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래 글은 지난 16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와 지역공공정책 플랫홈 광주로가 공동주최한 '시민사회, 2020총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토론회에서 하승수 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의 '한국정치 현실과 2020총선의 의미 그리고 시민사회 역할에 대하여' 발제에 대한 지병근 교수의 토론문 전문입니다.

총선과 지역정치발전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제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정치는 “시대적과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치권,” “소모적 정쟁”, “예산낭비, 부패, 위법과 망언, 막말”, “행정부 견제기능의 상실”, “대표성의 결여와 특권계급화”, “정체성 약한 정당과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21대 총선이 “기존의 한국 정치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느냐, 아니면 국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선거”이며, 이를 위해 “정당득표율이 중시되는” 선거제도개혁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포함한 발제자가 제안한 다양한 정치개혁과제(국회감사위원회 설치, 징계처리시한 및 외부위원 참여보장 규정마련, 이해충돌방지제도 강화 등)의 필요성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정치는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만이 아니라 ‘시민’조차 배재된 보수정당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지속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개혁성향의 정권이 집권한 두 차례의 권력교체 이후에도 시민들이 눈높이에 맞는 정치개혁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개혁정국’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미약한 ‘적폐청산’과 함께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실현할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선거법개혁조차 실현가능성이 여전히 확실치 않다.

6월항쟁이 보수정당들만의 잔치로 마감되었듯이, 촛불항쟁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정당들의 당리당략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마감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다.

발제자가 제기한 것처럼 한국정치의 개혁은 선거법개혁에 초점을 두어야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치개혁을 위해 시민들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다만, 여기서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지역정치의 맥락에서 일부 살펴보고자 한다.

1. 일당지배체제를 경쟁적 정당체제로 대체하는 문제

호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적 동질성이 강하며 ‘개혁 친화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역대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에게 지배적인 정당(dominant party)의 지위를 재생산하도록 하였다.

전국적으로는 다당제이지만 호남에서는 일당지배체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하는 독특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국민의당이 광주광역시의 8개 지역구 모두 당선자를 배출하는 등 호남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실시된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종결되었으며, 내년 총선에서도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유사한 선거결과가 호남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단일정당이 호남의 지배적 정당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이라면 이 또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차선책으로 단일정당 내부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정당민주화와 민주적 책임성을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례성을 무시하는, 다시 말해 유권자들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선거제도에 의한 것이라면 대처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비록 소수파이지만 유효정당(efficient party)으로서 가치 있는 군소정당 지지자들이 제대로 대표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경쟁적 정당체제를 지역에 확립하는 것이 지역정치발전에 필요하다.

정당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 없이 민주적 책임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선거법개혁이 그 단초를 마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2. 비례대표 의원선출방식의 민주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권역별/준연동형/석패율제/비례대표제다.

이는 아직 미완성인 선거법개정안이며, 특히 권역별 의석배분방식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국회가 어떻게 최종안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발표자가 지적한 것처럼 현행선거법과 달리 선거법개정안에는 전체의석의 1/4에 해당하는 75명이 비례대표의석으로 할당되었으며, 따라서 정당이 어떠한 방식으로 비례대표명부를 작성할 것인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어떠한 전략(지역구 및 비례대표선거에서의 일관 혹은 분할 투표)으로 자신들의 투표권을 비례대표선거에서 행사할 것인가에 따라 한국의 정당체제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비례대표후보선출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공정성과 투명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의 노력이 각별히 필요하다.

3. 지역대표성 강화

이번 선거법개정안에 포함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향후 중앙-지방정치에 미칠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역별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유권자들의 정당투표는 각 정당에게 배분되는 비례대표의석만이 아니라 이들이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의석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권역별로 배분되는 각 정당의 비례대표의석수가 권역별 득표율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비례대표의석수가 제한되어 있기에 한계는 있겠지만,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권역별로 배당되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유권자들의 권역별 투표전략과 함께 비례대표의원들에게 권역대표성을 부여함으로써 정당의 분권화(decentralization)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정당의 공천과정은 물론 중앙당과 지역정당조직의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4. 총선과 시민정치

그동안 총선시기마다 지역정치발전을 위해 정당으로부터 구속되지 않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와 정치활동이 진행되어왔으며, 이는 후보자들의 정책평가를 비롯해 낙천/낙선운동이나 시민후보추대 등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지난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를 주도했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국민의당을 포함한 기성정치권에 흡수편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민정치가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정치를 통해 성장한 활동가들이 기성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을 표출하기보다 지역정치발전의 맥락에서 시민정치가 제기해야할 이슈를 개발하고, 이를 추진할 주체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도 이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계기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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