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輪): 반복과 변화’ 의 방향

아래 글은 '2017의재창작스튜디오-수류화개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지난 11일 의재미술관에서 열린 전문가 초청 세미나에서 차정연 박사(독일뮌헨공과대학, 전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의 발제문 전문입니다.

수로화개관은 의재 허백련 선생이 무등산에 기거하면서 그림과 글씨를 쓴 곳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수류화개(水流花開)란 구절은 북송 때 시인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당나라 말기의 화가 장현(張玄)이 그린 18나한상의 모습을 차례로 노래한 <십팔대아라한송> 중에서 아홉번 째 아라한을 노래한 구절 중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 즉, '산에 사람 없어도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편집자 주

들어가기 전에 살피는 말

광주 미술계는 바야흐로 수년 동안 난국의 세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세금으로 치러지는 커다란 미술행사에서 그 복잡함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을 전업으로 살아가는 작가들 역시 미술시장의 불경기가 길어지다 보니 삶의 질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시민들은 많은 전시나 행사가 있고 거기에 따른 예산의 규모가 년 간 수백억에 이르지만 그 가치를 체감하기는 매우 힘들 다고도 한다.

갈음 하자면 작자도 감상자도 힘들거나 곤궁하나 전시기획자나 전문 행사업자들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성지 광주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의구심을 가지고서 말꼬리를 잡아보고자 한다.

1. 광주 비엔날레 / 디자인 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모습.

광주비엔날레는 1994년 개최승인이후에 1회 광주비엔날레 ‘경계를 넘어’를 개최하여 163만 명의 관람객이 비엔날레를 빛냈다고 한다. 이후 11회까지 단 한번도 163만 명을 넘어서는 일은 없었으며 18만 명으로 공식집계가 하락한때도 있었다. 

163만 명이 관람했던 해의 수많은 시골의 어르신들의 관광버스행렬과 학교라고 불리는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비엔날레 장에 수업을 땡땡이치고(?) 다녀와도 결석이 안 되었고 군 단위 지자체예산에서 수 천만 원씩 돈을 써가며 비엔날레입장권을 사주던 정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광주 비엔날레는 세계 5대 비엔날레에 랭크되었다고 공식적인 선동에 근접한 선전을 하였다. 한술 더 떠서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선정된 상위 5대 비엔날레 중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와 미국 국내 비엔날레인 휘트니 비엔날레를 제외하면 국제 비엔날레로는 사실상 3대 비엔날레에 광주가 선정된 셈”이라고 밝혔다>라고까지 발표했다(2014년 05월 21일(수)광주일보에 배포한 보도자료). 

대체로 연간 100억 정도의 예산을 쏟아 만드는 행사이다. 비엔날레가 광주에서 가지는 의미는 가장 많은 예산을 소모하는 행사이며 디자인 비엔날레가 격년으로 열리기 때문에 사실상 해마다 열리는 행사이다. 물론 운영주체가 다를 때도 있지만 세금을 쓰기는 마찬가지이며 시민들이 볼 때는 그게 그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디자인 비엔날레의 예산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광주비엔날레가 롤 모델로 삼는 곳이 베니스비엔날레라고 한다. 해마다 민주 인권 평화 도시이며 5.18정신을 계승하는 이라는 용어가 비엔날레의 문구에 차용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 비엔날레에는 ‘안티비엔날레 통일미술제’라는 타이틀로 광주의 미술작가들이 광주비엔날레의 문제점을 들추고 자비를 들여 ‘안티비엔날레 통일미술제’를 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 명성도 광주의 작가들의 국제적 데뷔도 광주의 정체성을 담아내지도 못하며 지자체장 선거가 끝난 뒤마다 인사에 대한 논란만이 풍성해지는 슬픈 현실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수레바퀴는 어디로 굴러야하는가? 극단적으로는 폐지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단지 폐지 이후의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폐지론은 설득력이 없을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소고기를 구워먹는 기네스도전을 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지역 작가들이 해마다 다수 참여할 수 있는 기획이 이루어져야 된다. 국제적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광주의 작가들이 비엔날레에 꼭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명실 공히 3대 비엔날레중의 하나라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만여 명의 국제적 작가를 초대하고 국제적의로 무명인 자국의 작가들을 세계적 작가들 사이에 동등하게 참여시키는 바람에 무명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던 경우가 있었다.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야경.

광주 비엔날레는 어쩌면 광주 비엔날레만 빛내려는 우를 범했을 수도 있다. 현제 광주시립 미술관에서는 “남도가 낳은 예술가들”이라는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일반인들이 기억될만한 천경자, 김환기 작가 등이 대표적이나 대작들은 거의 없는 상태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소품 위주의 소장품 전을 열고 있다. 

