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당장 선임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그러나 전당장 부재 사태가 장기화되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문화예술의 창조, 연구, 교류, 교육 및 향유가 결합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시설이다. 해외에서도 이런 식으로 창작과 유통, 연구와 교류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총괄하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실제로 전당은 출범 이후 여러 내외적 이유로 허덕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비전과 방향성, 정체성의 문제, 운영인력의 문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느 하나도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전당장 부재의 리더십 위기는 막중한 위상에 걸맞는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선임이 지연되는 구체적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차원에서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첫째, 광주라는 도시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이를 담보할 만한 인문학적 식견과 가치관을 지닌 인사여야 한다. 지역인사라면 더욱 좋다.

둘째, 문화 예술 영역에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지역과 정부, 나아가 세계 속에서 일정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대개 지역의 목소리는 전자에 방점이 찍히면서 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한 옛 전남도청이라는 장소/공간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광주정신을 지키고, 숙원과제인 옛 전남 도청의 ‘원형복원’을 이뤄낼 수 있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당장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평화’와 ‘인권’등으로 표현되는 광주정신에 대한 강조이다. 반대편의 목소리는 아시아문화전당이 감당해야 할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역할에 방점을 찍고 이른바 문화예술영역에서의 ‘전문성’, ‘네트워킹 능력’ ‘거버넌스 역량’ 등을 강조한다.

이 외에도 대규모의 복합문화시설을 이끌 수 있는 전문성으로 내·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경영능력을 언급하기도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당장이 갖춰야 할 리더십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떤 리더여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우선 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조직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도시들은 도시 비전의 제시와 관련하여 흔히 문화 시설과 향유를 도시 재생과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 간주하며, 도시 성장 담론의 견인차로 인식한다. ‘도시정체성(urban identity)’의 정립을 통해 경쟁력 있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대규모의 문화 인프라 건설과 운영을 통하여 도시 기능의 재생과 활성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그 구체적인 방증이다. ‘문화수도 광주’라는 슬로건이나 ‘생태수도 순천’ 등의 슬로건은 이런 담론 전략의 구체적인 산물일 것이다.

도시정체성의 정립은 각각의 도시들이 스스로 얻어 갖고 있는 자산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하여 다른 도시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하여 이뤄지게 마련이다. 도시는 일정한 물리적 특성들과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반복을 통하여 특정한 맥락을 아우르는 ‘장소’를 만들어 간다.

이른바 도시 정체성은 이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러니까 도시 정체성은 ‘장소’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현재의 시점이나 과거의 기억으로 현현된다는 것이다. 도시 정체성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그 도시만의 자기다움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예향’이니, ‘민주성지’니 하는 말들은 기실 이런 정체성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도시 성장 담론에서는 무엇보다 ‘장소성’(placeness)의 획득이라는 전제를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옛 전남도청 자리에 건립된 아시아문화전당의 경우 위의 ‘장소성’ 개념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최상민 조선대학교 교수.

5·18 민주광장이 지닌 ‘장소성’은 광주시민이 경험하고 지내온 시간, 나아가 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형성한 문화(혹은 문화적 태도)와 가치관 등을 포함하면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당장의 리더십에서 최우선시 해야 할 점은 바로 그가 어떤 도시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있는가에 모아져야 한다. 오늘날 내면에 진정성과 진실됨을 결여한 채, 전문성으로 포장된 스킬들만으로 채워진 리더십이 이끄는 조직의 폐해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리더가 갖고 있는 유사 변혁성에 이끌려 조직성과가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과가 우리 모두가 가야할 ‘선한 미래’(common good)가 아니라면 그를 용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6호(2017년 11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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