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십 수년 사이에 도시경제의 발전은 국가경제 발전의 주요 계기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들이 그들 국가의 국가경쟁력 강화에 일조하였다. 이제 도시경쟁력은 국가경쟁력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는 시대이다.

도시재생과 개발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도시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가능태로 바꿔주는 영감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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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시는 그곳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현현하는 배경이자 무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도시는 ‘생성-성장-소멸’의 과정을 거쳐 다시 만들어지면서 그곳에 살아가는 인간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문화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도 이 도시를 통하여, 도시 안에서, 도시와 함께 이 싸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19세기 이후, 런던 등의 서양 도시들은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그 한계를 절감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그 때 그들이 발견한 출구가 바로 문화와 역사였다.

이 새로운 성장 담론은 이른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해 진 것이다. 도시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방식에 새로운 시각이나 실천을 요구한다.

그 도시만의 역사 유물에서부터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시각에서 새롭게 엮고 스토리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정보사회라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많은 도시들이 문화와 예술을 활용하여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적 수익 창출을 위한 모델을 만들고 싶어 한다. 도시는 해당지역의 고유한 예술과 경험에 문화의 옷을 입혀주고 싶어 한다.

오늘 날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이 각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 특별하고도 평범한 이야기를, 다채로운 색깔들로 채워 말하기 시작하였다. 문화, 역사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 도시 담론의 유행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광주가 지향하는 문화도시 담론에는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고 개성 있는 색깔들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인간은 모든 존재자들 앞에서 스스로를 주체로서 정위(定位)시키는 존재이다.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주체로서 생각하는 가치와 다른 주체의 가치와 생각 사이에서 여러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이 두 가치의 지향이 일치되는 경험을 하였을 때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러므로 인간존재의 많은 활동들 가운데 하나는 이 서로 다른 가치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른바 정치 행위는 바로 이런 차이를 좁히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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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현상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감을 좌우하는 주요한 한 기제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 우리 광주의 문화계에는 정치 ‘포화’상태라 이를만한 현상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지역 문화계의 이런 정치 ‘포화’ 상태로서의 단면은 ‘내 말만 하고, 다른 이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기’라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지난 달 말 지역의 한 단체가 여러 단체들을 ‘거느리고’ 진행하는 토론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여러 단체를 거느리는 단체의 일원답게 일방의 목소리만을 충실히 드러냈다. 거기에 다른 입장과 관점들, 견해들이 끼어들 공간은 애초에 없었다.

토론회장은 일방향의 목소리들만이 울려 넘쳤다. 누군가는 토론회장에서 소리 지르고, 누군가는 전면에 시퍼렇게 날 선 말들을 쏟아놓았다. 또 누군가는 자존심으로만 뭉쳐진 ‘무조건적인’ 반박만 하려 들었다.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가 타자인 모두를 도구화하여 자신의 언설을 이행해야 할 주구로 여기는 듯한 태도나 견해들이었다. 자신과 다른 것은 애초에 인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분쇄’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른바 정치라고 여기는 듯했다. 심지어 이런 현상이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정치 포화’ 상태에서는, 혹은 이런 정치 문화의 ‘습속’에서는 발전을 위한 그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도 온전히 제 모습을 갖춰가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최상민 조선대 교수.

도시문화의 재생과 재창조는 우선적으로 문화적인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의 활력을 되찾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이 도시에 진정성을 지닌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제기한 “광주가 지향하는 문화도시 담론에는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고 개성 있는 색깔들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찾아져야 한다.

“광주는 필요한 만큼의 문화적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가?”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8호(2018년 1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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