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의 진실과 국가폭력의 실상을 기록한 증언록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엮음.. 심미안 출판사 펴냄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법정. 여순사건 당시 철도원으로 근무하다 반군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장환봉 씨에 대한 재심에서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9년 12월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재심에서 검찰은 “사건 당시 군사재판이 있었으나 고 장환봉 피고인에게 집행된 내란 및 국권문란죄에 대한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는데,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리운 아버지' 표지그림. ⓒ심미안 출판사 제공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리운 아버지' 표지그림. ⓒ심미안 출판사 제공

이는 여순사건에서 국가폭력의 불법성에 대해 국가가 처음으로 공식적 인정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11년 3월, 3명의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지 8년여 만에 나온 결과였으나 함께 재심을 청구했던 2명의 유족(신태수, 이기신)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흔히 ‘여수순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등으로 불려온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점령하였는데, 진압과정에서 군과 무관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사건 발생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여순반란사건’ 또는 ‘전남반란사건’이라고 부르며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였는데, 1995년부터 국사 교과서에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일반적으로는 ‘여순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책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리운 아버지』(순천대학교 심미안 刊)는 여순사건 중 발생한 비참한 국가폭력의 심각성과 지금껏 말하지 못한 진실을 담아낸 소중한 증언 채록집이다.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들은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기억하기”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채록하고 정리했다.

이 책은 140여 명 구술자의 채록 중 김연수, 홍순례, 이숙하, 박영규, 오영순, 정성례, 김계수, 강질용, 김재진, 이찬식, 김규찬, 장경자, 진점순, 장경임 유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0일 재판부의 최종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장환봉 씨 재심재판의 주역인 장경자 씨와 부인 진점순 씨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내력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외에도 여순사건 당시 철도원으로 근무하다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실종된 김영기 씨의 아들 김규찬 유족의 절절한 사부곡을 통해 그 당시 철도원들의 비극을 살펴볼 수 있으며, 어머니나 다른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지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 명예회복 등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유족 분들의 한을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출간한 배경이다.”(최현주,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장)

순천대 여순연구소는 2018년에 설립되어 여순사건으로 표출되었던 국가폭력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연구하고 이론화하여 평화와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여순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잡지 『시선 10.19』를 비롯하여 유족들의 증언을 담은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 『문학으로 본 여순10.19의 진실과 상처』, 『여순사건 70주년기념사업 백서』 등의 책을 발간하였으며, 관련 학술대회와 콜로키움, 증언 채록 등의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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