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그리스적인 미술을 시작했던 시기를 아르카익기라 부른다면, 바로 다음에 뒤따라오는, 그리스만의 특징이 명확해져서 서양미술의 전형(典型)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전기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면에서 서양미술의 전형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소위 서양미술의 근본 원리 중 하나가 확립되었다는 사실이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 로마시대 모작.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 로마시대 모작.

그리스 고전기에 확립된 미술의 이 원리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한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화가가 어떤 대상을 그릴 때 그것을 본떠서 화면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화가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를 실천했다고 한다면,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의 원리에 따른 것이 된다. 하지만 자연주의가 눈앞에 직접 보이는 대상을 옮겨 그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한 화가 또는 조각가가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 속의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에 매우 감동한 상태에 있어서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을 통해 현실에 나타냈다고 한다면, 이 역시 자연주의 미술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주의 미술이란 자연을 모방해서 다시 보여주는 것(再現)을 원리로 삼는 것으로서, 예술론에서는 이것을 예술 모방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강과 들과 같은 자연의 대상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재해 같은 사건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자연을 의미한다. 어쨌든 이러한 자연주의 미술이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확립되었다는 것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기록들을 보면 회화가 가장 융성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아쉽게도 남아 있는 작품이 없다. 고전기의 회화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마 제욱시스(Zeuxis)와 파르하시오스(Parrhasios)에 얽힌 일화일 것이다.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쓴 <박물지 Naturalis Historia>를 보면, 제욱시스와 경쟁자인 파르하시오스는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리는지 겨루기 위해 서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각자 그림이 완성되자 커튼으로 가린 두 사람은 먼저 제욱시스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커튼이 걷히고 나타난 그림에는 먹음직스런 포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얼마나 진짜 같았는지 주위를 날아가던 새가 내려와 그림을 쪼아댔다. 이에 제욱시스가 의기양양해서 파르하시우스의 작품 앞으로 가 커튼을 걷으라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청동 조각.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청동 조각.

한데 파르하시오스가 커튼을 걷지 않자 제욱시스는 왜 안보여주냐고 따졌다. 그러자 파르하시오스는 이 커튼이 자신의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새를 속인 제욱시스보다 사람을 속인 파르하시오스가 더 뛰어남을 강조하며, 얼마나 똑같이 그리는 것이 당시의 미술에서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남아 있는 작품이 없는 회화보다 우리는 조각 작품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왜냐하면 조각 또한 회화와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익히 봐왔던 고전기를 대표하는 조각들은 고대 로마 시대에 원작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모작(模作)의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 고전기의 작품을 상상할 때 이와 같은 상황과 더불어 몇몇 사실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고대 그리스 고전기의 조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단 확인된 바로는 재료가 대리석이 아니라 청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청동 조각은 흙으로 형상을 만들고 다시 틀을 만들어 주조하는 방식이라 돌을 깍아 내는 대리석 조각에 비해 훨씬 까다롭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완성된 청동 조각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미술작품이 될 수 있지만, 당시 그리스 조각가들은 여기에 채색을 하고 눈에 보석을 박아 살아 있는 인물처럼 만들지 않으면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9호(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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