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친일잔재, 진정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I
미술계의 친일잔재, 진정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I
  • 김병헌 광주아이드 편집위원(미학박사)
  • 승인 2019.02.0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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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함에 대한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으로 한·일 양국 간에 첨예한 대립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생떼임이 분명한데 일본은 상식에서 어긋난 입장을 내고, 오히려 군사긴장만을 부추기는 듯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거대 야당이 이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데 있다.

얼마 전 EBS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프로그램인, 다큐시선 <우리 곁의 친일잔재-미술, 친일을 그리다>를 봤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의식이 정말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새삼 느꼈다.

김기창(왼쪽), 김은호 화가.
김기창(왼쪽), 김은호 화가.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쓰는 지폐부터 공공장소의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친일 작가들의 잔재가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례를 들어보자. 우리는 어렸을 적 세뱃돈을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기뻐했던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작은 돈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 오늘날 어른들은 자식들이나 조카들을 보면서 자신들과 비슷한 감정을 아이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돈을 줄 것이다.

이 돈이 실제로 자식들이나 조카들에게 가는지 부모에게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는 소위 배춧잎이라 불리는 1만원권 지폐가 많이 쓰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 어떤 역사 속 인물인지 잘 알며 (신사임당에게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부의 상징으로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누가 이 인물을 그렸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73년 박정희에 의해 마련된 정부표준영정제도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인물들을 기리고 당시 다양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표준 모습을 제시하고자 (박근혜의 국정교과서를 떠올리면 된다) 시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로 인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상식적으로 이와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의 영정을 그리는 사람은 실력뿐만 아니라 그만한 인품과 덕을 갖춘 자가 그려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이자 성군인 세종대왕의 표준영정을 그린 인물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 화가로 알려진 운보 김기창(1913-2001)이다.

김기창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나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진 이당 김은호(1892-1979)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는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후 1940년까지 특선 4회로 추천작가가 되며 42년 일제 말의 친일미술전인 반도총후미술전람회, 결전미술전람회 등에 참가하여 일왕과 그의 제국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마치 나치 독일의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의 일본판 선전책동에 솔선수범하여 동조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김기창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김은호의 문하에서 그림을 함께 배운 월전 장우성(1912-2005) 역시 같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친일행적들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조선인들에 대한 각종 수탈과 강제징용, 근로정신대 등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온갖 문제들을 낳았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을 위한 화가들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일본은 조선인들에 대한 선동수단 중 하나로서 그림을 이용해야만 했다. 1943년 2월 성스러운 전쟁에 미술로 보국한다는 취지로 일본작가들과 친일파 작가들(김인승, 김만형, 박영선, 심형구,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의 단체인 단광회가 만들어지고 <조선징병제실시기념화>를 19명의 회원이 공동 제작한 것도 이러한 선전효과 때문이었다. 이상범, 심형구, 윤효중, 김경승, 김인승 역시 비슷한 일들을 했다.
<다음호에 이어짐>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1호(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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