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두의 기차별곡] 간디, 민족의식에 눈뜨다
[손민두의 기차별곡] 간디, 민족의식에 눈뜨다
  • 손민두 KTX 기장 <코레일 사보 기자>
  • 승인 2016.03.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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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쫓긴 간디, 인종차별을 겪으며 인도독립을 결심하다

18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프리토리아로 가는 열차 안, 일등 칸 승차권을 소지하고 열차에 오른 한 인도청년이 있었다. 더반에서 프리토리아까지는 700여 킬로미터. 기차와 마차를 번갈아 타고 나흘 동안이나 가야하는 머나먼 거리였다.

청년에게 남아프리카는 생전 처음 밟아보는 미지의 땅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푸른 초원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뛰노는 사바나의 풍경을 보겠다는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었다. 청년은 느긋하게 기차의 출발을 기다렸다.

▲ 물레 옆에서 실을 뽑는 마하트마 간디. 1946년 포토저널리스트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찍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잠시,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백인이 열차에 오르더니 청년을 보고는 몹시 언짢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바로 나가더니 이내 승무원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승무원은 청년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당신은 화물칸으로 가시오!”
“나는 일등 칸 표를 샀소. 그러니 여기 앉을 권리가 있소”
승무원은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절대로 안 나갈 테니까.”

청년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승무원은 정말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청년을 강제로 기차에서 끌어 내렸다. 그리고는 청년의 짐을 플랫폼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이 자식아, 화물칸으로 가란 말이야!”

청년은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도저히 그 기차에 다시 오를 수 없었다. 밤이 깊어 사방이 어두워지자 청년은 아무도 없는 역 대합실로 들어갔다.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한 청년은 대합실에 홀로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겼다.

“도대체 백인들은 무슨 권리로, 왜 이렇게 우리를 차별한단 말인가?”

청년의 가슴 속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이 남았다.

▲ 인도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도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 마하트마 간디의 '소금 행진'은 영국 식민지 체제에서 인도에서 소금세 폐지를 주장하며 일어난 사티아그라하이다. 간디가 주도한 소금행진운동은 사바르마티 아쉬람에서 구자라트 주의 단디까지 1930년 3월 12일부터 그해 4월 6일까지 진행됐다.

이 청년은 바로 저 유명한 인도 독립운동의 선구자 마하트마 간디다.

근대문명의 상징인 기차는 단순한 탈것의 의미를 넘어서는 교통수단이다. 기차는 그동안의 봉건제와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전근대적인 신분차별에서 벗어나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등한 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서민이 타는 3등 칸과 부자가 타는 1등 칸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요금에 따른 구별이지 신분에 따른 차별은 아니었다. 서민도 해당 요금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1등 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승객이란 동일한 지위를 갖는 대등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기차는 익명의 보편적 대중들이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타인에 대한 예절, 양보하는 미덕 등 근대적 ‘공중도덕개념’을 창출한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비록 식민지 출신이었지만 영국에 유학해 변호사가 된 간디로서는 평등질서가 유지돼야 할 기차에서 이토록 부당한 일이 빚어졌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 1893년 변호사 시절 간디.

영국에서 유학할 때도 이처럼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겪지 않았었다.

열차에서 내린 간디가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겪은 수모는 이보다 더했다. 유럽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차장에게 얻어맞고, 고급 숙소는 모두 백인들 차지였으며 빈방이 있어도 간디에겐 돌아오지 않았다.

간디는 이 치욕적 경험을 통해 자신은 대영제국의 위대한 시민이 결코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던 간디는 이 불평등을 몸소 체험하면서 민족의식에 눈뜨게 된다. 이 사건은 간디의 인생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변호사인 간디가 남아프리카로 갔던 이유는 인도상인들을 위한 법률지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인도인들은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인도양 주변에서 무역활동에 종사했다.

이후 유럽인의 진출로 타격을 받았지만 인도인들의 활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에는 여러 개의 인도상단이 있어, 간디는 지인의 소개로 인도상단의 법률지원을 하러 남아프리카에 오게 된 것이다.

간디의 눈에 비친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의 삶이란 그야말로 노예나 다름없었다. 인도인은 공용도로를 걸을 수도 없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는 차별과 멸시에 고통 받는 인도인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단결을 이끌며 영국에 대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하며 유명해졌다.

남아프리카에서 20년 동안 인도인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던 간디는 인도인에 대한 근원적 차별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인도의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침내 인도 귀국을 결심한다.

인도로 돌아온 간디는 몸소 기차를 타고 1년 동안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식민지 인도 민중들의 처참한 삶을 목격했다.

인도 각 곳의 농촌엔 목화가 넘쳐났지만 목화는 인도인의 의생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목화는 전국 각지로 뻗은 철도망을 따라 뭄바이나 콜카타, 마드라스 등 큰 항구로 모아져 싼값에 영국으로 반출되고 이 목화들은 영국에서 값비싼 면직물로 가공되어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렸다. 가난한 농민들은 이를 살 수 없어 헐벗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엔 1853년 아시아 최초로 세계에서 궤간이 가장 넓은 1676밀리미터의 ‘광궤철로’가 건설됐다. 하지만 이것은 인도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된 면화와 차를 빠르게, 많이 실어 운송할 목적으로 자국의 표준궤(1435밀리미터)보다 넓게 만들었다. 철로의 궤간이 넓으면 차량을 크게 만들 수 있어 대량수송에 유리할 뿐 아니라 속도를 향상 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 '비폭력운동'의 상징 마하트마 간디.

이뿐 아니라 영국은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해 기차, 대합실, 공원, 호텔, 수영장, 클럽 등에 유럽인 전용구역을 따로 만들어 인도인의 출입을 막았다. 남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비인격적인 차별정책이 인도에서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었다.

전국을 돌아 본 간디는 분노했으며 영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도를 영구히 지배하려하는 의도를 파악했다.

그는 선진화된 유럽문명을 통해 인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려는 인도인의 순수한 희망은 영국의 식민지정책과는 전혀 융합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하여 진리에 입각한 비폭력 정신을 설파하며 인도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기차의 역사 속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동의 자유를 가져와 산업화를 앞당겨 근대화를 이루기도 한 매혹적인 교통수단이기도 했지만 식민지 국가들에게는 억압과 수탈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영국이 식민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에서 청년 간디는 민족의식에 눈을 떴고, 후일 인도독립을 이룬 일 역시 기차의 음영을 반사한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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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6-03-06 1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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