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기록된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 몸으로 헌신한 ‘제임스 시노트’ (한국명 진필세) 신부님이 돌아가셨다. 12월 23일 오전 3시 30분. 85세의 연세다. 속으로 외쳤다. ‘하느님. 순서가 틀려요. 데려갈 악마가 너무 많아요.’ 하늘에선 아무 말도 없었다.

단상에 오른 천사가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없다. 악마와 싸울 힘이 없다. 우리 편은 없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사라진다. 인간들은 우리를 잊어야 할 것이다.” 악마들의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렸다.

▲ 지난 10월 24일 열린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시노트 신부 . ⓒ언론노조 갈무리

악마들의 세상이 됐는데 고민이 생겼다. 천사가 사라졌으니 악마는 싸울 대상이 없는 것이다. 하루라도 싸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악마들은 도리 없이 서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악마들이 서로 뒤엉켜 굴렀다.

악마들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서로가 잘났다고 아우성이었다. 서로 저지른 죄를 까발렸다. 악마끼리도 모르는 죄악이 헤아릴 수가 없었다. 몇십 년 전 죄가 들통 났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은 악마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악마들도 손을 들었다.

■양심은 인간의 것이었다.

천사들이 다시 나타났다. 쭈뼛거리는 악마들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따뜻하게 인사를 한다. 반갑다고 눈물을 흘리는 천사도 있다. 사랑은 얼음도 녹인다고 했던가. 돌덩이처럼 굳어졌던 악마들의 마음이 풀어지면서 솜처럼 포근해졌다. 악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천사여 용서해 주오. 천사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가 얼마나 나쁜지 알았소.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았소.”

과연 이런 세상이 돌아올 수가 있을까. 잠꼬대 같은 소리 말라고 비웃을까.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사는 것인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깊은 밤 인터넷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쓴다. 쉼 없이 귀를 때리는 소리가 있다.

“쓸데없는 짓 말고 편히 살다가 죽는 게 어떠냐. 맨 날 글을 쓴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으냐. 헛수고하지 말라. 세상은 원래 우리들의 것이다”

분명히 악마의 소리다. 한두 번 들어 본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아무리 글을 써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쓸 것이다. 왜 그러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 능력도 없으면 담벼락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라고 한 분이 계시다. 지르는 소리로 담벼락이 무너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명박 정권에서 저지른 온갖 비리 중에 지금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은 ‘사자방’이다. 4대강에 쏟아 부은 국민의 혈세, 천문학적인 돈을 쳐 들이고 본전까지 다 까먹게 된 자원외교라는 코미디. 그리고 국민의 목숨이 달린 방위산업 비리. 인간의 가슴이라면 결코 묵인할 수 없는 죄악이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라고 했더니 이런 짓을 하다니, 그들에겐 부모도 처자식도 없단 말인가.

특히 방위산업 관련해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폐기된 부품을 새 부품으로 속여 고장 난 전투기에 끼워 넣는 행위를 어찌해야 하는가.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부품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으면 아군을 공격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체포된 범인들이 전직 군인이다. 통영함 음파 탐지기가 왜 무용지물로 되었는가. 하늘이 부끄러워 말이 안 나온다. 어군탐지기를 구축함에 달고 고등어 잡으러 돌아다닐 것인가. 이들을 모두 ‘사자방’에 가두어 사자 먹이로 바치라는 국민의 소리다.

■국민은 숨쉬기가 힘들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 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어린이와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가슴을 쳤다. 바닷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면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애들은 ‘엄마 사랑해’를 마지막 문자로 보냈다. 애들에게 엄마는 천사였다. 악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악마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이며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 조사위원들의 면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친다. 적당히 덮어서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야말로 교통사고 뒤처리를 할 생각인가.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 됐다. 악마도 무서워서 몸을 떨 것이다. 자칫 수만 명의 국민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 세계 최고의 범법자 왕국이 되고 싶은가.

원전이 해킹 당했다. 해커들은 10만장에 달하는 원전 내부문서를 해킹해서 차례대로 공개하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범인은 구름 속에 오리무중이다. 무서워서 못살겠다는 국민들의 호소가 엄살인가. 나라가 이렇게 망가진 적이 없다. 대통령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장관들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역사를 두려워해라. 죽으면 끝날 줄 아는가. 3년이면 끝난다. 한 해가 갔다. 다시 오는 새해는 악마는 떠나버리고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되기를 빈다. 지금 악마가 웃고 있는가. 사람이 울고 있는가.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