천 억 원이면 이들 작가들의 대표작은 물론이고 잘 팔리고 고가인 고흐작품 몇 작품을 사고 남을 것이다. 미국은 베니스비엔날레에 1회부터 참여하여 미국작가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삼았었다.

결론을 맺자면 비엔날레가 어디로 굴러가든 광주의 작가들이 국제적 진출의 교두보가 되겠다는 첫 번째 원칙이 정해져야 된다. 다음으로는 베니스비엔날레처럼 되려는 생각을 버려야 된다.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수 십 개의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으며 국제적 행사로 자리 잡은 예도 있다.

 즉 베니스비엔날레와 같은 비엔날레는 베니스이외에는 아무 곳에도 없으며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는 비엔날레를 만들려 해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 5.18 민주정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의 자산일 것이다.

2.광주아트페어

광주아트페어는 운영주체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기획의도와 다양한 구설을 창조해 내고 있다. 심지어는 검찰에서 수사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작가부스를 설치하여 관람 인원이 늘어나자 그해 결산 포럼에서는 작가부스를 없애자는 주장을 했던 이들은 여전히 작가부스를 없애지 못하고 있다. 
 

2017광주아트페어 개막식 모습.

어쩌면 작가부스를 없애면 참여 갤러리를 채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아트페어의 꽃은 방문자 수도 아니고 많은 작품이 판매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미술은행에서 구매해주는 작품이야말로 참여자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아이러니 하질 않는가? 아트페어를 여는 예산만이 안정된 판매고를 담보한다는 상황이...

냉정히 판단하면 광주 아트페어의 현실은 존폐를 논해야 되는 시기이다. 영속적인 기획을 할 수 있는 기구나 부서도 없고 더불어 1년짜리 단지 운영주체도 불과 수개월만 존재하며 그마저도 운영주체 장과 기획자가 마찰이 생기면 행사 두어 달 전에도 경질되는 전력이 있다. 광주아트페어를 열수록 유일하게 운영주체와 행사업체는 존치의 이득을 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트페어의 궁극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며 판매하는 것 이외는 모두 무시되어도 될 일이다. 아트페어의 수레바퀴는 방향을 달리하든지 없어져야 될 시기를 고민해야 된다.

작가부스의 경우에 해마다 장르를 정하든지 광주성을 나타낼 주제를 정하든지 하여 어차피 팔리지 않을 바에는 페어를 떼어내고 축제의 장으로 변신해 봄직도 하다. 계륵처럼 해마다 논란을 생산하는 운영주체도 광주시 산하에 영속적인 기획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두어야 된다. 

광주 아트페어의 .com도메인이 몇 만원의 도메인 비용을 내지 않아 경매로 외국인에게 팔려버린줄도 모르는 운영주체는 과히 파렴치하다는 비난을 불구해야 될 것이다. 이는 이행사의 존폐를 논해야 되는 사소한 한 단면일 뿐이지는 아닐 것이다.

3.광주문화거점도시프젝트 (예술의 거리, 대인시장)

광주예술의 거리와 대인예술시장에서 예술은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는 그간 많은 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오류를 범했다고 보여 진다. 많은 자금을 사용했지만 영속성을 담보할 정주공간이 아직까지 없다. 
 

대인예술시장 별밤 행사 모습.

최소한 작가 개인에게 작업실을 지원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무공간과 전시 공간, 작가들과 시민들과의 상설 소통 공간 정도는 만들어져 있어야 된다. 물론 매년 여기저기로 옮기면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공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업이 시작되면 생기고 사업이 끝나면 없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어떤 해에는 계획상 사업시작이 1월 중이지만 운영주체의 선정, 자금 지급 등이 늦어져서 6월이 되어서야 사업이 시작되는 일이 있었다. 

자금계획은 1년이지만 사업은 4~5개월 밖에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은 다반사였다. 앞으로 2년 뒤면 대인시장에 자금을 투자하는 지금의 프로젝트는 종료된다. 

과연 예술 없는 예술시장, 작가의 참여 없는 예술시장으로의 행보가 옳은 일인가?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 여름휴가를 위해 방문하는 예술시장으로의 행보는 불가능한 것인가? 이는 전문 문화기획을 하는 사업자들이 생계형 사업자라는 현실적 한계와 자금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이념적 한계 때문이라 생각된다. 

2년 뒤에도 대인예술시장이 여전히 존치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은 지자체 또는 공적 산하단체가 예술가를 위한 어떠한 정주공간이라도 확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근래에는 먹거리 행사로서 대인시장이 자리를 잡자 임대료가 올라 정주하는 작가들이 수명에 불과하고 시장행사에 참여 하는 정주작가는 극소수 이다. 

