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살펴보는 미술의 역사 VI

고왕국 시대 말기인 6왕조에 이르러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지고 지방의 귀족들이 득세하면서 이집트는 극도의 혼란기에 빠지고 결국 왕조 자체가 무너지게 되었다.

이후 각 지역의 지도자들은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일구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오폴리스(Herakleopolis)의 통치자들은 북부의 하이집트를, 그리고 테베에 기반을 둔 인테프(Intef) 가문은 남부의 상이집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주의적 양식의 아메넴하트3세 두상.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사실주의적 양식의 아메넴하트3세 두상.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이것이 우리에게 통일을 앞에 둔 전설적인 파라오 메네스(Menes)의 모습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당시의 경쟁자들도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멘투호텝(Mentuhotep II)의 테베군이 헤라클레오폴리스의 통치자들을 격퇴한 후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중왕국(Middle Kingdom) 시대의 막이 오른다.

고왕국과 달리 중왕국 시대는 정치·군사적인 안정을 토대로 예술과 종교가 번영했다. 특히 부조나 초상조각은 수준 높은 기술력으로 세세한 것까지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중왕국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파라오인 아메넴하트 3세(Amenemhat III, 재위: 기원전 1860년 경∼기원전 1814년 경)의 초상 조각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것으로서 두 가지 유형을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는 영원히 젊게 보이는 왕의 모습으로 다른 하나는 광대뼈가 생생히 표현될 정도로 나이가 드러나게 조각되어 있다.

여기서 전자는 전통적인 이상화된 양식이며 후자는 사실주의적 양식으로서 선왕인 세누스레트 3세(Senusret III)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중왕국 시대 역시 서서히 쇠퇴를 거듭하다가 힉소스(Hyksos)의 침입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아부 심벨에 있는 람세스2세.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아부 심벨에 있는 람세스2세.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힉소스란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외국의 통치자(rulers of foreign lands)’를 일컫는 말이다. 기원전 1750년 경 무렵 레반트에 기원을 둔 서아시아민족이 이집트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처음 보는 합성궁(composite bow)과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온 이민족들에게 무참히 패배하였으며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극도의 혼란기를 거치게 된 이집트인들은 힘을 축적하면서 다시 영광을 누릴 기회를 엿보았다.

아흐모세 1세(Ahmose I, 재위: 기원전 1549년 경∼기원전 1524년 경)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힉소스 소탕을 성공리에 마쳤으며 후대에 신왕국(New Kingdom)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대를 열었다.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재위: 기원전 1479년∼기원전 1425년)는 강력한 군사력을 업고 17번의 군사작전을 통해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역사가들에게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얻었다.

메르네프타(Merneptah, 재위: 기원전 1213년∼기원전 1203년)는 처음으로 이집트의 통치자들에게 ‘파라오(pharaoh)’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아켄아텐(Akhenaten, 재위: 기원전 1353년 경∼1336년 경)은 이전까지 내려오던 이집트의 전통적인 다신교를 포기하고 유일신으로서 ‘아텐(Aten)’ 신만을 모실 것을 다짐했다.

그는 이 다짐을 스스로 이행하기 위해 본래 이름이었던 ‘아멘호텝(Amenhotep)’을 버리고 ‘아텐신에 효과적인(Effective for the Aten)’이라는 의미로 개명을 했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크게 다른 면을 보인다.

그를 나타내는 부조나 그림, 조각상들은 너무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신비롭거나 엄숙한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텐을 경배하는 아켄아텐과 그의 가족.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아텐을 경배하는 아켄아텐과 그의 가족.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심지어 그는 마치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불거진 모습으로도 나타나며, 어떤 곳에서는 튀어 나온 광대뼈와 두터운 입술로 인해 현대의 풍자화를 연상시킬 만큼 파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의 혁명적인 업적들은 자신의 아들인 투탄카문(Tutankhamun, 재위: 기원전 1334년 경∼기원전 1325년 경)의 대에서 다시 과거로 복구었는데, 그의 골든마스크는 이것을 증명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적했던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족과의 분쟁 해결을 위해 최초의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이름을 남겼다.

이러한 이집트의 역사는 앗시리아나 페르시아 등에 의해 시련과 재기를 반복하지만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에게 정복당함으로써 장구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2호(2020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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