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중항쟁 주역 윤강옥 형을 보내며...

5.18 민주국립묘지에서 열린 민주 투사 윤강옥 선생 영결식에 다녀왔다.

고인과는 1980년 민주화의 봄 때 전남대에 복학하여 어용교수 퇴진 등 박정희 독재 유산 청산작업을 함께 하였고, 5.18 광주민중항쟁 때에는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올라 함께 시민혁명의 성공적 완수를 호소하였다.

5.18은 출발시에는 전남대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이른바 "화려한 휴가 작전"에 투입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고 무자비한 진압작전에 나서자, 지도부 학생들은 사라지고 노동자와 평범한 시민들이 나서서 군인들을 몰아내고 공권력이 부재한 가운데서도 도둑 없는 거리, 광주 해방구를 이루었다.

그런데 주먹밥을 삼키며 카빈총을 쥔 채 광주 전역에서 연일연야 대치하던 시민군들이 지치자, 정체 모를 사람들이 나서서 시민수습위원회를 표방하며 무작정 무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윤강옥 선생은 5월 24일 계엄군의 포위망을 뚫고 홀연히 나타나 국면 전환에 앞장섰다.

학생 지도부가 사라진 자리를 윤상원, 이양현, 정상용, 윤강옥 등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대신하였다.

이들은 노동자, 평범한 시민들과 함께 항쟁 지도부를 이루고, 시민 혁명의 대의가 무산되어서는 안되며, 먼저 간 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분명한 계엄군의 사과와 민주화 약속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습위가 '광주시민항쟁위원회'로 탈바꿈하였고, 항쟁 대오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그 덕분에 기자회견 등을 통해 광주의 진실이 바다 건너 독일 등 전세계에 재대로 알려질 수 있었고, 항쟁의 목표가 민주화이고 인권 존중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다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군 대열에 속속 참여하였다.

"시민 여러분,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도청 방송실에서 울려퍼진 박영순의 외마디 호소와 함께, 5월 27일 새벽 우세한 무력을 앞세운 계엄군의 무자비한 작전으로 도청 벽은 벌집 투성이가 되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이렇게 미완의 혁명으로 저물었지만 운강옥 형을 비롯한 시민군의 불굴의 투쟁으로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거듭났고, 1987년 6.10 시민민주혁명으로 계승되었다.

마침내 죽음을 넘어 민주의 승리를 거두었다.

5.18광주민중항쟁 승리의 초석이 된 윤강옥 선생의 불꽃 같은 생을 그리며 쓴 조시를 여기 옮겨 본다.

2023년 2월 23일 
 

■ 조시
 

굽힘 없는 헌신으로 바른 역사 연 증인
-윤강옥 선생 영전에

박  몽  구
 

이백 년 내리 한자리 지키던
도청 앞 광장 회화나무
피눈물이듯 맑은 이슬 흘리던 5월
우리들은 보았다

국민의 손으로 건설한 민주의 소도
한 뼘도 내줄 수 없다며
주먹밥 삼키며 카빈총 굳게 쥔 채
지키던 시민군 동지들 지쳐갈 즈음
그는 홀연히 나타났다

기꺼이 죽음과 맞바꾸며 지킨
광주 해방구,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빈 손으로 내줄 수 없다며
그는 도청 마당에 버려진 카빈을 다시 집어들었다
국민의 귀를 막고, 손을 묶어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리는 일 없어야 한다고
연일 도청 앞 분수대에 올라
지친 해방구에 투쟁의 횃불을 다시 올렸다
눈이 맑은 젊은이들이
두려움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끝까지 민주의 소도 도청을 사수하던 그는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그가 일신의 안녕 미련없이 버리고
차가운 계엄군 총구 앞에 선 덕분에
해방 광주는 죽음 넘어 다시 일어섰다
무기로는 결코 민심의 거센 파도
거스를 수 없음을
바다 넘어 전 세계에 알렸다
마침내 무기와 돈으로 깔고 앉은
군부독재의 아성 무너뜨리고
총검이 감시하는 체육관 선거 아닌
국민의 손으로 뽑는 세상 활짝 열었다

한 사람을 위하여
온 국민이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미련 없이 책을 던졌고
언제나 자신보다 힘든 이웃
먼저 일으킨 서람
한번도 안락한 자리 탐하지 않고
땀 흘려 새벽으로 가는 징검다리 놓고도
늘 빈손 만지작거리며
선한 미소를 건네던 사람

아직 억울하게 묻힌 5월 영령들의 뜻
하늘까지 닿도록 세우지 못하고
제 겨레붙이에게 짐승의 얼굴을 한 채
발포할 것을 명령한 자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있는 오늘
어깨 위의 무거운 짐
뒤따르는 사람에게 맡기고
하늘의 품에 넉넉하게 안기시라
아니 하늘에서도 그 맑고 따스한 눈으로
당신 뒤를 묵묵히 따라
온몸으로 깨끗한 새벽 열어가는
동지들의 길 든든하게 지켜주시라

생전 윤강옥 선생 모습. ⓒ고 윤강옥 선생 5.18민주국민장 장례위원회 제공
생전 윤강옥 선생 모습. ⓒ고 윤강옥 선생 5.18민주국민장 장례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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