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이 아픈가 가슴이 아픈가

‘그래요?’ 표정없이 내뱉는 한 마디.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레이저’라고 한다. ‘레이저’를 타고 떨어진 말 한마디에 얼어버린다. 싸늘한 눈빛에서 쏟아지는 레이저 광선에 몸은 그냥 굳어 버린다. 고개 숙이고 엎드려 받아 적는 수첩에 땀은 얼음조각이 되어 떨어진다. 온도는 몇 도인가. 대통령은 답답하다. 국민이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준다. 장관과 수석들은 뭘 하는가. 만만한 건 책상이다. 쾅 쾅 쾅. 그러나 ‘테러방지법’은 통과됐다.
 
■ 전철 안 풍경
 
오전 11시경, 전철은 노인들의 천국이다. 천국이라는 말에 화내시지 마라. 앉을 좌석이 여유롭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공약했던 한 달에 20만 원이나 제대로 받는 분들인가. 모두 눈을 감고 있으니 눈빛을 볼 수가 없다. 밤에 잠을 못 주무셔서 졸고 계시는가.
 

어디를 가시는가. 일자리가 있으신가. 아파트 밤새 경비하고 귀가하는 길이신가. 추워서 파고다공원에도 못 나갈 것이다. 문득 지하철 타고 서울 시내 빙빙 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공짜 전철 타고 시내 유람? 신선놀음인가. 안내 방송이 나오고 눈 감고 있던 노인네가 눈을 뜬다. 생기 없는 눈동자가 어둡다. 내려서 걷는 모습이 힘겹다. 저러다가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아침마다 자주 만나는 할머니가 계시다. 파지를 줍는 할머니다. 허리는 휘어서 펴질 못한다. 손에 몇 푼 쥐여 드리면 그냥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른다. 영감님이 계신지 자식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곤궁한 생활로 엄청 고생을 할 것이다. 다시 노년의 안락을 공약한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인들 얼마나 속이 상하랴. 책상을 치는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00조를 넘어섰단다. 그런 숫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 느껴지지 않는 숫자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단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3년 동안에 늘어난 가계 빚은 243조가 넘는다. 쓸 돈도 없지만, 빚에 짓눌려 한 푼 쓰기가 무섭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느 날은 천 원 한 장도 안 쓰는 날이 있다. 술 담배 안 하고 전철 공짜로 탄다. 백화점 가본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알뜰하게 산다. 이러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 벌 수가 있는가. 소비는 위축되고 경기가 살아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슴을 친다. 정권이나 바뀌면 좀 나아지려는가.
 
■ 테러 방지법
 
테러가 무섭긴 무섭다. 테러 방지법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얼마나 테러방지법이 무서우면 대통령은 책상을 치고 국민은 가슴을 치겠는가.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라. 그 의미는 정반대이니까.
 
테러방지법(양심감시법) 반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한 가지 희망을 느낀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제법 똑똑하다고 느낀 것이다. 마치 시험을 보는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연설했으며 공감을 불러냈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테러방지법’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국민을 각성시켰다. 교훈은 어디든지 있다.
 
‘테러를 할 의심이 간다’는 한 가지 이유로 국민의 자유는 가뭇없이 사라진다. 사생활 모두가 발가벗겨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란 말이냐. 마누라와 사랑하는 것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드려다 볼 수 있는 ‘무소불위 만능의 법’이 국민의 머리 꼭대기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법이 없었던가. 있었다. 대책기구도 있었다. 대장은 국무총리다. 다만 자신이 대장인지도 몰랐다. 직무유기가 아닌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면서 무슨 테러방지법이냐. 국민이 납득 할 수가 있느냐.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가 언제인데 새삼스럽게 ‘테러방지법’인가. 대한민국이 그토록 허약한 정부인가. 숫자를 알 수 없는 그 많은 국정원 식구로는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게 무능하단 말인가. 국정원이 아니라 ‘걱정원’이란 말이 맞는 게 아닌가.
 
■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눈물을 지겹도록 보았다.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참가한 국회의원들의 눈에서는 눈물도 참 잘 나왔다. 은수미·박영선·이종걸 등등. 마라톤 기록이 깨지는 것처럼 필리버스터 세계기록은 한국의 국회의사당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눈물은 누군가를 위한 기도’라는 시 구절이 있다.
 

‘테러방지법’은 통과됐다. 왜 야당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반대를 했고 여당은 눈에 불을 켜고 통과를 시도했는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 수집, 조사, 추적 등 전례 없이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테러방지법. 좀 더 자세히 풀이하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이다. ‘괴물 국정원 탄생’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공포감이 더욱 커진다.
 
이 법에는 ‘테러위험인물’의 대한 정의가 있다.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엿장수 가위라는 말이 있다. 엿장수 마음대로 좀 크게 자를 수도 작게 자를 수도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정부 비판을 틀어막는 데 자의적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반대를 했다. 정부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왜 국민은 믿지를 못하는가. 책상을 칠 일이다.
 

경험은 교훈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를 일일이 거명해야 하는가. 그래서 믿지를 못하는 것이다. 국민감시 불법연행 고문치사 등등 이루 다 뽑을 수가 없다.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에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뜨거웠다. 왜일까. 불신이다. 왜 불신하는가. 경험이다. 아무리 착한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킨다 해도 믿을 수 있을까. 성인군자 같은 쥐가 곡식 창고를 지킨다 해도 믿을 수가 있는가
 
전과 14범이라는 최고지도자를 모신 국민이고 그로 인해 가슴을 친 국민이다. 존경받는 법대 교수가 연행되어 시체가 되어 돌아온 정보기관이었다. 양심의 가책으로 창에서 투신했다고 했지만 고문치사였다. 다시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는 말을 믿어야 하는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 가슴 치는 국민
 

▲ 강기정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제 어쩔 것인가. 국민은 불안하다. 똑똑한 사람은 말할 것이다. 죄 진 거 없는데 뭐가 겁나느냐고 말이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회(洞會)에서 쪽지 한 장 날라 와도 가슴이 철렁한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가. 파출소 곁을 지나가기 싫은 게 국민의 마음이다. 민중의 지팡이가 다시 몽둥이가 됐다고들 느낀다.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는 판단은 누가 하는가.
 
이를 어쩐단 말인가. 죄야 법원에서 현명한 판사님이 가려 주시겠지만, 그동안 당해야 하는 고통은 어쩌란 말인가. 인생이 생활이 가정이 망가진다. 딸려 있는 식구들은 어쩌란 말인가. 무섭다. 너무 무섭다.
 
대통령은 책상을 치고 국민은 가슴을 친다. 저마다 절박한 이유는 있다. 전철 타고 눈감고 앉아서 할 일 없이 오락가락하는 늙은 친구도 절박한 사정은 있다. 이제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자. 변변치 못한 야당이라 할지라도 ‘필리버스터’ 하느라고 눈물 많이 흘리고 고생도 했다. 국민들에게 ‘테러방지법’ 해설도 잘해 주었다. 4월은 선거의 달이다. 선택은 국민이 한다.
 
가슴은 내 것이다. 꽝 꽝 두들겨 멍이 시퍼렇게 들어도 누가 야단 안친다. 알아서 할 일이다. 이제 옷 두텁게 입고 살 것이다. 떨려서 그런다. 추워서가 아니다.
 
‘당신 조심해요. 늙어서 고생하지 말고’ 늙은 마누라의 얼굴을 쳐다보는 눈에서 왜 눈물이 흐른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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