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두의 기차별곡] 세계일주의 꿈을 심어 준 기차
[손민두의 기차별곡] 세계일주의 꿈을 심어 준 기차
  • 손민두 기자
  • 승인 2016.07.15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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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떠나는 지구촌 여행의 꿈을 공상과학소설에서 펼친 ‘80일간의 세계 일주’

마젤란은 세계 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는 스페인에서 출발해 남아메리카의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고 드넓은 태평양을 맨 처음 횡단했을 뿐 아니라 함대를 이끌고 3년여에 걸친 항해를 통해 세계를 일주했다.

하지만 그는 필리핀 근해를 항해하는 중에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고 말았다. 200명이나 되는 그의 선원들도 천신만고의 사투 끝에 18명만이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지금과 같은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오로지 자연의 물리적 힘만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돈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다.

▲ <80일간의 세계일주> 표지그림.

하지만 인류에게 세계 일주는 우주를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버릴 수 없는 꿈이었다. 특히 기차와 증기선이 발명되자 사람들은 세계 일주의 꿈이 곧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때 공상과학소설가 쥘 베른도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통해 인류에게 세계 여행의 꿈을 심어 주었다.

쥘 베른이 살던 19세기 후반은 산업과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시기였다. 철도가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가르고 증기선이 바다를 누비며 무역과 상업의 발전을 이끄는 가운데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나갔다. 여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졌음은 물론이다.

특히 1853년, 아시아 최초로 건설된 인도 철도는 이국의 풍물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쥘 베른의 과학적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인도 왕비의 유산>이란 소설을 쓰기 위해 인도를 공부하는 그에게 뭄바이에서 콜카타까지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기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다는 소식은 엄청난 흥분과 기대를 안겨 주었다. 쥘 베른은 이 철도에서 영감을 얻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완성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작가 특유의 과학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소설로 주인공 포그와 포그의 집사 파스파르투가 80일 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겪은 다양한 사건과 모험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차와 증기선을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선 주인공의 손에 땀을 쥐는 모험과 경쾌한 유머, 기막힌 반전이 담긴 결말로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하다 나중에 책으로 펴냈는데, 연재 당시 소설의 인기 덕분에 신문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신문의 독자들은 주인공 포그가 과연 80일 안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을까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고, 실제로 내기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쥘 베른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수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몇 년 전 홍콩의 유명 배우 성룡이 출연해 더욱 유명해졌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신문에 실려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놀란 이유가 있었다. 비록 기차가 대륙을 달리고 기선이 대양을 횡단하는 시대가 됐지만 비행기가 없던 그 시절, 불과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공상과학소설’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누구나 세계 일주를 꿈꾸게 했다. 결국 문명과 사회의 진보는 인간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할 때 현실을 앞서가는 이 소설이야말로 해외여행의 대중화 시대를 여는 실마리가 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근대 교통수단을 매개로 소설의 공간 배경을 세계적 규모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공간을 시간으로 바꿈으로써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도 획기적이다.

즉 ‘세계’라는 공간의 넓이를 ‘80일’이라는 시간의 길이로 환원함으로써 여행에서 거리보다 시간의 척도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고 보면 단 며칠 안에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은 어디나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된 것도 교통수단의 발달이 주된 이유지만 이 소설이 가져온 개념의 변화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인도 기차 풍경.

그러므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소설의 소재가 어느 날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다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가는 과학소설의 전형을 보여 준다.

쥘 베른은 소설을 쓰기 위해 모든 정보를 철저히 조사하여 자세히 검토하고, 프랑스와 영국, 인도, 미국의 기차 시간표와 기선의 출항 시각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달이나 해저를 탐험하는 것도 아닌 지구촌 여행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면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검증된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소설을 집필함으로써 ‘20세기의 과학은 쥘 베른의 꿈을 뒤쫓아서 발달했다’는 찬사와 함께 공상과학소설의 아버지란 평가를 받는다.

근대에 발명된 기차는 이동 시간을 놀랍도록 단축함으로써 공간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소설이 발표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지구촌이란 이름으로 가까워지고 마젤란처럼 목숨을 걸지 않고도 손쉽게 세계 여행에 나서는 세상이 되었다. 기차가 인간에게 이동의 자유도 안겨 주었지만 동시에 세계 일주의 꿈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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