자와 겐지는 우주와 자연이 교감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한 작가다.

겐지는 유난히 눈이 많은 그의 고향, 이와테 현의 빼어난 풍광을 닮아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다.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끝없는 애정을 가졌으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모든 생명의 행복, 그리고 타인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생명을 다한다 해도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생명세계에 대한 근원적 이해가 깊었기에 작품 속에 수많은 죽음이 등장하지만 그 죽음이 결코 슬프거나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주인공 조반니가 탄 은하열차에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었다. 꿈속의 은하철도는 죽은 이들을 우주로 태워 나르는 삶과 죽음의 교차로였다. 문화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일컬어 얼음처럼 투명한 아름다움과 숙명적인 슬픔의 절묘한 융합이며 이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갖고 있는 미학적 세계라고 말하는 이유다.

미야자와 겐지는 이 아름다운 동화의 영감을 밤기차를 타며 얻었다.

그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죽을 때까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가난하고 고된 노동에 허덕이는 농민들과 함께 하고자 안락한 집을 박차고 나와 검박하게 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소외와 냉소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 게다가 장마와 냉해로 야심차게 연구했던 농업기술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그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상실감을 달래며 고향과 도쿄를 오갈 때 밤기차를 탔다.

사색을 좋아했던 그는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로 잠든 텅 빈 밤하늘이 춥고 외로운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빛나는 별과 은하수는 보면 볼수록 작은 숲이나 목장, 들판처럼 보였다.

그는 찬란한 별빛에서 상처로 얼룩진 마음의 위로와 안식을 얻으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아스라한 판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 기차가 은하수 사이를 날고 있다는 아름다운 상상에 빠진다. 결국 동화 속 주인공이 꿈속에서 경험한 우주는 작가가 기차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밤하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동화 ‘은하철도의 밤’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 동화는 안타깝게도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다. 철저히 고독한 삶을 살던 그는 불과 37세의 나이에 지상의 옷을 벗고 우주로 날아간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수많은 메모와 원고 속에서 출간되지 않은 한 편의 동화를 찾아냈다. 이 동화가 기차처럼 이어져 ‘은하철도 999’를 탄생케 한 ‘은하철도의 밤’이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 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손민두 KTX 기장 <코레일 사보> 기자  smd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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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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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섭 2016-11-08 22:10:47

    기차따라 노래따라 여행잘하고
    이번엔 은하수 우주여행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승객안전 위해 전방만 뚫어져라 보며 운행하시느라 힘드실텐데 충분한 수면시간이 좋은약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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