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100세 시대니까, 안 죽고 살아있으면 다시 보자고 꼭 그 말 좀 전해라”
93세 정신영 할머니 등 28명 ‘봉선화Ⅲ’ 감동후기 ‘나고야’ 전달
“가슴에 맺혔던 한 일부나마 풀린 기분”...소송 원고들도 울렸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 ‘봉선화Ⅲ’가 지난달 24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된 가운데, 공연이 남긴 잔잔한 울림과 감동이 다시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한테 향하고 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유일한 생존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93)를 비롯해, 미쓰비시를 상대로 승소한 원고 이경자 할머니, 양금덕 할머니의 아들 등 28명(용두중학교 학생 11명, 일제 피해자 및 가족 3명, 시민 관객 14명)은 연극 ‘봉선화Ⅲ’에 대한 소감문을 통해, 열연을 펼쳐 준 ‘봉선화Ⅲ’ 출연진과 연극의 배경이 된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나고야소송지원회‘)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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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역사문제가 대립과 갈등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국적을 초월해 양국 시민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두텁게 손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시사점이 매우 크다. 시 2편을 포함해 모아진 28명의 감동 후기는 3일 ’나고야소송지원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장헌권 목사는 한국 사회에서도 의지할 데 없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38년 동안 한 길을 걸어 온 나고야소송지원회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시 ’저절로 봉선화는 피지 않는다‘에 담았다. 나고야소송지원회를 “없는 길 시민 스스로 만들어 / 부끄러운 역사를 깨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장 목사는 ‘봉선화Ⅲ’ 광주 공연에 대한 감동을 “분노와 슬픔이 눈물과 함께 버무러져 정월 대보름에 달을 만진 손들이 얼싸안고 하나가 되어 / 활짝 핀 봉선화가 빛고을에 피었다”고 표현했다.

‘감동, 눈물, 연대’로 짧게 그날의 감격을 표현한 역사교사 출신 김남철씨는 “나고야의 바보들, 광주의 바보들, 이기자, 이길때까지 가자”라고 다짐을 담았다.

정영해 전 동신대교수는 “비전공자들이 했다고 해서, 처음엔 그렇고 그런 연극인가 하고 반신반의(半信半疑)했는데, 막상 보니 극의 흐름도 그렇고, 연기도 아주 훌륭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의 아픈 얘기를 일본 사람이 일본말로 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고,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며 “일본 사람이 일본말로 연기하니, 그 감동이 두 배, 세 배가 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과 함께 연극을 관람한 용두중학교 김동혁 교사는 ‘봉선화Ⅲ’ 광주공연에 대해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는 참교육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용두중학교 학생 11명은 연극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날 오전 ‘여자근로정신대 바로 알기’ 수업을 진행한 후 선생님과 함께 연극을 관람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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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연극마을 이당금 대표는 “첫 장면부터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마추어 연극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절절했다”며 “일본 연기는 절제미가 기본인데, 일본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피를 토하는 감정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쿄 금요행동에 직접 참가한 경험이 있는 박수희씨는 “그들은 진정한 애국자였고, 일본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고자 했던 살아있는 전사였다.”며 “대를 이어, 국경을 넘어 실천하는 그들의 숭고한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벌써 그립다”고 감동을 전했다.

일본인들이 근로정신대 할머니 이야기로 연극을 한다는 것에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이정현씨는 “사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딱 맞았다. 공연 집중과 감동도 최고였고, 관객은 만석이었다.”며 “뒤에 앉으신 어떤 분은 연극 중반 이후부터 내내 우셨다”고 말했다. 

이어 “38년 발걸음을 담은 ‘봉선화Ⅲ 연극’을 통해 일본 분들과 진하고 뜨거운 연대감을 느꼈다”며 “갑자기 이 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윤영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24년, 광주에서 ‘자기 고백’과도 같은 이웃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졌다”며 “‘자기 고백’은 무대 위와 객석이 다를 것이 없었다”고 표현했다. 윤 의원은 “난 다시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투쟁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위대한 역사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바보들의 향연'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후기에 담았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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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국 전 광주광역시교육감은 “연극을 보면서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내 작은 몸짓을 생각하며, 고맙고 미안해서 더 눈물이 났다”고 후기를 남겼다.

2010년 도쿄 미쓰비시 삼보일배 투쟁과 2016년 도쿄 금요행동에 참가하기도 한 장 전 교육감은 “미쓰비시 본사로 가는 삼보일배 행진과 주주총회장 앞에서의 집회 시위, 단 한 번 참석한 금요집회, 광주에서 교류회에 함께 했던 그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생각하던 내가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가해국의 전쟁범죄를 일본인의 양심으로 낱낱이 고발한 이날 ‘봉선화Ⅲ’ 공연장에는 노구를 이끌고 참석한 소송 원고와 가족들도 함께 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38년 동안 묵묵히 양심의 목소리를 내온 나고야 시민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도난카이 지진 유족으로 소송에 나서 지난해 12월 28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원고 이경자(李敬子.1943.2.19.) 할머니는 소감을 묻는 전화 통화에서 “연극을 보면서 가슴이 찡하고 아팠다. 지진에 죽은 고모님(최정례) 생각도 나고, 어린 딸을 잃고 가슴에 한을 안은 채 돌아가신 시할머니 생각도 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솔직히 자기 나라에서 저지른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며 “‘피해자의 아픔을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한이 일부나마 풀린 기분이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나주대정국민학교(현 나주초등학교) 졸업 후 1944년 5월경 고작 열네 살 나이에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미쓰비시 공장에 끌려갔던 정신영 할머니(鄭信榮.1930.2.19.)는 이날 생존 피해자 중 유일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정 할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연극을 보면서 지진에 죽은 여섯 명이 생각나 짠하고 가슴 아팠다”며 “미쓰비시 공장에서 여럿이 나란히 서서 마치 모를 심듯이 작업하는 배우들 모습이 꼭 우리가 그때 작업장에서 일하던 모습과 같았다. 순간 그때 고생하던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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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부터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양금덕 할머니를 대신해 공연을 관람한 셋째 아들 박상운(朴相雲.67)씨는 “일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고생하셨던 어머님을 모델로 한 연극이어서 진심으로 감명 깊게 관람했다”며 “공연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공연한 것에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일본은 지난날 과오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라며,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무토 요코(武藤 陽子)씨를 두고 “나고야에 새로 수양 어머님이 생겨 너무너무 기쁘다”고 감격을 전했다.

연극 ‘봉선화Ⅲ’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끈질긴 명예회복 투쟁을 다룬 연극으로, 500여 명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28명의 소감과 후기는 3일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소송지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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