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문 [전문]

KBS ‘역사저널 그날’의 역사인식에 개탄하며 정정보도와 함께 재구성을 통해 2편이나 속편을 방송해야 한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지난 4월 21일 방영된 KBS ‘역사저날 그날’의 여순사건 역사인식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 공영방송인 KBS는 방송에서 ‘여수·순천10·19사건’이라는 국가 공식 명칭을 배제하고 ‘여순반란사건’이라는 해묵은 명칭을 방송용어로 사용했다.

지난해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여수사건 합동추념식에서 권오봉 여수시장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분향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청 제공
지난해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여수사건 합동추념식에서 권오봉 여수시장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분향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청 제공

이는 70여년의 한을 품고 살아가는 여순사건 피해 유가족을 두 번 ‘학살’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지난 2020년 4월 21일, KBS 1TV로 전국 방영된 역사저널 그날(261회), 1948 여순사건-군인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나?가 공중파로 방영된 이후 지역사회와 유족들의 분노와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품고 ‘혹시나 하면서 시청했는데, 역시나 였다’는 것이다.

유족들과 시민사회는 ‘반란, 반란군, 여순반란, 여순반란사건, 군사재판, 즉결처분 등’의 용어가 계속 반복하여 공중파를 타면서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전통무예 전문가인 박금수 박사가 무기 및 전략 전술 전문가로 출연하여 발언한 용어에도 지역사회와 유족들은 심히 공분하고 있다.

KBS 1TV의 이번 방송은 지난 16, 18,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이 회기 만료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고,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특별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공영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여순사건을 왜 방영했나? 라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KBS 방송 내용중 몇 가지 항목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반란군 : 소위 14연대의 반란은 제주4·3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제주4·3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우리 정부는 이제 제주4·3이 정당한 것이라 판명하여 희생자추념일까지 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제주4.3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당한 제주4·3을 진압하라는 군령은 정당한 명령인가? 인데, 이는 ‘아니다’로 귀결된다.

부당한 상부의 명령이기에 이를 거부한 것이야말로 정당한 것이다. 헌법에 ‘군대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군대의 사명’이라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군대로 하여금 여순사건 32년 후, 5.18광주항쟁이 발발했을 때에도 광주를 진압하라는 명령은 부당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와 반기는 반란이 아닌 정당한 항명이며, 봉기인 것이다.

·여순반란사건 : 여순사건과 유족들은 여순반란·여순반란사건이라는 용어 속에 갇혀 70여 년을 사회적 천형으로 낙인찍혀 제주4·3과는 달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도 못 해 왔다.

제주4·3이 정당한 것이면 이를 거부한 여순사건도 정당한 것이어야 옳다.

그러한 사건을 지난 50주년인 1998년부터 가까스로 여순사건으로 불리고, 또한 70주년인 2018년에는 여순항쟁으로까지 불리게 된 여순사건 명칭의 역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1987년부터는 교과서에서도 ‘여수·순천10.19사건’으로 개칭되어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정부의 공식보고서에도 여순사건으로 명칭되어 있는 것을 공영방송이 이번에 여순반란·여순반란사건으로 공공연히 방영하고 있으니 KBS는 도대체 어느 나라 공영방송인지를 반문하고 싶다.

민간인학살 : KBS는 집단학살, 적법한 절차도 없는 민간인집단학살의 인권침해라는 중심 논제를 좀 더 비중 있게 구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공기 게양 운운에 의해 소위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에 동의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제주4·3과 동일한 주장을 한 14연대 봉기군과 지역 인민위원회가 내세운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시대 정신과 의제를 부각함이 오히려 ‘왜 반란을 일으켰나?’라는 주제에도 맞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14연대 봉기군이 여수시가지를 점령하고 읍사무소 등 주요 기관에 인공기를 게양했다는 이른바 체제질서 파괴행위를 보다 주요하게 부각함으로 인해 해묵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로 인해 여순사건의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학살이라는 인권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가십거리로 전락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다.

대한 군사재판과 즉결처분 : 군사재판은 군인과 군속에게 적용되는 법률이다. 따라서 여순사건 당시 군법을 게 적용함은 그 자체가 위법인 것이다. 또한, 계엄법은 여순사건 발발 1년 후인 1949년 11월 24일 제정되었기에 이는 법률도 없이 적용한 무법이요 불법적 군사재판인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 군사재판 얘기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기에 강조했어야 했다.

또한 불법적인 계엄령에 의해 그나마(?) 군사재판 조차도 없이 즉결처분을 자행한 행위에 대해서도 이는 엄연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 국가폭력의 학살이었기에 비중있게 다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방송에서는 마치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처럼 평범한 멘트로 묘사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에 국민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3심제도를 적용받아야 한다. 하물며 최근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국정농단 적폐 세력도 3심제도를 적용받고 있다.

KBS는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수신료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친절한 자막 설명을 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고 수신료 또한 아까와 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을 자처하고 있는 KBS가 이렇듯 처절한 여순사건의 역사를 흥미 위주의 가십(gossip)쯤으로 취급했지만, 정작 지역방송인 순천 KBS는 여순사건 70주년인 2018년도부터 여순사건을 여순항쟁의 의미와 특별법 제정촉구에 초점을 맞춰 기획하고 있음을 볼 때 KBS 중앙방송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책임PD 이재혁, PD 이은형, 연출 유희진, 글구상 김세연, 진행 조은빈의 ‘1948 여순사건-군인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나?’ 프로그램은 일단 정정 보도를 하고 이 방송을 다시 재구성해 제2편이나 속편을 방영해야 한다.

KBS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없을 시이제 시민사회와 유족회가 KBS 취재거부 및 항의 방문과 함께, 수신료 거부 운동을 강력히 펼칠 것이다.
2020년 4월 27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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