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시는 27일 오후 4시 옛 전남도청 1층에서 열린 1980년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던 10대들의 투쟁기록을 담은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출판기념회에서 축시로 낭송된 시입니다.

5월 소년병이 피운 민주의 꽃

박  몽  구(‘5월시’ 동인, 5.18 부상자회 회원)


그해 금남로에 만개한 라일락 향기는
더 이상 배반의 피냄새를 가리지 못했다
교과서가 일러준 대로
어린 소년 소녀들은 걸어갔지만
새벽으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겨레붙이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게 총칼을 쥐어주었을 뿐이라고
교과서에는 휘갈겨져 있었지만
도청으로 가는 길 장갑차로 가로막고
허공에 뜬 헬리콥터에서 갈긴 총탄
제 부모 제 형제 가슴을 피로 물들인
이유를 어디에도 적어 놓지 않았다

두툼한 교과서가 일러준 대로
갈 수 없었던 소년 소녀들은
서슴없이 교복을 벗어던지고 총을 쥐었다
겨레붙이와 등 돌린 탱크와 맞선 이들
지치지 않도록 주먹밥을 뭉쳤다

시민을 향해 퍼붓는 총탄 앞에
맑은 눈의 시민들 버려둔 채
땀 흘리지 않으면서 펜대를 굴려온 사람들
장롱 속에 숨고 시골집으로 달아난 날
교과서의 살결을 만지며 자란 친구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 돌려
무등을 든든하게 지키는 인간띠가 되었다
저를 수류탄 삼아 던져
마침내 금남로에서 장갑차를 몰아냈다

시민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계엄군에 맞서서
무등을 지키던 선한 눈의 시민군들
해방구를 지키다 연일 불면으로 쓰러진 자리
교실을 빼앗긴 친구들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소년병 대열에 섰다

적의 심장을 겨느듯 난사하는 총탄에 
무고한 시민들이 속속 쓰러지자
교복을 벗어 붕대를 만든 어린 여고생들
작십자병원 앞에서 기독병원 앞에서
빗발치는 계엄군의 총탄 두려움 없이
끝없이 헌혈 대열을 이루었다

민주주의의 혼을 끝까지 지키다
숭고한 주검으로 돌아온
구두닦이 날품팔이 노동자들 앞에서
시민상주가 되어 따스하게 지켰다

그날 5월을 지킨 어린 시민군 친구들
살아 있는 역사는
진실이 잘려 나간 교과서가 아니라
저를 낳고 길어준 겨레붙이들
민주주의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온몸을 실어 스스로 지키는 것임을
잘려나간 교과서 행간에 새겨 넣었다

결코 총칼로 지울 수 없는
5월 라일락 향기 산을 넘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골고루 나누었다
바다 건너 전세계에 뜨끈뜨끈하게 배달하였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이 최후까지 항전했던 옛 전남도청. ⓒ광주인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했던 옛 전남도청.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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