서울의 연남동이나 홍대에서 얻어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우리는 대인시장에서 수십억 돈을 들여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인시장은 더 이상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고 사료된다. 

예술 없는 예술시장의 하루 행사 예산이 얼마인지를 알면 깜작 놀랄 것이다. 그간 공식 비공식을 어림하여도 60억 원 이상의 예산은 도대체 어디로 휘발되었는지 자성해야 된다. 최근 총감독의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2년 뒤의 자금지원의 중단은 제고되어야 된다고 했다.

10년 세월과 돈을 투자해서 시장이 그만큼 먹고 살만해졌으면 이제는 시장 상인들과 수혜자들이 자기자본을 투자해서 먹거리 주말장터를 잘 지켜가야 될 것이다. 정작 예술이 필요하면 작가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들을 스스로 제공하고 작가들로 부터 예술적 행위로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될 것이다. 

초창기 작가들에게 반목하던 상인들도 많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인예술시장의 지원목적은 상가활성화가 아니라 문화거점도시 프로젝트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거점과 작가들은 간데없고 먹거리 장터만 남기려고 수십억을 썼다면 실패한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

4. 5.18과 광주미술

5.18을 폄훼 하는 자들 중 혹자는 5.18 관련 인사들의 행동을 빨갱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그들의 시각을 싸워서 바꾸려는 투쟁의 시대는 지났다 생각도 든다.

이제는 좀 더 세련된 방법을 찾아야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광주정신을 계승하는 예술경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5.18은 벌써 30년이 넘어 40년이 되는 세월이 흘렀다. 잘못을 사과하며 법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 이제는 영화나 교과서에 나와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꼭 피 흘리는 모습만이 광주 정신을 표현한다고는 할 수 없다. 중남미 근현대의 미술경향을 예로 들지 않아도 혁명이 친근한 일상 속에 예술로 공존하는 것이 결코 변절이라고만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피 흘림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미적표현에 광주정신을 꽃피울 사람 역시 다양성의 담보는 좀 더 성숙하고 예술적 가치를 배가하는 한가지의 길이다. 문제는 광주정신의 예술적 승화의 다양성의 결여라는 것이다. 

비엔날레나 국제적 행사에서의 관의 지원 배려 이전에 작가들의 광주성의 예술적 창작물의 다양한 표현방식과 예술적 승화는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할 5.18과 광주 미술의 대명제라 생각된다.

닫는 말

다시 광주성(光州性)이다

전라도라는 지역이 신라의 통일이후에 태평성대이거나 정치적 경제적 주류였던 시절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학문이나 문화나 예술 또는 불의에 항거하는 부문에서는 반도에서 항상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상적 곤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는 충실하였으며 그 안에서 삶을 예술적, 문화적으로 승화시켜온 철학적 저력이 광주 전라다움의 근본이라 말함에 큰 오류가 없는듯하다. 또한 새로움에 낯설어 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스스로 창조해옴 역시도 전라도다움의 큰 의미라 하겠다. 

이는 진정한 글로벌화의 저력이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아시아의 문화중심이 되거나 세계적 비엔날레를 만들어 가는 일이 광주가 꼭 이루어 가야되는 이유도 앞서 언급한 연유에서 비롯된 당연한 것이지만 광주의 정신이 빠진다면 저력은 사라지고 아울러 문화 경제적 효과마저도 얻기 힘들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야 될 일도 있지만 어디 세상일이 대체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10년을 내다보며 근본에 충실해야 될 것이다. 광주정신을 대변하는 예술계 역시 다양하게 변화되는 사회에 다양한 예술적 승화를 꾀해야지 완장을 찬 이를 따르지 않는 산자를 질타하는 또 다른 권력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산자가 따르는 데에는 따를만한 이유와 자발적 행동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된다.

2018년인 내년은 전라도라는 이름이 지어진지 1000년 이 되는 <전라도 정도 1000년>해이다. 강남도의 전주와 해양도의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전라도 정도 1000년>사업의 주된 내용 중에 호남권 한국학 연구와 문화예술교류가 있다. 

차정연 박사.

정도 1000을 맞이하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국제수묵화 비엔날레 특별전이 준비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천년의 빛 미디어 창의파크'를 조성될예정이다.

이러한 굵직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사업들이 전거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라도와 광주가 가지는 독창성을 드러내고 살리는 기본원칙을 세우고 이는 사람을 통하여 실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반복되는 오류와 잘못 속에서도 변화를 도모하는 노력은 진보적 행보라 사료된다. 아울러 오류와 잘못에 대한 자성은 변화의 방향을 지시 할 것임에 분명하다. 돈이나 대중매체만으로 영속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로 선전되는 전철은 더 이상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졸고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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